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논쟁/조조무덤논쟁

'위무왕'에 관련된 세 가지 의문

중은우시 2010. 8. 30. 13:08

글: 정계진(丁啓陣)

 

나는 며칠 전에 블로그에 <<'조조묘'석비문자헌의>>라는 짧은 글을 올려서, 내 스스로 본 문헌들 중에는 조조가 '위무왕'이라고 칭한 경우가 없다고 하였다. 금방 어떤 네티즌이 평론을 통하여 조조를 위무왕이라고 칭한 증거를 내놓았다. 오늘은 왕립군 선생이 더욱 전문적인 블로그를 올려서, 18개의 증거를 내놓았다. 스스로의 고루과문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동시에 나도 성현을 본받아, 잘못을 알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여기에서는 네티즌과 왕립군 선생에게 감사드린다.

 

다만, 감사하는 마음의 다음에 문제가 있음을 느낀다. 문헌에 그렇게 많이 조조를 '위무왕'이라고 칭한 사례가 있는데, 이것으로 하남 안양의 조조무덤에서 나온 '위무왕상소용'의 석비가 진짜라고 증명할 수 있을까? 조조무덤이라고 인정하는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이 '위무왕'의 칭호에는 여전히 몇 가지 의심스러운 점이 있기 때문이다.

 

의문의 하나: 이 '조조무덤'은 언제 만들어 졌는가? <<삼국지>>에는 한헌제 건안25년(220년) '경자는 왕이 낙양에서 붕어하니, 나이 66세이다." 와 "이월 정묘, 고릉에 장사지내다"라는 명확한 기록이 있다. 즉, 조조의 영구가 매장된 시기는 조비가 황제에 오르기 전이다. 다만, 우리는 알고 있다. 조비가 황제에 오른 후, 금방 조조를 한승상, 위왕에서 '태조무황제'로 승격시켰다는 것을. 등급이 다르다. 장례규격도 달라진다. 이장을 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설사 이장후의 묘라고 하더라도, 그 묘는 당연히 '태조무황제'가 되어야지 '위무왕'이 될 수는 없다.

 

의문의 둘: 조조가 죽은 후 조비가 황제에 오르기 전에, '위무왕'이라는 칭호가 적합한가? '조조무덤'이 조비가 황제에 오르기 전에 만든 것이라고 가정하면, 그것은 당연히 한나라 제후왕의 예의에 맞게 매장되었어야 한다. 다른 몇 몇 한나라때 제후왕릉묘는 옥석, 인새등 문자자료에서 '봉국+시호'로 표시하거나 혹은 어떤 사람이 얘기하는 것처럼 '양명+음명'으로 표시한 경우는 없다. 예를 들어, 1959년 하북 정현 북장에서 발굴된 중산간왕 유언 부부묘의 경우에 옥편의 뒷면에는 묵서로 '중산'이라는 두 글자만 새겨져 있다; 1972년 산동 곡부 구룡산에서 발굴된 4개의 대형 애동묘에서 그중 3호 노효왕 혹은 황후묘에서 툴토된 동인에는 '왕미앙(王未央)', '왕경기(王慶忌)'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서주 귀산 유주 부부묘에서는 귀뉴은인에 '유주(劉注)'라는 두 글자만 새겨져 있다. 조조의 아들과 부하가 조조를 위하여 묘를 만들 때, 특별히 '위'자를 추가할 필요가 있었을까? '무왕'이라는 시호는 사회과학원 고고전문가가 말한 바와 같이, 봉지를 전제로 하는 것이 일반적인 제왕의 시호가 아니란 말인가? 우리는 알고 있다. <<삼국지>> 무제기에 명확히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한헌제는 조조에게 천자와 마찬가지의 대우를 받도록 허용했다. 예를 들어, 건언22년 여름 사월, "천자는 왕(위왕 조조)에게 명하여 천자의 정기(旌旗)를 설치하고, 출입할 때 경필(警)하게 했다" "겨울 십월, "천자는 왕에게 면(冕)에 12 류(旒)를 하도록 하고, 금근거(金根車)를 타도록 하며, 여섯마리의 말이 끌도록 했다" 조조의 이러한 실제지위는 조조가 죽은 후 조비도 똑같이 누렸다. 묘장에 '위무왕'이라는 칭호가 나타나는 것은 조씨정치집단이 스스로를 너무나 겸손하고 비하하는 것이 아닌가?

 

의문의 셋: 관련전문가가 열거한 조조를 '위무왕'이라고 칭한 문헌은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이 <<진서(晋書)>>이다. 더 이른 것은 없는가? 우리는 알고 있다. 역사인물의 칭호는 말하는 사람(글쓰는 사람)의 신분, 입장, 감정, 연대, 언어환경이 다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조조, 조맹덕, 조공, 조적, (황)상, 제, 태조, 무제, 위무제, 위왕,무왕, 위무왕등등이 있다. 자세히 분석해보면, 알 수 있다. 그 차이는 모두 이유가 있다는 것을. 필자가 이를 본 느낌은 이렇다. 역사문헌으로서, '태조무황제"(태조, 무제, 위무제, 위무), 조조(조맹덕)이라고 하는 것이 비교적 객관적이다. 조만(曹瞞), 위왕, 무왕, 위무왕과 같은 칭호는 약간은 주관적이고, 편파적이고, 경멸하는 색채가 있다. 여기에는 한나라가 정통이고, 조조가 찬탈했다는 사상적 경향이 드러나는 것이며, 이리하여 조조를 원래대로 되돌려서 '제'를 '왕'으로 낮춘 것이다. 가장 음미할 필요가 있는 것은 '위무(魏武)'라는 칭호이다. 이는 위무제의 약칭일 수도 있고, 위무왕의 약칭일 수도 있다. 일부러 모호하게 말을 해서 무엇을 가리키는지 불분명하게 한 것이다.

 

나의 생각으로 이상의 세 가지 문제에 대하여 전문가들이 반드시 해답을 주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