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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30

석형(石亨): 탈문지변의 공신 글: 두문자(杜文子) '탈문지변(奪門之變)'을 일으켜 명영종 주기진(朱祁鎭)은 '태상황'에서 다시 '황상'이 되었다. 여기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인물이 바로 석형이다. 석형은 무장으로 전공이 혁혁했다. 명영종을 옹립하여 복위히킨 후, 자신의 권력과 부에 대하여 만족하지 못하게 된다. 내.. 2014. 10. 2.
"상관완아묘(上官婉兒墓)"에 대한 6가지 의문 글: 배광휘(裴光輝) 1. 장지(葬地)에 대한 의문 상관완아는 생전에 당중종의 소용(昭容), 즉 이현의 비빈이다. 경룡4년 육월 이일(710년 7월 3일) 이현은 위후에게 신룡전에서 독살당한다. 향년 55세이다. 십일월 당중종을 정릉(定陵, 지금의 섬서성 부평현 서북 15리에 있는 용천산 남록)에 장.. 2013. 11. 10.
무삼사(武三思)의 처세명언: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 글: 독서삼매(讀書三昧) 무삼사가 한 처세명언이 있다: "(나는) 좋은 사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그저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不知何等名作好人, 唯有向我好者, 是好人耳)"(<구당서.무삼사열전>). 그의 말을 들으면, 아주 실제적이다. 어떻게 들어도 조조의 그.. 2013. 11. 10.
위후(韋后) 모녀는 당중종을 독살했을까? 글: 복녕객(福寧客) 역사상 가장 가련한 황제를 꼽으라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당중종 이현을 떠올릴 것이다. 사서의 기록에 의하면, 이 가련한 남자 겸 황제는 먼저 보기드문 강한 모친이 있었고, 그 다음에는 자신을 무시하는 음란한 처가 있었고, 더더구나 그를 황제에 오르는데 걸림돌.. 2013. 11. 10.
대당제일재녀 상관완아(上官婉兒)는 정말 음탕했는가? 글: 이자지(李子遲) 710년, 이융기(당현종)가 정변을 일으켜, 위후(韋后) 일당을 제거하였다. 그중에는 당나라 역사상 저명한 여성정치가 상관완아가 포함되어 있다. 그녀가 죽은 후 어디에 묻혔는지에 대하여는 지금까지 하나의 수수께끼였다. 최근 들어서야 비로소 이 수수께끼는 풀렸다.. 2013. 9. 19.
이융기(李隆基)가 상관완아(上官婉兒)를 살해한 역사진상 글: 중천비홍(中天飛鴻) 상관완아는 당고종때 조정중신인 상관의(上官儀)의 손녀이다. 14살때 총혜선문(聰慧善文)으로 일대여황 무측천에게 중용되어, 궁중의 문서업무를 여러해동안 관장하며, "건괵재상(巾幗宰相)"으로 불린다. 당중종때, 소용(昭容)에 봉해지고, 권세가 중천에 뜬 .. 2013. 4. 13.
무측천과 후계자문제 글: 성공인(誠公人) 무측천은 말년에 아주 골치아픈 문제를 떠안게 된다. 그것은 바로 유산을 계승할 후계자문제이다. 그녀의 유산은 바로 그녀가 피바람을 겪으면서 건립한 대주왕조의 황제 자리이다. 여인으로서 그녀는 중국역사상 유일한 여황제이고, 이 기업은 정말 쉽지 않게 얻은 것이다. 당태.. 2011. 7. 14.
당중종: 세명의 여인에게 시달린 가여운 천자 글: 중천비홍(中天飛鴻) 천자(天子)는 하늘의 아들이다! 손에는 천지를 욺켜쥐고, 앉아서 천하를 호령한다.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어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으며, 더더구나 삼천미녀가 곁에서 시중을 든다. 고대에 황제의 보좌에 오르는 것을 꿈꾸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역대왕조에서 왕이 .. 2008. 10. 10.
신룡정변(神龍政變): 무측천의 최후의 나날 (II) 5 소위 "남총(男寵)"은 바로 면수(面首)이며, 자신의 몸을 가지고 권세를 가진 여자를 기쁘게 하는 남자를 말한다. 무측천도 정상적인 생리적 욕구가 있고, 거대한 심리적 압력을 받았다. 복잡한 정무를 처리한 후에는 그녀도 안위가 필요했다. 누군가 곁에 있어주어야 했다. 나이가 들면서, 무측천은 권.. 2008. 10. 8.
무측천이 황위에 오르기까지의 6차례 모살사건(謀殺事件) 글: 수은하(水銀河) 황위전승에 있어서, 당나라는 피비린내가 가장 짙은 왕조이다. 많은 황제들은 모살사건을 거친 후에 황위에 등극하였다. 예를 들면, 당태종은 현무문의 변으로 자신의 두 친형제를 죽였다; 당현종의 황위는 백부, 백모 및 고모를 죽이고 얻었다; 당대종도 당숙종황후를 모살한 후 .. 2008. 9.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