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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논쟁32

하상주단대공정에 대한 이견 작자: 미상 하상주단대공정이 일단락되고, 단계적인 연구보고서가 제출되었다. 무왕벌주(武王伐紂)는 기원전1046년 1월 20일에 발생하였다고 결론내렸다. 그러나, 이 결론에 대하여 필자는 이견이 있다. 먼저 필자는 단대공정에서 사용된 방법은 과학적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기본점은 믿.. 2013. 7. 12.
하상주단대공정의 의문점 작자: 주법고(周法高) 2001년초, 필자는를 자세히 읽어보고 연구했다. 당시에 이 책의 여러 곳에 내린 결론은 지나치게 무단(武斷)했고, 논쟁이 있을만한 곳에 더 이상 추가로 설명하지 않았다. 그래서 읽는 사람에게는 1046년을 뜯어맞추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당시에는 일이 바쁜 바람에 언급하지 않고 지나갔다. 이제 다시 그 글을 읽어보니 반박을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1. 주려왕(周厲王)의 재위년수 에는 주려왕이 37년간 재위했다고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후인들이 전후의 글 내용에 근거하여 37년이라는 시간을 잡은 것이다. 이 37년이 주려왕의 재위연수인가? 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여러 학자들이 , 에 근거하여 주려왕의 재위연수는 13-25년이라는 점을 증명했다(흥미있는 독자는 스.. 2013. 7. 12.
하왕조(夏王朝)의 건국연도와 관련한 연구 글: 이백겸(李伯謙) 하왕조의 건립은 중국고대문명연구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다. 이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다만 하왕조가 건립된 연대에 대하여는 설이 분분하여 하나로 모아지지 않는다. 지금까지도 모두가 받아들일만한 통일된 견해가 없다. "하상주단대공정"에서는 하왕조의 .. 2013. 7. 12.
조조묘가 "인산(因山)"이라는 증거 글: 산첨자(山尖子) 왜 조조묘를 "인산위체(因山爲體)"묘라고 하는가?(인산위체묘는 산에 구멍을 뚫어서 관을 모신 형태의 능묘). 근거는 도대체 있는 것인가? 있다면 얼마나 있을까? 아래에 그 증거를 열거하니 참고하기 바란다: 1. "서원(西原)", "서강(西岡)"의 증거 '서원'은 조조의 <종.. 2013. 5. 18.
"위무왕상소용(魏武王常所用)" 석패(石牌)는 위조된 것이다. 글: 임규성(林奎成) 조조묘의 진위는 2009년말부터 소식이 나와서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조조지지파"들은 여러가지 증거를 내놓고 있고, "철증(鐵證)"을 내놓고 있다. 이에 비하여 "조조반대파"는 비록 여러 각도에서 의문을 제기하지만 그저 의문제기에 그치고 있다. 지금까지 상대방.. 2013. 4. 13.
조조의 무덤에 대한 역사상 10가지 기록 글: 산첨자(山尖子) 사람들은 조조의 묘를 '천고의 수수께끼'라 부른다. 왜냐하면 지금까지도 어디인지 알지를 못하기 때문이다. 조조묘가 원래는 무슨 수수께끼도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왜냐하면, 역사기록상 이미 답이 적지 않게 나와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 기록에 남아있는 것.. 2013. 4. 13.
조조묘(曹操墓)의 고고학증명은 잘못되었다. 글: 진경원(陳景元) 마르크스는 말했다. "역사는 왕왕 놀랍게도 닮은 점이 있다"고. 최근 들어 섬서의 '화남호랑이' 사건과 하남의 '조조묘' 사건을 통하여 사람들은 이 말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더욱 깊어졌고, 철저해졌다. 자료를 대비, 분석, 사고 및 연구하면, 한가지는 분명해진.. 2012. 1. 12.
'위무왕'에 관련된 세 가지 의문 글: 정계진(丁啓陣) 나는 며칠 전에 블로그에 <<'조조묘'석비문자헌의>>라는 짧은 글을 올려서, 내 스스로 본 문헌들 중에는 조조가 '위무왕'이라고 칭한 경우가 없다고 하였다. 금방 어떤 네티즌이 평론을 통하여 조조를 위무왕이라고 칭한 증거를 내놓았다. 오늘은 왕립군 선생이 더욱 전문적.. 2010. 8. 30.
'위무왕상소용(魏武王常所用)' 석비는 위조된 것이다. 글: 임규성(林奎成) 조조무덤의 진위에 대하여 작년말 소식이 공포된 후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지파들은 조조무덤이 맞다고 입증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그러면서, '철증(鐵證)'을 내놓고 있다. 이와 비교하자면, 반대파들은 비록 여러 각도에서 의문을 제기하지만, 그저 의문제기일 뿐이고, 지금.. 2010. 8. 26.
조조무덤: 가설은 진실이 될 수 없다 글: 임규성(林奎成) 소주회의 이후, 조조가 '위무왕(魏武王)'이라는 칭호가 존재했는지의 문제에 대하여, 전 하남성문물고고연구소 소장 학본성(郝本性) 선생과 안양시 고고대 대장 반위빈(潘偉斌) 선생이 즉시 반응을 나타냈다. 이는 아주 좋은 현상이다. 문제를 회피하지 않는 것이 최종적으로 문제.. 2010. 8.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