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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문혁후)84

요문원(姚文元): 잉크병안에서 기어올라온 정계고위층 글: 하국승(夏國勝) 요문원의 일생은 붓으로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었고, 해를 입은 사람들이 아주 많다. 그는 사람을 해치더라도 잘 해쳤고, 명리(名利)를 다 거둔 것은 3번이었다: 첫번째는 호풍을 비판하여 두각을 드러냈고, 둘째는 <영이비고(靈以備考)>로 새로운 스타가 되.. 2012. 1. 11.
장춘교(張春橋)의 죽음 글: 섭영렬(葉永烈) 2005년 5월 10일, 신화사는 북경발로 <<임표,강청반혁명집단사건의 주범 장춘교 병사>>라는 기사를 송고했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임표, 강청 반혁명집단사건의 주범 장춘교가 암으로 2005년 4월 21일 병사하였다. 장춘교. 88세, 1981년 1월 최고인민법원 특별법정에서 사형, 2년.. 2011. 1. 12.
왕홍문(王洪文)은 어떻게 후계자의 자리에 올랐는가? 글: 김산(金汕) 1972년 9월, 중앙정부는 모택동의 지시에 따라, 왕홍문을 북경으로 불러들인다. 제10기 1중전회에서 왕홍문은 당의 부주석에 오른다. 그의 서열은 모택동, 주은래의 바로 다음이었다. 이리하여 그는 모택동의 '후계자'로 떠오른다. 그 당시 주은래는 이미 불치의 암을 앓고 있었으며, 얼마.. 2009. 12. 21.
중국 제2대 지도자들의 부인의 관직은? 탁림(卓琳): 등소평(鄧小平) 부인(1916-2009) 1973년 국무원 판공청 기요비서 1978년 1월 중앙군사위원회 판공청 고문 2009년 7월 29일 사망 우약목(于若木): 진운(陳雲) 부인(1919-2006) 건국초기 중앙재정경제위원회 연락실 근무 중국식품공업협회 고문, 연구원 중국보건식품협회 명예회장 중국학생영양촉진회 .. 2009. 9. 15.
이작붕(李作鵬): 사람은 가고, 수수께끼는 남고... 이작붕,오법헌,임표,황영승,구회작(왼쪽부터) 글: 한복동(韓福東) 2009년 원단후 이틀만에(1월 3일), 파란색 환자복을 입은 이작붕은 북경안정병원 18병구의 병상에서 영원히 두 눈을 감았다. 향년 95세이다. 이제 임표(林彪)의 소위 "사대금강(四大金剛)"인 황(黃永勝), 이(이작붕), 오(吳法憲), 구(邱會作).. 2009. 1. 17.
왕양(汪洋)과 오지포(吳芝圃) 글: 주건국(朱建國) 한가지 소식을 2008년 11월 28일에 보니 한가지가 생각난다. 현임 광동성위서기인 왕양의 "등롱환조(騰籠換鳥, 새장을 비워서 새를 바꾼다)"의 산업업그레이드는 50년전의 하남성위서기 오지포의 공산주의 "대약진"과 너무나 닮았다. 문혁전에 광주로 가서 중남국 문교서기를 맡았던 .. 2009. 1. 12.
멍쉐농(孟學農): 두번째 문책사임 글: 사마창북(司馬昌北) 중국의 관료사회에서, 멍쉐농은 아마 역사에 기록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의 관료생애는 아주 희극적이어서 최소한 "얘깃거리"는 제공해준다. 사직 - 재기용 - 재사직. 아마 어느 관리의 관료생애도 이처럼 풍부한 내용을 지니지 못했을 것이다. 많은 정계의 친구들은 멍.. 2008. 12. 29.
오계현(吳桂賢): 중화인민공화국 최초의 여성부총리 글: 김산(金汕) 최근 봉황TV를 보다가, 건국이래 첫번째 여성부총리인 오계현을 보았다. 처음에는 그녀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그저 이전에 만난 것같고, 기질이나 풍도가 요즘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할머니들 같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경력을 듣고서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30여년전에, 37세였던 그녀는 .. 2008. 12. 18.
호요방(胡耀邦)의 자손들: 4자녀가 3개성(姓). 글: 유창(劉暢). 환구인물 2008년 제2기 호요방의 자녀들의 이력을 뒤져보면, 모두 성공한 인사들이다. 장남 호덕평(胡德平)은 중앙통전부 부부장, 전국공상련 부주석이며, 차남 유호(劉湖)는 화윤집단 상무동사, 부총경리이며, 삼남 호덕화(胡德華)는 1990년대에 중국과학원 소프트웨어센터에서 나와 사.. 2008. 3. 13.
공덕성(孔德成) : 공자의 77대 직계 후손 글: 황경도(黃驚濤) 2천여년의 역사에서 공자의 적전(嫡傳) 후예중 산동성 곡부의 공부(孔府)를 떠난 사람은 단지 세 사람이다. 그중 가장 최근의 사람이 바로 공덕성(孔德成)이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장개석이 1948-1949년 대륙을 떠나 대만으로 도망치면서 대량의 황금과 문화재 이외에 일부러 3명을.. 2007. 8.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