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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문혁후)

마오신위(毛新宇): 마오쩌둥의 유일한 손자

by 중은우시 2012. 3. 9.

글: 왕남방(王南方)

 

 

 

양회(兩會, 전인대와 전국정협)가 진행되면서, 우리는 마오쩌둥의 유일한 손자인 마오신위가 전국정협위원으로서 매체의 남다른 주목을 받고 있다. 마오신위의 성장족적을 살펴보도록 하자:

 

마오안칭(毛岸靑)과 샤오화(邵華)의 사이에서 난 아들인 마오신위는 마오쩌둥의 제3대중에서 유일한 직계남자후손이다. 1970년에 출생한 후, 마오쩌둥은 그에게 "신위"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그 뜻은 "곤륜산이 무너져 절벽이 되는 것처럼, 태풍이 온천지를 휩쓰는 것처럼"이라는 이상을 현실로 만든후에 건립한 신세계를 가리킨다. 어떤 사람은 마오신위가 마오쩌둥과 닮았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마오신위의 용모가 조모인 양카이휘(楊開慧)를 더욱 닮았다고 한다.

 

그러나, 한가지 같은 점은 마오신위가 할아버지인 마오쩌둥과 마찬가지로, 모두 홍샤오러우(紅燒肉)를 아주 즐겨먹는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마오신위를 묘사한다: 얼굴은 돈후하고, 몸매는 건장하며, 성격은 침중하고, 복장은 소박하다. 기자들과 얘기할 때면 생각이 기민하고 수시로 예지가 드러난다.

 

1992년 7월, 마오신위는 중국인민대학 역사학과를 졸업한다. 1992년 9월에서 1995년 7월까지 중앙당교 이론부에서 석사과정을 공부하여 학위를 취득한다. 나중에 해방군 군사과학원에서 박사과정을 고우하고, 2003년 7월에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마오신위는 현재 군사과학원에서 마오쩌둥군사전략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부사당장급 연구원이다.

 

그외에 마오신위는 두 가지 직함이 더 있다. 하나는 전국청련(全國靑聯)의 상임위원이고, 다른 하나는 북경시 서성구 정협위원이다.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마오신위는 작년 광주대학의 요청을 받아 보고서를 작성한다. 동시에 광주대학 송전학원의 객좌교수로 초빙된다.

 

마오신위가 자술한 바에 따르면, 그는 마오쩌둥사상을 연구하는 길을 걷고 있다. "이것은 가정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에 들어갈 때 이 전공이 아니었다. 그때는 중국역사를 배웠다." 마오신위는 마오쩌둥사상을 연구하는 것을 그의 일생에서의 가장 중요한 선택으로 보고 있다.

 

마오신위가 마오쩌둥사상에 흥취를 느끼기 시작한 것은 그가 북대부중의 중학생으로 있을때 부터이다. 마오신위의 한 동창생에 따르면, 고등학생때 어느 수업에서든 마오주석의 시사 혹은 <당팔고에 반대한다>같은 마오쩌둥을 따르는 관련 과목의 글이 있을 때면, 마오신위가 그 수업은 아주 집중을 해서 들었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얼굴에 자랑과 영광을 가득 드러냈다고 한다.

 

그 동창생의 회고에 따르면, 마오신위가 중학을 다닐 때, <북경청년보>에 '신위'라는 서명의 산문을 발표했다고 한다. 내용은 그가 대표단을 따라 북한에 가서 마오안잉(毛岸英)의 묘에 성묘한 일이다. 거기에 적힌 한 마디는 당시 동창생들에게 널리 퍼졌다: "나는 어떻게 해도 믿을 수가 없다. 큰아버지가 바로 눈앞의 묘비에 쓰여있는 세개의 차가운 글자일 줄은"

 

2003년, 마오신위가 완성한 논문 <마오쩌둥의 군사전략진공사상>은 당해년도 <전국백편우수박사논문집>에 실린다. 보도에서는 이 논문을 잘 쓰기 위하여, 마오신위는 중국의 거의 절반을 돌아다니면서 현지에서 해방전쟁기간동안 있었던 많은 전투의 현장을 고찰했다고 한다.

 

마오신위는 마오쩌둥의 방어는 항상 '적극적 방어'였다고 생각한다. 즉 진공의 성격을 지닌 방어이다. 마오쩌둥은 일찌기 이 전략사상을 글로 써서 정리할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여러가지 이유로 손을 대지 못한다. 그의 논문은 바로 마오쩌둥 군사사상이론의 한 공백을 메우는 것이다.

 

마오신위는 두번의 혼인을 겪는다. 1997년, 그는 첫번째 부인인 하오밍리(郝明莉)와 결혼한다. 보도에 따르면, 결혼전에 하오밍리는 산동 태안의 어좌호텔에서 종업원으로 있었다. 결혼후에는 산동광산학원에서 북경대학 국제상무학과로 전학한다. 그러나, 혼인이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못한다.

 

2000년, 마오신위는 전장(鎭江)아가씨인 류빈(劉濱)을 소개로 알게 되고, 2002년에 결혼한다. 류빈도 지금은 군인이라고 한다. 의료분야에 종사하고있다고 한다.

 

2003년 12월 26일, 마오쩌둥 탄신110주년인 날에, 류빈은 마오쩌둥의 제4대남자후손 마오둥둥(毛東東)을 낳는다. 증손인 마오둥둥과 마오쩌둥은 생일이 같다.

 

마오신위는 말한다. 마오동동이 1살때, 집안식구들이 그를 데리고 고향인 샤오산으로 친척들을 만나러 갔다. 아마도 혈연때문인지, 둥둥은 증조부에게 천연적인 '영감'이 있나보다. 가족들이 마오주석의 동상에 화환을 바칠 때, 마오동동은 계속하여 '할아버지'를 외쳤다고 한다. 이때 둥둥은 겨우 두 글자짜리 단어밖에는 말하지 못했고, "우리는 당시에 아무도 그에게 그 말을 가르치지 않았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