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78 역사연구와 정치선전: 항전사기록의 병폐 (2) 글: 강극실(姜克實)군신 기쿠치 고헤이(木口小平)동상(하마다시 호국신사). 1918년 심상소학교 1학년 수신교과서. 3. "군신(軍神)"과 "영웅(英雄)"정치선전이 전사기록(戰史記錄)면에서 나타나는 특징중 하나는 극단적인 영웅이미지를 창조하고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목적은 민족정신, 애국주의, 영웅사적교육을 통하여, 특정조직에 대한 충성, 헌신정신을 선전하고, 이를 통해 정권을 공고히 하려는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전쟁전의 일본은 국민으로 하여금 천황제국가의 침략전쟁에 헌신하도록 내몰기 위하여, 선전수법으로 대량의 군신(영웅)을 창조했다. 예를 들어, 청일전쟁때의 나팔수 기쿠지 고헤이(木口小平), 러일전쟁때 여순항구봉쇄전투의 히로세 다케오(廣瀨武夫) 중좌, 태평양전쟁때 진주민기습한 구군신(九.. 2024. 10. 25. 역사연구와 정치선전: 항전사기록의 병폐 (1) 글: 강극실(姜克實)중일전쟁후, 지금까지 이미 79년이 흘렀다. 오늘날의 소위 고령자층은 절대다수가 전쟁을 체험하지 않았다. 전쟁이라는 단어는 21세기의 현대인에게 있어서 이미 요원한 과거가 되어 버렸다. 만일 자연스럽게 놔두면, 동아시아각국의 민중들 사이에서 대립과 반목이 발생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국가간의 대립, 국민간의 반목은 전후 80년이 가까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왜 역사의 원한, 대립은 해소되지 않는 것일까? 원인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역사인식의 대립에 관하여 필자는 두 가지 기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본다. 하나는 역사교육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기록의 문제이다. 양자간에는 하나의 공통된 특징이 있다. 즉 국가간의 정치적입장, 이해관.. 2024. 10. 25. 장춘참안(長春慘案): 수십만명이 굶어죽은 죽음의 도시 글: 가람(歌藍)2016년 8월 23일도쿄의 일본학자 엔도 호마레(遠藤譽)가 작년 저서를 통해 전중공지도자 모택동(毛澤東)이 항전기간 일본과 결탁한 역사기록을 폭로한 후, 1984년 그녀가 일본에서 출판한 에서 그녀가 중국 장춘에서 겪은 도시포위의 고난을 회고한 책이 다시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책의 영문판은 으로 8월 미국에서 출판되었고, 미국의 싱크탱크 2049연구소의 초청으로 워싱턴으로 가서 강연하기도 했다.는 1941년 중국 장춘에서 태어난 도쿄복지대학 국제교류센터 주임 엔도 호마레 교수가 그녀가 중국에서 겪은 일본의 중국침략, 국공내전, 중화인민공화국탄생등 파란만장한 유년기를 회고한 것이다. 특히 1948년 공산군이 장춘을 포위하면서, 국공내전의 총탄, 도시포위봉쇄의 기근, 시체더.. 2024. 10. 25. 미국은 근대중국의 친구였다. 글: 장문명(蔣聞銘)근대중국과 미국의 관계를 얘기하려면 역시 손중산(孫中山)부터 시작해야 한다. 근대중국은 나라는 약하고 백성도 가난해서 망국의 화를 피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중국역사상 망국의 일은 한두번 발생한 것이 아니다. 금나라에 망했었고, 몽골에 망했었고, 만청에 망했었다. 그러나 한인들은 매번 인구가 많다는 것에 의지하여, 나라는 망했지만, 인종은 망하지 않았다. 이렇게 보면 나라가 망하는 것은 그다지 큰 일이라 할 수가 없다. 손중산이 이번에 한 말은 달랐다. 나라가 망할 뿐아니라, 인종의 씨까지 말릴 것이라는 것이었다. 망국(亡國)에 멸종(滅種)까지, 그러다보니 이번에 중국이 직면한 위기는 이전보다 훨씬 심각했다. 그렇다면 누가 중국을 멸망시키고, 동시에 중국인의 씨까지 말려버릴 수 있.. 2024. 10. 25. "장가왕조(蔣家王朝)"는 왜 2대로 끝났을까? 글: 노황설사(老黃說史)장개석(蔣介石)이 장경국(蔣經國)을 위해 길을 깔아준 것과 마찬가지로, 장경국도 아들이 순조롭게 자리를 넘겨받게 하기 위하여 고심을 해서 준비를 했다. 그러나 의외의 사건이 하나 발생하게 되어, "장가왕조" 제3대후계자의 "등극의 길"을 끊어지게 된다. 바로 "강남명안(江南命案)"이다.장경국에게는 4남1녀가 있다. 그중 장효문(蔣孝文)과 장효무(蔣孝武)이 장방량(蔣方良)의 소생이다. 다만 장효문은 신체가 허약하여 중임을 맡기 힘들었기 때문에, 장효무가 중점배양대상이 된다.장효무의 인생이 부친의 안배하에 궤도에 들어가고 있을 때, "강남명안"이 발발하여, 이 유력했던 "이태자(二太子)"는 쓸쓸히 무대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장효무가 물러나면서, 결국 장씨가족은 정식으로 정.. 2024. 10. 25. 대만의 어제와 오늘 글: 장문명(蔣聞銘)대만(臺灣)은 바다에 홀로 떠 있어, 역대왕조에서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네덜란드인이 대서양의 동해안을 따라 남하하여, 희망봉을 넘어 인도양을 지나 태평양으로 들어와서 대만섬을 만나고, 상륙했는데 아무도 따지지 않았다. 청나라에서 산해관을 넘어 북경으로 들어온 후, 정성공(鄭成功)이 패배하여 도망칠 곳에 없게 되자 그제서야 대만을 떠올렸고, 네덜란드인을 쫓아냈다. 그러나 그도 결국 강희제에게 멸망당한다. 이렇게 하여 대만은 두 차례에 걸쳐 "수복(收復)"되었다. 한번은 정성공에 의해서, 또 한번은 강희제에 의해서."수복"이라고 하는데, "수(收)"는 거둔 것이니 맞는 것이지만, "복(復)"은 도대체 무슨 말인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중국인들이 현재는 기고만장하여 대만은 중국영.. 2024. 10. 24. 이전 1 2 3 4 5 6 7 ··· 1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