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제사(諸史)현대한어에서 "촉(蜀)"은 일반적으로 주(周)나라때의 파촉국(巴蜀國), 유비의 촉한(蜀漢)정권, 사천(四川)의 별칭으로 쓰인다. 이 셋은 모두 현재의 사천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사료에 분명히 기록된 것을 보면, 사천이외에도 대량의 "촉지(蜀地)"가 있었가. 그리고 상(商)나라때도 촉국(蜀國)이 있었다.예를 들어, 에는 "신황벌촉(新荒伐蜀)"이 기록되어 있다: 목야(牧野)전투이후, 주무왕은 수하에게 명령하여 여전히 저항하고 있는 상왕조의 촉국을 공격하도록 한다. 거기에는 "경자벌촉(庚子伐蜀), 을사자촉지(乙巳自蜀地)"라고 쓰여 있다. '경자일'에서 '을사일'까지는 겨우 6일이다. 주무왕의 군대가 하북북부에서 사천까지 6일만에 갈 수는 없다. 그러므로, 주무왕이 공격한 '촉국'은 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