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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분석/중국역사의 분석

근대중국이 쇠약했던 근본원인

by 중은우시 2023. 9. 6.

글: 시화(施化)

 

2023년 8월에 발표된 중국경제의 각종 통계지표를 보면, 10여억의 중국인들이 자신만만해 했던 고속경제성장은 돌연 감속하여 저속차선으로 접어들었는데, 원인은 불명하고 전도는 불투명하다. 비록 누군가 나타나서 계속하여 원인을 설명해주고 있지만, 예를 들어 전쟁, 팬데믹, 국제금융위기등등, 들어보아도 믿을만해 보이지 않는다.

 

모두 알고 있다시피, 중국경제수치통계에는 지금까지 계속하여 허수가 있었다. 좋은 것만 발표하고 나쁜 것은 발표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 돌연 자세를 바꾸어 더 이상 감추지 않고 있다; 혹은, 수치를 고쳐보아도 사실을 더 이상 감출 수 없게 되어 부득이 남부끄러운 수치를 그냥 발표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수치는 아예 발표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청년실업률등. 원인도 설명하지 않는다. 너에게 말해주지 않으면, 네가 무슨 재주로 알아낼 수 있겠느냐는 식이다.

 

아마도, 중국의 최대 경쟁국인 미국은 이미 정보를 통해 중국의 데이타를 장악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멍청한 늙은대통령 바이든이 시진핑의 체면을 전혀 봐주지 않고, '시한폭탄'같은 심각한 평가를 직접 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강남의 부유한 도시인 닝보(寧波)의 한 네티즌이 동영상에서 직접 호소했다. 현재 월수입 1만위안인 친구가 이번 달에 야채를 살 돈도 없고, 1000위안의 주택대출금도 갚지 못하여, 그에게 빌려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영상에서는 은행은 이자를 내리거나, 아예 이자를 취소시켜 위기를 해결하고자 한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대륙에서 부채가 있는 사람들은 이미 6억 내지 7억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외에 허베이(河北)등지에서는 홍수가 지나간 후, 텐트조차도 없다고 한다. 그저 낡은 플라스틱을 깔고 마른가지를 때서 밥을 하는 이재민들이 이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도저히 생각할 엄두조차 아니 않는다. 인터넷에 많은 샤오펀홍(小粉紅)들이 있고, 각양각색의 분식으로 태평성세를 가장하지만, 그렇게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어서 중국은 수십년동안, 장기간 쇠퇴기에 접어들 것이다. 내 생각에 이건 이미 여러 평론가들과 네티즌들 사이에 컨센서스가 이루어진 것이다. 최근 들어 견식있는 주장을 들어보았는데, 개략적인 내용은 바로 중국이 이후 쇠퇴할 것이지만, 붕괴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과 서방은 그저 중국이 쇠약하는 것만 원하지, 붕괴되는 것은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 논리는 듣기에 마치 중국의 쇠약이 서방에 좋은 일이고, 붕괴는 좋은 일이 아닌 것같다. 서방이 쇠퇴시키고자 하면 쇠퇴하고, 붕괴시키고자 하면 붕괴시킬 수 있다는 것처럼 보인다.

 

이 주제는 아주 재미있다. 자신의 운명에 관심이 있는 네티즌들은 같이 검토해보면 좋겠다.

 

역사의 깊은 곳의 비밀은 자주 사람들에 의해 가리워지거나 고쳐진다. 그러나 한 시대의 번영 혹은 쇠약은 일목요연하다. 누구도 감출 수가 없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스스로 겪고 직접 볼 수 있기 때문에 확실한 증거가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역사는 완전히 아무나 화장시킬 수 있는 어린아가씨가 아니다. 사람들에게 기억이 있는 한, 문자상 기록이 남아 있는 한, 거기에 분명히 존재한다. 이는 하루종일 어떻게 하면 역사를 고쳐쓸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전문가들도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지금 분석해보자. 아편전쟁부터 시작된 근대부터 현대까지, 중국은 대체로 몇차례의 쇠락과 번영을 겪었다. 사실은 너무나 분명하다. 소위 전문가들의 불필요한 논증마저도 필요없을 것같다.

 

아편전쟁후 최대의 쇠퇴기는 태평천국의 난이다. 19세기중엽에 발발한 태평천국의 난은 의심의 여지없이 인류역사상 최대의 살륙이다. 각종 서로 다른 추산에 따르면, 전국적인 범위에서 태평천국으로 조성된 인구 순손실은 4,693만명 내지 9.511만명이다. 태평천국의 난이 발생한 1851년초에서 1864년까지, 14년간 전국의 18개성에 파급된다. 주로 전쟁과정에서 직접적인 잔혹한 살륙이 있었고, 전쟁으로 인해 간접적으로 대량의 인구사망이 있었다. 초기 미국선교사 Happer(1880)는 태평천국의 난으로 5천만명의 인구손실이 있었다고 추산한 바 있다. 또 다른 학자인 갈검웅(葛劍雄), 후양만(侯楊萬), 장근복(張根福)(1999)는 이 숫자는 최소 1억일 것이라고 보았다. 확실히 사람이 모두 죽어버렸기 때문에, 경제발전이라는 것을 얘기할 것도 없다. 전후의 회복에 65년이 걸렸다. 이는 2차대전후 12년과 베트남전쟁후의 25년보다 훨씬 길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다수의 중국역사학자들은 고의로 이런 수치를 회피한다. 단지 대량사망후에 감소한 인구압력과 일부 새로 만들어진 도시만 언급할 뿐이다.

 

어떤 사람은 글을 써서, 태평천국의 원인을 아편전쟁의 실패에서 찾는다. 그러나 아편전쟁은 대영제국과 대청정부간의 전쟁이다. 민간에는 파급되지 않았다. 최근 공개된 고궁박물관의 <남경조약>원문을 보면, 제1조에 명확히 쓰여 있다: 청정부에 자신의 국민의 인권과 재산권을 지키도록 요구한다. 만일 함풍제가 이를 지켰다면 왜 민란이 발생했겠는가?

 

태평천국의 쇠퇴기이후의 번영기는 여러번의 변법이후의 양무운동이다. 중국의 현대공업, 군사, 금융, 수출입은 모두 이 시기에 기초를 닦았다.

 

양무운동, 만청자구운동, 자강운동이라 부를 수 있다. 1960-90년대 양무파가 진행한 서방군사장비도입, 기기생산과 과학기술의 '자강' '구부(求富)' 운동이다. 먼저, 현대군사공업, 근대해군을 건설하고, 육군무기장비와 훈련을 개선하며, 군사학교를 건립하여 신식육해군인재를 양성한다. 다음으로, 민영기업을 만들도록 하며 주로 채광, 제련, 항운, 철로등 일련의 군가공업과 연결되는 프로젝트들을 중시했다. 이는 중국근대자본주의의 발전을 촉진시켰다. 양무운동은 근대교육의 시작이다. 신식학교를 건립하고, 유학생을 파견하여, 전통적인 인재들과 다른 근대과학기술지식인을 양성하고, 중국에 서양지식을 지닌 신식인재를 배양했다. 이는 중국의 교육현대화에 큰 역할을 했다. 마지막으로, 근대정치에 거대한 영향을 끼치고, 중국근대화과정을 촉진시켰다.

 

양무운동이 가져온 번영은 어떤 의미에서 말하자면, 민국초기까지 지속되었다. 1920년대에서 30년대 사이는 중국역사상 최고의 발전단계였다. 문호, 경제이든 외교이든 모두 상당한 성적을 거두었다. 필자가 보기에, 청왕조가 퇴위한 주요 잠재원인은 백성들이 도탄에 빠졌기 때문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민족갈등, 만한모순에서 기인한 것이다. 청말민초의 도시와 농촌에는 부유계층이 상당한 비율을 점하고 있었다. 모택동이 공부하던 청년시기에 기본적으로 가난하지 않았다. 그의 궁즉사변(窮則思變)의 조반(造反)사상은 도대체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가 없다.

 

이어서 중일전쟁은 다시 한번 쇠퇴기를 불러온다. 이 시기에 대량의 인구가 감소하고, 부가 유실되며, 인프라가 파괴된다. 그 정도는 태평천국에 버금간다. 그후 3년간의 국공내전 그리고 이어진 한국전쟁까지 번영기라고 할 수는 없다. 한국전쟁이 끝났더라도, 계속 문혁말기까지 진정한 번영은 오지 않았다. 기껏해야 잠깐씩의 회복기가 있었을 뿐이다. 예를 들어 1950년대 중반, 1960년대 초반이 그것이다. 현재까지도 살아있는 90세가량의 노인들은 그저 신중국이 건립된 이후의 가난을 기억할 뿐이고, 민국연간의 가난은 기억하지 못한다. 필자 본인도 이른 빈곤과 결핍을 경험했고, 기억에 깊이 박혀 있다. 그러므로 소비관념과 소비습관이 다음 세대의 사람들과는 전혀 다르다. 아쉽게도, 이런 가난을 시주석은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직접 중국인들을 그 시대로 데려가려고 한다. 예를 들어, 허리띠를 졸라매고 가난하게 지내고, 내순환하고, 2차상산하향(上山下鄕)하자는 것등등이다.

 

필자가 보기에, 등소평이 개창한 개혁개방은 비교적 철저하게 쇠약국면을 전환시켰다. 대변혁으로 인하여 일어난 각종 문제는 잠시 놔두고라도, 중국인들은 이번에 정말 부유해졌다. 중국의 경제총량은 마침내 반세기이후 다시 세계의 선두권으로 들어섰고, 수십년간 지속되었다.

 

아쉽게도, 등소평의 개혁은 절름발이 개혁이었다. 개혁방향에서, 부를 민간에 두려고 하지 않았고, 집정당의 통치지위를 공고히 하고자 하기 위하함이었다. 개혁의 경로도 단일했다. 단지 국가투자에만 의존하여, 삼두마차를 이끌어, 경제고속성장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이런 개혁은 지속불가능하다. 뒷심이 부족하다. 당연히 고속성장의 외일(外溢)효과로 민간의 부도 일정한 정도로 축적되었다. 예를 들어, 토지징용과 철거이주로 일부 도시와 농촌인구가 자금을 획득했고, 동시에 소비를 자극했다. 그러나 일단 국가가 추진하는 성장이 지체되면, 민간은 즉시 복지부동한다. 이런 모델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고, 장래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집정당은 이 악순환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비록 위의 구분이 그다지 엄격한 것은 아니지만, 이 흐름의 대체적인 점은 알아볼 수 있다. 즉 2백년이 되지 않는 시간선에서 쇠퇴기와 번영기가 두번씩 있었다: 쇠퇴기: 태평천국, 공산혁명, 번영기: 양무운동, 개혁개방. 이어지는 수십년간 여러분들은 쇠퇴기일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번영기일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만일 여러분들이 위의 역사분석에 대체로 동의한다면, 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맥락을 정리해보기로 하자. 그러면 그중 중국사회의 번영과 쇠퇴를 조성하는 주요원인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원인은 외부에 있지 않고 내부에 있다. 태평천국은 외국세력이 책동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후기에 이르러, 서방의 양창대의 도움으로 청정부는 태평군을 소탕할 수 있었다. 중국침략전쟁은 확실히 일본인들이 일으켰다. 다만 누가 알았으랴. 전쟁전의 중국내부는 내전이 발발했다. 어떤 사람은 일본인의 손을 빌어 정치적수를 제거하고자 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노구교사변은 중공이 책동한 것이라고 한다. 목적은 사태를 확대시키기 위함이다. 전면적인 중국침략전쟁으로 번지도록하여 중앙정부를 약화시키려는 것이다. 믿기지 않는다면, 모택동이 다나카 가쿠에이에게 감사인사를 한 그 말을 보라. 10년에 걸친 제1차 및 제2차 국내전쟁은 당연히 외국인이 저지른 것이 아니다. 비록 소련이 교사한 혐의도 있고, 대량의 군사지원을 제공한 혐의는 있지만. 그러나 만일 내부에서 호응하지 않았더라면,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소련인은 직접 출병하여 참여하지는 않았다.

 

신중국이 건립된 후, 외국인의 간섭요소는 더욱 적어졌다. 폐관쇄국하는데 어떻게 간섭할 수 있었겠는가. 믿기지 않는다면 대조해볼 수 있다. 1980년대 스스로 국문을 열고나서 외국의 원조가 즉시 이어졌다. 먼저 소위 위도봉쇄(圍堵封鎖)라는 말은 스스로를 속이고 남도 속이는 말에 지나지 않았다. 자본주의의 운영매커니즘은 자유무역이다. 그것은 일체의 무역장벽을 반대한다. 아편전쟁에서 영국의 유일한 목적은 장벽을 타파하여, 통상항구를 여는 것이었다. 영국인은 아편을 위해 수치도 마다하지 않았다. 현재의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그 어떤 바보라고 중국이라는 큰 시장을 포기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전제조건은 반드시 이익이 나야 한다는 것이다. 돈을 벌 수 없고 이익을 낼 희망이 없다면, 자본은 신속히 빠져나갈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정치인들은 이데올로기를 이유로 자유경제를 제한하지는 않을 것이다. 선거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그들도 자본의 요구를 따라야 한다. 그래서, 중국의 발전정체를 미국이 중국을 쇠약하게 만들기 위햇라고 한다고 보는 것은 현실과 차이가 너무나 크다.

 

심지어 이런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2백년동안의 중국에서 서방의 영향을 비교적 많이 받은 시대는 모두 번영기이다; 서방의 영향을 극력 배척하던 시대는 모두 쇠퇴기이다.

 

다시 주제로 돌아와서, 중국의 번영과 쇠퇴, 발전과 후퇴의 책임은 주로 자신에게 있다. 그럼 무엇이 원인이었을까?

 

두 가지 원인이다: 첫째, 공산주의; 둘째, 국수주의.

 

주제도 너무 크고 쓰기 시작하면 너무 길다. 그러나 개략적인 내용을 먼저 써놓고 나중에 천천히 다듬기로 하자.

 

공산주의는 현집정당의 행위를 가리킬 뿐아니라, 공산당이전 심지어 이후에까지 중국인의 몸 속에 대량으로 남아있는 공산유전인자이다. 이는 왜 공산당이 중국에서 환영받는지를 설명해준다. 왜냐하면 낙후된 농경사회는 평균분배가 필요하고 그것은 이미 수천년이 되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의 본질은 공평무역과 가치교환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저 조반을 추구한다. 믿기지 않는다면 <공산당선언>을 읽어보라. 그것이 주장하는 것은 폭력혁명이다. 어떤 교환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도 생명의 교환만 있을 뿐이다. 공산주의의 기본운행매커니즘은 자본주의의 자유평등교환에 위배된다. 강제수거와 배분이다. 내가 권력만 가지면 네 것도 가져갈 수 있다; 네가 나보다 주먹이 크면, 네가 내 것도 가져갈 수 있다. 어떤 수단도 모두 합리적이다. 아무런 규칙도 없다. 이런 기본규칙이 없고, 안전보장도 없고, 예견가능한 운영매커니즘도 없다. 그래서 현존세계질서와 전혀 들어맞지 않고, 대립충돌한다. 즉시 전쟁이 발생하지 않는 것만도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이 너에게 복종하고, 형님으로 받들기를 바란단 말인가.

 

국수주의는 공산주의 파생물이다. 기본공능은 비슷하다. 역시 폭력, 강경을 주장한다. 만일 여러분들이 아직 개념이 잡히지 않는다면, 의화단을 떠올리면 된다. 국수주의는 사회가 방향을 잃었을 때 특히 위험하다. 그것은 다수를 진리로 삼고, 주먹을 진리로 삼는다. 일단 갈등쌍방이 국제적인 요소를 갖추면 바로 본족혈족이 진리가 된다. 국수주의는 비록 이론이 없지만, 각종 사조에 이용당했다. 만일 검은세력에 이용되면 바로 테러리즘으로 전환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명기자 차이징(柴靜)의 최근 인터뷰시리즈를 추천한다: "대화지하디스트". 그중 대표적인 한 마디가 있다; "우리(지하드)는 모두 세뇌되었다." 지하드는 그들이 고통받는 원인을 자본주의때문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서방의 외교정책, 미국의 패권의 희생자가 그들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사실은 어떠한가? 모른다. 차이징은 이렇게 썼다. 테러리즘의 발생원인중 하나는 바로 사람들이 자신의 역사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혹은 알아도 일부러 무시하고 그저 선전만 듣기 때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