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시화(施化)
이 명제는 중국의 사상계, 학술계, 정치계층부터 세속민간까지 모두 잘못이거나 오류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동서방이 어떻게 동일하단 말인가? 인종도 다르다. 큰 코에 파란 눈, 노란머리. 먹는 음식도 다르고, 사고방식도 다르며, 행위도 당연히 다르다. 그렇지 않다면, 중국은 최근 수백년간 서방의 괴롭힘을 받았을 리 없다. 현재까지도 서방은 우리른 포위 봉쇄하고 있지 않은가.
아쉽게도, 이러한 인식은 진실하지 않다. 그리고 사실과 사고의 검증을 통과할 수 없다. 사실상, 서방인 자신들간의 상호전쟁이 그 빈도나 격렬한 정도로 볼 때, 동방과의 대항을 훨씬 넘어선다. 그리고 동방대국 자신의 내부에서의 치열한 투쟁은 동서방갈등과 비교할 수조차 없다. 아편전쟁은 마치 근대 동서방관계의 전환점인 것처럼 얘기하지만, 태평천국전쟁과 비교하면, 중국에 이익을 훨씬 더 많이 가져다 주었다. 아편전쟁부터, 중국은 점점 서방에 닫힌 문을 열게 되었다. 그 결과, 중국은 농경사회에서 신속히 공업사회와 정보사회로 전환될 수 있었다. 태평군이 현대중국에 무엇을 남겼는가? 간단하게 생각해보라.
나는 사회에 진출한 이래로 느껴왔다. 중국인은 역사와 현실에서 고난을 겪고 있다. 외국으로 이민온 후, 더욱 체감하고 있다. 이런 고난은 원래 피할 수 있는 것이었다. 반드시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필자가 보기에, 그것은 동서방대립의 인식론에 있다.
비록 이런 주장은 대역무도(大逆無道)한 것으로 들릴 수 있을 것이고, 한간(漢奸)과 매국적(賣國賊)의 혐의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필자는 이 견해를 대담하게 말하고자 한다. 그리고 시간의 검증을 받아볼 생각이다.
동방세계와 서방세계는 창세기의 순간부터 시작하여 조물주가 나눠놓은 적이 없다. 하나의 우주, 하나의 지구, 만물로 구성된 세계는 아주 완전히 통합되어 있다. 조물주가 중생들이 서로 원한을 가지고 대항하고, 해결될 수 없는 갈등과 충돌 속에서 스스로를 훼멸시키도록 할 생각이나 의도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필자의 눈에, 현재 이렇게 심각하게 대립하는 것은 예로부터 많은 멍청한 사람들의 멍청한 인식이 만들어낸 것이다.
중국고대의 걸출한 사상가들 중에 동서대립이라는 설은 없었다. 노자(老子)는 발견했다. 천도(天道)는 오직 하나이고, 동서로 나뉘지 않는다는 것을. 그것은 바로 "일(一)"이다. 일생이(一生二), 이생삼(二生三), 삼생만물(三生萬物). 일은 시조원종(始祖原宗)으로 나중에 변화하지만 만변불리기종(萬變不離其宗)이다. 조식(曹植)의 그 칠보시(七步詩)에 나오는 바와 같이 "본시동근생(本是同根生)"이다. 이를 적용하면, 세계의 존재, 우주의 존재는 모두 오직 하나이다. 분할할 수 없고, 대립할 수 없다. 설마 음양이 서로 대립하지 않는단 말인가? 아니다. 음양은 일체의 호보(互補)이다. 그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안된다. 절반이 빠진 태극도는 아무 것도 아니게 된다.
혹시 노자는 견식이 좁아서 중국이외의 세계는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건 중국인의 지능을 너무 저평가한 것이다. 노자보다 훨씬 이전에 <산해경>이 나왔고, 거기에는 많은 해외에서 들은 이야기를 기록했다. 지역은 심지어 현재의 미주대륙까지 포함한다. 또한 삼성퇴(三星堆)에서 발견된 유물을 고증해보면 그 안에 나타나는 많은 요소는 오늘날 서방에서 온 것이다. 그렇다. 노자의 세계에 대한 인식은 나중에 눈을 감고 귀를 닫은 후세의 제왕들보다 훨씬 뛰어난 것이었다.
최근에 스피노자의 책을 읽어보았다. 그는 역사의 모래속에 매몰된 걸출한 사상가이며 철학자이다. 그에게서 나는 여러가지 증거를 찾았고, 노자의 지혜를 증명할 수 있었다.
먼저 간단히 몇 마디로 스피토자의 사상보고를 얘기해보자. 스피노자는 신학가집안에서 태어났고, 본인은 과학 특히 수학에 열중했다. 그의 최대공헌은 종교의 창호지를 찢어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진정한 창세설을 세상사람들에게 돌려주었따. 이 이경반도자(離經叛道者)가 보기에 모든 종교는 사람이 만든 것이거나 혹은 선인(先人)의 기록이다. 종교는 진정한 신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디에 있는지를 대답하지 못한다. 스피노자는 이렇게 보았다. 자연이 바로 신이다. 하느님은 세계를 창조한 적이 없다. 왜냐하면 하느님과 세계는 원래 같은 날 탄생한 동일체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자연에 존재한다. 자연의 의지가 바로 하느님의 의지이다. 우주대폭발(만일 있었다면)의 날이 바로 하느님이 출현한 날이다. 그이후 하느님, 조물주, 자연은 자신의 의지 혹은 준칙에 따라 천하만물을 운행하는데, 선악도 없고, 진가(眞假)도 없다. 오직 사람의 주관적인 판단이후에 비로소 선악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는 나중에 가장 우수한 과학자들 예를 들어 아인스타인같은 사람들의 생각과 결국 일치한다. 한번 음미해보라. 이런 인식은 노자의 도나 '일(一)'과 유사하게 일치하지 않는가?
종교든 무산계급혁명이론이든 모두 일부 사람들의 목적에서 나온 것이고, 일부 사람들을 위해 봉사한다(아쉽게도 모든 사람이 아니다). 종교는 신도를 위해 봉사한다. 혁명이론은 혁명참여자들을 위해 봉사한다. 인류는 한가지 인식론이 필요하다. 즉 특정 종족을 위해 봉사하거나 특정 계층을 위해 봉사하지 않으며, 더더구나 특정그룹을 위해 봉사하지 않고 지구상의 수십억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찾을 수 있다. 단지 한 가지 요건만 만족시키면 된다. 그것은 바로, 서로 다른 사람을 더 이상 서로 대립하는 집단으로 나누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다.
나는 감히 대담하게 말할 수 있다. 노자 그리고 나중의 장자(莊子), 스피노자 그리고 그의 계승자들은 모두 이런 인식론을 발견했다. 단지 잠시 명칭을 갖지 못했을 뿐이고, 오늘날의 중생들이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이다.
당금세계에서 유행하는 인식론은 대부분 무신론 혹은 유신론의 두 가지이다. 유신론은 각종 종교를 포함하고, 무신론은 많은 과학자와 혁명가들이 발견한 원리이다. 다만 무신이건 유신이건, 최대의 문제점은 사람의 유한함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두 자신이야말로 유일하게 세계를 정확하게 해석한다고 생각한다. 종교는 비록 하느님을 모시지만, 하느님에 대한 해석권을 독점하여, 자신이 하느님이 된다. 무신론자들은 대담하고 겁없이 진리를 추구한다. 다만 추구하는 과정에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좌충우돌하며 역시 자신을 하느님이라 여긴다. 이 두 가지 인식론에 의해서만 세계를 인식하고, 인류의 행위를 지도하게 되면, 결점을 갖게 된다. 큰 확률로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작은 잘못은 별 것이 아니고, 주위의 이성에 의해 시정되지만, 일단 권력이 고도로 집중되고나면, 폭력이 아주 강해지게 되고, 아무리 영명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조금만 부주의하면 큰 화를 불러오게 되다. 설사 지구를 멸망시키지는 않더라도, 다수에게 해를 끼치게 되는 것이다. 역사경험은 계속하여 이를 증명하고, 지금도 계속하여 증명하고 있다.
동방의 노자와 서방의 스피노자를 대표로 하는 자연동일론(自然同一論)이라는 관념은 아마 사고의 병목을 돌파하는데 도움을 줄지 모르겠다. 인류의 운명은 악순환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자연동일론은 단지 과도적인 잠정명칭이다. 보다 적합한 명칭을 찾기 전까지 사용하고자 한다. 이 인식론의 본질은 대자연은 물질과 정신의 통일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 하나면 모든 유기물질 무기물질을 포함할 수 있고, 사람과 자연도 포함된다. 그것의 조화는 너무나 신기하다. 완전히 사람의 이해와 인지구역을 넘어선다. 창조된 사람은 반드시 겸허하게 굴종해야 하고, 영원히 자연에 엎드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정한 징벌을 받게 된다. 대자연은 당연히 차이를 포함한다. 다만 모든 차이는 대자연의 다양한 체현이고, 서로 다르지만, 계속하여 서로 공존하고,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최소한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 다영하게 설계된 작용과 목적이 있는 것이고, 자연이 스스로 자신을 망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군가 스피노자를 무신론 과 불가지론자라고 공격할 때, 그는 서신을 써서 이렇게 해명했다. 자신은 무신론자가 아니라고. 왜냐하면 대자연을 신과 같이 존경하기 때문에 유신론이라고. 비록 성경 혹은 코란경에 기록된 그런 신은 아니지만. 동시에, 그는 사람과 만물은 자연의 일부분이고, 당연히 주의 부분적인 존재를 통해 점진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인식이 비록 국한적이고, 일시에 단지 극히 적은 부분만 인식하게 되지만, 그건 전체의 진실한 일부분이다. 그러므로 불가지(不可知)는 아니다. 자연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부단히 변화한다. 사람의 인식도 수시로 변화한다. 누구도 어떤 인식에 머물러 있으면서 자칭 모르는 것이 없고, 전지전능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인식론은 사람의 광망(狂妄)을 피할 수 있게 하고, 나아가 이로 인해 발생하는 화를 피할 수 있게 해준다.
광망을 피하는 외에, 같은 이론으로 분열과 대항을 피할 수 있다. 이유는 앞에서 설명한 바 있다. "본시동근생". 모든 종족이 하나의 자연에 속한다면 모두 하나의 신의 자손이라면, 나누어서 살 필요가 있을까? 하물며 서로가 서로를 죽일 필요가 있을까?
중국인은 대동세계(大同世界)를 그리워했고, 지금까지도 그러하다. 대동을 추구하는 사람이 다수이다. 대동의 실현을 위하여, 삭족적리(削足適履, 신발에 맞추기 위해 발을 자르다)도 마다하지 않고, 각종 냉폭력과 열폭력이 자행되었다. 서로 다른 사람과 사물을 억누르고 제거했다. 동방에 있어서, 서방은 반드시 없애버려야하는 것이다. 거의 모든 중국인은 내심 깊은 곳에 이런 정서를 가지고 있다: 언젠가, 미국패권을 눌러버리고, 중국이 세계를 통일할 것이다.
한 가지 사실을 장기적이고 반복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중국이건 외국이건, 혹은 동방이건 서방이건, 모두 동일한 조물주, 동일한 대천세계에 예속되어 있다. 소위 대동은 자고이래로 존재했다. 가까이 있는 것을 버리고 멀리 있는 것을 추구할 필요가 없다. 중국에서 가장 지혜로운 고대인식론은 서방에서 최첨단의 근대인식론과 완전히 일치한다. 소수의 변방지역에서 가난구제를 위해 일하는 외국인은 중국인들과 아주 잘 어울려 지낸다. 아무런 대항도 없다. 외국인에게 입양된 중국고아는 외국가정에서 생활하고 성장하는데 아무런 곤란도 없다.
대량의 기본사실은 모두 증명한다. 중국인의 어떤 인식은 편차가 있고, 그것도 심하게 벗어나 있다. 나는 이런 편차가 지능이 낮기 때문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정상적인 지능을 가지고 있으면 완전한 사실의 앞에서 모두 정확하게 판단을 내리게 된다. 이런 편차는 어던 사람이 고의로 왜곡시킨 것이다. 그들은 너보다 훨씬 총명하다. 그들의 친척들이 재산을 둔 곳을 보면, 이미 그들은 무슨 동서양대립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언론에서, 그들은 굳건하게 애국을 주장하며, 모든 동포들이 서방에 대항하며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가 죽을때까지 해야한다고 호소하고 강요한다. 그리고 이에 근거하여 부추를 대량으로 걷어가고 있다.
이에 해다여, 일개 초민인 필자는 완전히 아무런 힘도 없다. 다행히 키보드를 가지고 있다. 하이테크에 감사한다. 그래서 나에게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일찌감치 마음 속에 둔 말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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