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 23

아방궁의 역사진상(9): 아방궁이 보존된 주요원인은 무엇일까?

글: 진경원(陳景元) 아방궁 문제를 연구하면서 실제가치가 있는 성과를 얻어내려면, 반고의 <한서>를 돌아가서 기타 사료를 가지고 하는 것은 안된다. 왜냐하면 <한서>에 명확히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방궁은 아성이라고도 부르고, 진혜문왕이 건축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손자병법의 수수께끼를 풀어준 한묘(漢墓)의 죽간(竹簡)

글: 진휘(陳輝) <손자병법> <손빈병법> 죽간 종이가 발명되기 전에, 고대인들은 문헌서적을 죽편(竹片), 목편(木片), 포백(布帛)에 썼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이를 죽간(竹簡), 목독(木牘), 백서(帛書)라고 부른다. 이들 문헌자료는 쉽게 썩기때문에, 지금까지 전해져내려오는 것이 없..

<상서(尙書>의 요(堯)임금 : 아들보다 사위를 좋아했을까?

글: 천하무신(天下無臣) 아주 오래된 옛날에 우리들이 "요(堯)임금"이라고 존경하여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전해지는 바로는 산서(山西) 사람이다. 당시의 사람들은 그를 "방훈(放勛)"이라고 불렀는데, &lt;서이아(小爾雅)&gt;의 해석에 따르면, "방(放), 기야(棄也)", 훈(勛)은 &lt;이아(爾雅)&gt;..

월왕 구천이 오왕 부차에게 보낸 미녀는 서시가 아니었다

글: 유지혜(兪志慧) 한번은 동창모임이 있었는데 나의 한쪽은 소산구(蕭山區) 부구장이고, 한쪽은 제기시(諸&#26280;市)의 선전부장이었다. 그들은 춘추전국시대에 관한 책을 내가 많이 읽었다고 생각하여, 나에게 물었다: 서시는 도대체 제기 사람인가, 아니면 소산 사람인가? 나는 난 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