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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당)

당중종: 세명의 여인에게 시달린 가여운 천자

by 중은우시 2008. 10. 10.

글: 중천비홍(中天飛鴻)

 

천자(天子)는 하늘의 아들이다! 손에는 천지를 욺켜쥐고, 앉아서 천하를 호령한다.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어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으며, 더더구나 삼천미녀가 곁에서 시중을 든다. 고대에 황제의 보좌에 오르는 것을 꿈꾸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역대왕조에서 왕이 전쟁을 일으키고, 제후들이 서로 싸우거나, 부자간에 다투고, 형제간에 서로 죽이며, 심지어 농민들까지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 모두 천자가 되어보고 싶다는데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황제가 되어서도, 마음대로 할 수 없고, 꼼짝달싹할 수가 없어서, 황제의 임무를 다하지 못하고 그저 멍청한 황제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가 바로 세명의 여자에게 시달린 당나라황제 당중종(唐中宗) 이현(李顯)이다.

 

사료의 기재에 따르면, 이현은 당고종 이치의 일곱째 아들이며, 무측천의 세번째 아들이다. 이현의 신세내력이 독특한 점은 당나라의 여러 황제중에서도 돋보이며, 역대 모든 황제중에서도 드물게 보는 것이다. 이현은 일생동안 두번 황태자가 되었고, 두번이나 황제의 자리에서 폐위되었으며, 두번이나 다시 등극했다. 황제가 되는 길은 이렇게 험난했던 것이니, 고금에 보기 드물다. 이현의 일가중에서 부친도 황제이고, 동생도 황제이며, 아들도 황제이고, 조카도 황제이다. 더욱 대단한 점은 모친도 황제였다는 점이다. 이처럼 일가의 남녀 모두가 황제인 현상은 중국역사상으로도 전무후무하다. 이현은 이 집안에서는 가장 덜떨어진 황제임에 틀림없다. 그는 정치적으로 업적이 없을 뿐아니라, 가정생활에서도 지극히 멍청했다. 어떤 사람은 남자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세 사람의 여인은 모친, 처 그리고 딸이라고 한다. 다만, 이현의 일생에서 이 세 가장 중요한 여인은 모두 앞다투어 그를 자신의 손안에 놓고 다룰려고 하였다. 심지어 그에 대하여 살심을 품기도 했다. 이 세 여인의 악다구니속에서 이현의 일생은 그저 기가 죽어서 멍청하게 지내는 수밖에 없었다.

 

먼저, 이현을 괴롭힌 것은 그의 모후인 무측천이다. 무측천은 여황제로서 권력이 있으면 행복하고, 권력이 없으면 불행하다는 법칙을 너무나 잘 알았다. 그러므로, 그녀는 반드시 이현을 붙잡아 자신의 지고무상의 권리를 계속하고자 하였다. 사실, 무측천의 여황의 보좌는 이현의 손안에서 빼앗아 온 것이다. 683년 십이월, 당고종 이치는 낙양에서 붕어한다. 유조에서는 태자인 이현으로 하여금 관앞에서 즉위할 것을 명하였다. 다만, 이현은 태자로 지내는 동안 무측천에 의하여 아주 겁많고 조심스럽게 길러졌다. 현재 비록 부황이 세상을 떠났고, 자신이 등극해야 하지만, 즉위후의 이현은 여전히 모후의 말을 그대로 따랐고, 조금도 어긋나게 처리하지 못했다.

 

하루는 당중종이 자신의 장인인 위현정(韋玄貞)을 시중, 즉 재상으로 발탁하려고 하였다. 조서를 내보낸 후 또 다른 재상인 배염(裴炎)이 격렬하게 반대해서, 다툼이 벌어지게 되었다. 무측천은 이 사실을 알고는 대노했다. 즉시, 천후의 명의로 대신들을 건원전에 불러모아서 이 일을 논의하게 된다. 그리고 우림장군 정무정에게 병사를 이끌고 입궁하게 한다. 무측천은 그 자리에서 이현을 폐출시키기 된다. 이렇게 무측천의 한마디로 대당천자 이현은 여릉왕으로 강등되어, 방주에 감시를 받으며 거주하게 된다. 이때 이현은 황제가 된지 만 두 달도 되지 않았으므로 대신들과 얼굴도 다 못익혔다. 그런데, 개인적인 사유로 인한 인사사건으로 인하여 폐위되어버린 것이다.

 

장안을 떠나고, 모후를 떠나니 이현은 원래 마음이 편안해야 했다. 그러나, 생각도 못한 것은 그가 다시 자신의 처인 위씨(韋氏)에게 제압되었다는 것이다. 이현은 폐출되어 방주로 유방간지 오일이 막 지났을 때, 다시 균주로 유배지가 바뀐다. 그 다음 해 3월에 다시 방주로 되돌아온다. 그 후부터 고난의 세월이 시작된다. 방주에서 그 후 꼭 15년을 힘들게 지낸다. 이 기간동안 조정에서는 하늘이 뒤집어지고, 땅이 꺼지는 큰 변화가 발생했다. 이현이 폐위된 후, 동생 이단이 며칠간 황제를 지낸 후, 글을 올려 양위한다. 모후인 무측천이 막후에서 무대로 나온 것이다. 이리하여 공전절후의 여성황제가 탄생한다. 다만, 적지 않은 조정대신과 지방관리들은 강력하게 반대했다. 양주에 있던 서경업 및 대당종실의 낭야왕 이충, 월왕 이정등은 무황반대, 중종복귀의 기치를 내걸고 연이어 반란을 일으켰다. 이현은 이 소식을 듣고, 다시 황제에 오른다는 희망에 들뜬 것이 아니라, 사지를 부들부들 떨며 두려워했다. 그는 손속이 악독한 모후가 이를 빌미로 그를 죽여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여러해동안 이현은 전전긍긍하면서 불안한 나날을 보냈다. 침식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악몽을 연이어 꾸었으며, 죽고 싶다는 마음까지 들었다. 다만 결국 죽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강인한 그의 처가 그를 지탱해주었기 때문이다.

 

이현의 처인 위씨는 이현때문에 황후가 되지 못했을 뿐아니라, 방주로 끌려와 있었다. 그러나 위씨는 심기가 있고 의지가 있는 여인이었다. 자주 남편을 독려하여 강인하고 용감하게 생활해야 한다고 했다. 위씨가 참을 성있게 격려해주는 바람에, 이현은 처량한 세월을 넘길 수가 있었다. 처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동시에 그는 마음 속으로 확실히 알고 있었따. 이때 자신에게는 또 하나의 새로운 '모후'가 생겼다는 것을

 

698년, 무측천은 명을 내려 이현에게 즉시 낙양으로 와서 병을 치료하도록 한다. 하늘에서 떡이 떨어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이현은 이 명에 깜짝 놀란다. 모후가 이제 자기를 죽이려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하여 온 몸이 마비되어 움직이지도 못할 지경이 되었다. 이런 중요한 순간에 위씨가 앞장섰다. 이현을 부축하고 성지를 받았으며, 즉시 출발했다. 낙양에 도착한 후에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원래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다시 그를 태자로 삼으려는 것이었다. 이 의외의 기쁨에 이현은 잠시 자기의 몸을 가눌 수가 없을 정도였다.

 

무측천은 한번도 합격점을 받는 모친은 아니었다. 그녀는 자기 손으로 두 아들을 죽였고, 두 아들을 연금했다. 황제자리에 있어서는 모자간의 정이라는 것은 없었다. 이씨황족과의 관계에 있어서, 그녀는 오히려 무씨가족이 황제위를 이어주기를 바랐다. 무측천은 무승사(武承嗣)를 생각했다. 혹은 무삼사(武三思)에게 황태자의 자리를 주려고도 했다. 다만, 대신들의 강렬한 반대에 부닥쳤다. 그들은 무측천은 고종의 황후의 신분으로 군림천하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무씨종족의 사람이 황제가 되는 것까지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현이 비록 유약하고 무능하지만, 어쨌든 이씨황족의 일맥이다. 그리하여 조정중신은 이현을 다시 모시고자 하였다. 무측천이 망설이며 결정하지 못하고 있을 때, 재상 적인걸이 일어나서, 무측천을 설득했고, 그리하여 이현은 십오년의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현은 다시 태자의 보좌에 앉았다. 705년 정월, 무측천의 병이 위중해지며, 조정대신들은 무측천의 총애를 받던 장씨형제가 이 틈을 타서 변란을 일으킬까봐 두려워했다. 그리하여, 재상 장간지는 다른 대신 및 우림장군과 연합하여, 오백정예병사를 이끌고 병간(兵諫, 쿠데타)을 일으켰다. 그들은 먼저 장씨형제를 죽이고, 그 후에 무측천에게 이현에게 양위할 것을 요구했다. 이때 이현은 전전긍긍 무측천의 면전으로 걸어나와서 머리를 숙이고 안부를 물었다. 이때 무측천은 이미 양위는 결정된 것이고, 더 이상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중신들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다음 날, 이현은 다시 황제의 자리에 복귀한다. 무측천은 황궁을 내주고, 자신은 황성의 서남쪽에 있는 상양궁에서 요양했다. 이현은 모친에게 "측천대성황제"라는 존호를 바친다. 얼마후 무측천이 병사한 후, 고종 이치와 합장된다.

 

모후가 병사하자, 이현의 압력은 사라지고, 자신감이 배가되었다. 형제자매와 병간에 공이 있는 대신들에게 작위를 부여했다. 그러나, 바로 이현이 황제노릇에 재미를 붙일 때쯤, 또 하나의 여인의 그림자가 돌연 다가온다. 이 여인이 바로 황후인 위씨이다. 제2의 무측천이 되기를 갈망한 이 여인은 여러가지 준비를 거친 후에, 위씨가족을 조정의 중추에 심어두고, 위씨들은 다시 놀라운 결정을 내린다. 그녀는 자신이 믿을만한 배경을 찾았다. 댓가는 이현에게 녹색모자를 씌우는 것이다(녹색모자를 쓰는 것은 처가 바람을 피웠다는 뜻임). 사실 위후가 배경으로 찾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이현의 사촌형제이자, 후계자다툼을 벌였던 사람중 하나인 무삼사였다.

 

무삼사는 무측천의 오빠인 무원경(武元慶)의 아들이다. 무측천이 정권을 잡고 있을 때 여황의 심복이었고, 양왕에 봉해졌으며 식읍이 천호에 이르렀다. 이 자는 문재도 약간 갖추고 있었으나, 성격이 교활했고, 심성이 잔인했으며, 욕심이 많았다. 이현이 복위한 후, 무삼사는 고개를 숙이고 맞이했으며, 이현에게 충성을 표시했다. 황제위에 오른 이현은 사촌형이 이처럼 자기 말을 잘 듣고,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자 마음 속으로 크게 기뻐했다. 지기로 갱각하고, 심복으로 생각했다. 그리하여 무삼사를 사공(司空)에 임명한다. 비록 무삼사의 뜻이 여기에 그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이때까지 야심을 마음 속에 감추고, 역량을 모으고 후일을 도모할 생각이었다. 바로 이때 위후가 그를 찾아왔고, 두 사람은 야심이 들어맞았다. 서로 필요한 것을 가질 수 있어서, 곧바로 정치적 애인으로 발전한다. 황제의 사촌형, 지기, 황후의 애인, 무삼사는 자주 궁안에 들어가서 이현과 위후를 찾았고, 세 사람은 둘러앉아 이런 저런 얘기를 아주 재미있게 나누곤 했다.

 

한걸음 더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하여, 위후의 어레인지하에 무삼사의 둘째아들인 무숭훈은 이현의 딸인 안락공주를 취한다. 이씨, 무씨의 두 가족은 사돈이 된다. 친상가친(親上加親)이라고 할만하다. 이후 무삼사가 후궁에 드나드는 것은 다반사였고, 한번은 무삼사가 입궁하여 위후와 지패도박놀이를 즐겼는데, 도박탁자가 이현의 용상 위였다. 두 사람은 모두 용상에 올라가서 한편으로는 패를 만지면서, 한편으로는 손을 만졌다. 웃음소리가 끊이지를 않았고, 기뻐 들뜬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현도 이때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흥에 겨워서 곁에 작은 의자를 놓고 앉아 두 사람의 점수를 헤아려주고 있었다.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고...아주 바빴다. 스스로 녹색모자를 쓰는 줄 모르고, 정적을 위하여 점수나 헤아려준 꼴이다.

 

사돈, 애인, 정적이라는 세 사람의 묘한 관계에 의지하여, 무삼사는 자기의 일당을 곳곳에 심었고, 심복을 배치했다. 더 이상 신하로 있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날로 커졌다. 조정에서 그를 반대하는 대신인 재상 장간지등은 모두 무삼사의 모함을 받아 죽었다. 일시에 무삼사는 조정을 장악하고, 그의 기세는 하늘을 뒤덮을 듯했다.

 

말하자면, 이현에게는 대단한 처인 위씨가 있을 뿐아니라, 대단한 딸인 안락공주도 있었다. 안락공주는 이현의 일곱째 딸이다. 어릴 때의 이름이 이과아(李兒)였다. 이현과 위씨가 방주로 유배갈 때 위씨가 도중에 분만했다. 당시 상황이 궁박하여, 이현은 급한 와중에 자기의 겉옷을 찢어내어 강보로 삼아 어린아이를 감쌌다. 그리하여 이 이름이 붙었다. 이과아는 이현과 위후가 어려운 와중에 자랐으므로, 세 사람의 감정은 남달랐다. 이현과 위씨는 이과아를 아주 총애했고, 어려서부터 해달라는 것은 다 해주었다. 그리하여 안락공주는 어려서부터 교만하고 마음대로 하는 성격으로 성장했다. 이혀이 동궁으로 되돌아온 후, 이과아는 이미 십여세가 되었다. 용모도 예쁘고 성격도 총명해서, 무측천이 이과아를 보고는 그녀를 아주 아꼈다. 그리하여 안락공주로 봉한다. 이때, 이현, 위후, 안락공주는 아주 화목한 일가였다.

 

이현이 새로 황제의 보좌에 오른 후, 안락공주는 부친의 몸을 걱정했고, 중종을 위하여 조정의 일을 나눠해주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자주 부황에게 자신을 황태녀(皇太女)로 삼아달라고 부탁했다. 이현이 딸의 말이라면 뭐든지 들어주었지만, 이런 황당한 요구에는 바로 응해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완곡하게 안락공주의 요청을 거절하였다. 안락공주는 요구가 먹히지 않자, 이때부터 부친에게 원한을 품게 된다.

 

710년, 즉 경룡4년, 위후는 무측천의 군림천하를 본뜨려는 마음이 날로 강해진다. 안락공주도 황태녀의 자리에 대한 생각이 더욱 강해진다. 세상의 일에는 그다지 욕심이 없는 이현은 그녀들이 보기에 갈수록 장애가 되었다. 악독한 모녀는 같이 머리를 짜내어 아예, 어느날 정오에 중종에게 독이 든 떡을 보낸다. 중종은 그녀들을 의심하지 않았고, 아무 것도 모른채 그 떡을 먹고는 그날로 독이 발작하여 죽는다. 멍청하게 자기의 처와 딸의 음모하에 죽어버린 것이다.

 

이현의 일생은 아주 비참하고 가련하다. 먼저 오천년이래의 불세출의 강인한 모친이 있었고, 나중에는 자기를 눈에 두지 않는 음란한 처가 있었으며, 더더구나 그를 황제위로 올라가는데 걸림돌로 생각하는 무정한 딸까지 있었다. 모친, 처, 딸, 남자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세 여인이 그에게는 이처럼 냉혹하고 악독하며, 흉악함의 대명사가 된다. 기나긴 봉건사회의 궁중투쟁에서, 가족의 정이라는 것은 없었다. 이현은 독이 발작하면서 마음 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이렇게 살아도 죽은 것만 못한 목숨을 끊는 것이 오히려 그의 가장 큰 바램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