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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北京)은 왜 동아시아도시같이 느껴지지 않는가?

글: 노어강고(老魚講古)​베이징의 교통은 세계적으로 동일한 유형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중국에서는 기본적으로 유일하다고 말할 수 있다. 도시의 교통논리는 만일 교통수단이 없으면 나다닐 수가 없다는 것이다.​베이징은 거의 완전하게 보행공간이 없는 도시이다. 이건 베이징에 인도(人道)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반대로 베이징의 인도는 아주 많고 아주 넓다. 다만 베이징이 걸어다닐 만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리고 베이징에서 외출할 때 도보로 걷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거기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첫째, 도로생태. 베이징의 단지내상점은 아주 부족하다. 베이징의 도시구조는 대단위/대형오피스빌딩/대형단지/대공원위주이다. ​길거리 양쪽은 거의 모두 행인과 관련없는 들어갈 수 없는 구역이고..

친셩샹(秦生祥): 시진핑의 심복으로 볼 수 있는가?

글: 호해(胡亥)​해외여론은 중공정치사건과 인물에 대하여 토론할 때, 자주 역사배경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해석하여, "관공전진경(關公戰秦瓊, 관우는 삼국시대인물이고, 진경은 당나라때 인물이어서 싸울 수가 없음)"같은 오판이 자주 발생하게 된다. 예를 들어, 최근 전 해군정위(海軍政委) 친셩샹(秦生祥)이 잡혀가서 조사받는다는 소문과 관련하여, 해외매체는 보편적으로 친셩샹이 시진핑이 발탁한 심복측근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이건 분명히 잘못된 인식이다. 사실상, 친셩샹은 시진핑의 적계(嫡係)가 아니로, 장쩌민(江澤民)의 심복인 자팅안(賈廷安)의 수하이다. ​친셩샹은 일찌기 북경군구 부정위 차오허칭(曹和慶)의 비서를 지냈고, 이어서 38군사정위(38軍師政委), 북경군구 정치부 조직부장등의 직을 맡는다. 그후 총정치..

"묵돌선우(冒頓單于)": 초원제국은 왜 중원통일왕조의 악몽이 되었을까?

글: 서북낭(西北狼)​자고이래로 사람들은 항상 논쟁이 있었다: 도대체 영웅(英雄)이 시세(時勢)를 만드는가, 아니면 시세가 영웅을 만드는가?​필자의 생각에 이 문제의 답은 지역마다 다르다(因地而異)는 것이다.​중원에서 개인영웅주의는 역사발전에 영향력이 제한적이었다. 천하대세는 항상 한 사람의 힘으로 뒤집을 수 없었다. 제갈량같은 지혜있는 인물도 결국 오장원에서 한을 품고 죽어야 했다.​그러나, 초원에서 왕조의 흥망성쇠는 완전히 어떤 영웅인물에게 달려 있었다. 흉노제국의 창업자인 묵돌선우가 바로 그러한 인물이다.​유목민족에게 가장 위험한 시기가 도래하다.​묵돌선우가 굴기하기 전에, 장성이북은 동에서 서로 차례대로 3대 강대세력이 있었다. 각각 동호(東胡), 흉노(匈奴)와 대월지(大月氏)이다.당시, 동호와 ..

모택동의 "신문학(新聞學)"원칙

글: 옥미수(玉米穗)​모택동은 30년대말이후 당의 이데올로기부문을 통제하기 위해 분투해왔고, 신문잡지는 중공의 이데올로기선전계통에서 특수한 지위를 점거하는데 비추어, 모택동은 중공의 신문잡지를 크게 주목했다. 1941년 5월 15일, 모택동은 와 신화사(新華社) 내부간행물 을 합병한다고 선언하고, 다음 날 정식으로 중공중앙기관보 를 창간했다. 모택동은 전당에 이후 중공의 "일체 당의 정책은 와 신화사를 통하여 전국에 발표된다"고 통지한다.​ 창간초기, 박고(博古)가 사장이 되고, 양송(楊松)이 주편(主編)을 맡는다. 이 두 사람은 당내 소위 국제파인물에 속한다. 그들은 를 소련 의 중국판으로 만들었다. 신문에서 당시 소련-독일전쟁의 전황을 대거 보도했다. 국제문제와 관련된 뉴스, 사론과 문장이 가득했으며..

동서방세계는 원래 동일하다

글: 시화(施化)​이 명제는 중국의 사상계, 학술계, 정치계층부터 세속민간까지 모두 잘못이거나 오류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동서방이 어떻게 동일하단 말인가? 인종도 다르다. 큰 코에 파란 눈, 노란머리. 먹는 음식도 다르고, 사고방식도 다르며, 행위도 당연히 다르다. 그렇지 않다면, 중국은 최근 수백년간 서방의 괴롭힘을 받았을 리 없다. 현재까지도 서방은 우리른 포위 봉쇄하고 있지 않은가.​아쉽게도, 이러한 인식은 진실하지 않다. 그리고 사실과 사고의 검증을 통과할 수 없다. 사실상, 서방인 자신들간의 상호전쟁이 그 빈도나 격렬한 정도로 볼 때, 동방과의 대항을 훨씬 넘어선다. 그리고 동방대국 자신의 내부에서의 치열한 투쟁은 동서방갈등과 비교할 수조차 없다. 아편전쟁은 마치 근대 동서방관계의 전환점인 것..

린이푸(林毅夫) 교수, 도대체 무슨 생각인가?

글: 노어시평(老魚時評)​누군가 내가 경제형세가 나쁘다고 말한다고 고발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오늘의 글은 가장 먼저 "권위"있는 매체의 소식부터 시작하여 삭제되는 것을 막으려 한다.​9월 26일, 중앙지도자들은 중요한 회의를 개최하였고, 이 회의는 주로 현재의 경제형세를 분석하고 추가적인 경제관련사항을 결정했다.​이번 회의에서 명확히 지적했다: "현재 경제운행에 약간의 새로운 상황과 문제가 발생했다. 전면적이고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현재의 경제상황을 대하여 곤란을 직시하고 믿음을 굳건히 해야 한다."​비록 문제와 곤란을 직시하겠다고 언급하였다는 것은 현재의 경제에 확실히 문제가 있고, 곤란이 발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이런 말은 대부분 중국인들이 느끼는 것과 부합한다.​다만, 재미있는 일은 이렇게 고도..

방국진(方國珍): "원나라를 망하게 한 자는 방국진이다(亡元者, 國珍也)"

글: 서북낭(西北狼)​청나라때의 명사연구자인 부몽린(傅夢麟)은 원나라말기 농민반란을 연구하면서 내린 결론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원나라를 망하게 한 자는 바로 방국진이다(亡元者, 國珍也)"​그렇다. 부몽린이 보기에, 원나라에 가장 크게 해를 끼친 자는 진우량(陳友諒)도 아니고, 장사성(張士誠)도 아니며, 더더구나 주원장(朱元璋)은 아니었다. 오히려 원나라말기 난세에 존재감이 별로 없는 소군벌 방국진이었던 것이다.​더욱 이해되지 않는 점이라면, 반원의 기치를 가장 먼저 들었던 방국진은 원말의 난세를 무사히 넘기고, "명태조 주원장의 통치하에 말년을 편안하게 보내면서, 자손을 보호하고, 부귀복록을 누렸던 것이다. ​그렇다면, 강남백만병을 모조리 죽여버렸다는 주원장이 왜 유독 자신과 천하..

"양주십일(揚州十日)": 청군은 정말 80만명을 도살했는가?

글: 초하간오락(初夏侃娛樂)​1645년 5월, 청군이 양주성(揚州城)을 함락하고, 대도살을 진행한다. 일본에 전해지는 에 따르면, "분시부(焚屍簿)에 기록된 사람을 조사하니 모두 팔십여만이다. 우물에 빠트리거나 강물에 몸을 던지거나, 문을 걸어닫고 목을 매고 불지른 사람은 포함하지 않았고, 포로로 잡혀간 사람도 포함하지 않았다." 그 뜻은 단순히 발견된 시체만 팔십여만이라는 것이다. 물에 빠져 죽거나, 불에 타 죽거나, 포로로 잡혀간 사람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숫자는 청나라말기에 많은 반청인사들에 의하여 선전되었고,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다. 여러 자료에 따르면 "양주십일"은 확실히 있었다. 그러나 숫자는 믿을만한 것일까?​양주에 80만인구가 있었을까?​사료의 기록에 따르면, 양..

런즈창(任志强) 딸이 시진핑에 보내는 공개서신

존경하는 시진핑 주석:​안녕하십니까​저는 런즈창의 딸입니다. 저는 당신께서 인도주의원칙에 기하여 제 부친의 병보석과 출국치료를 허락해주셔서, 그의 생명의 마지막 시기를 가족드로가 함께 하고, 받아야할 치료와 보살핌을 받을 수 있게 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저의 부친은 수감전에 이미 심각한 전립선질병을 앓는 것으로 진단받았고, 수술치료가 시급한 상황이었습니다. 수감된 후, 그는 수술과 치료를 받지 못했고, 병세는 계속 악화되었습니다. 오랫동안, 그는 매일 밤마다 십여차례 화장실을 다녀와야 하는 병마에 시달리고 있으며, 정상적으로 휴식을 취할 수 없습니다. 최근 몇달간 그는 다시 천식을 진단받았고, 건강상황이 계속하여 나빠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번 간청했지만, 여전히 수술치료를 허락받지 못했습니다. 그리..

시진핑의 군대 장악력이 약화되었는가?

글: 호해(胡亥)​오늘의 중국정치분야 헤드라인뉴스는 시진핑이 국경절 만찬을 개최했고, 대부분의 중국원로들을 초청했으며, 리뤼환(李瑞環), 원자바오(溫家寶) 두 명의 온화한 입장을 취해온 원로를 자신의 바로 옆자리에 배치하고, 높은 규격으로 예우했다. 그리고 발언에서 선대혁명가들을 대거 치켜세우고, 당중앙의 집단영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소리쳤다. 마치 원로들의 호응을 받아 자신의 기세를 끌어올리려는 것처럼 보였다. 시진핑은 등극한 이래 원로들의 정치참여를 엄격하게 막아왔고, 노인간정의 방식을 뿌리뽑고자 애써왔다. 명절이 되면 부득이 은퇴한 원로들을 부르기는 하지만 그 정도 선에서 그쳤고 최대한 조용하게 처리했다. 그런데, 이날은 전혀 상반되게 원로들을 끌어들이려는 모습을 보였다. 마치 원로들에게 뭔가 부탁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