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작림 19

"북경(北京)"은 왜 "북평(北平)"으로 불리웠는가?

글: 진신(陳新) 북경은 3천여년의 역사를 지닌 고도(古都)이다. 왕조가 교체됨에 따라, 전후로 60여개의 정식명칭과 별칭이 있었다. 세계의 도시역사상 명칭이 가장 많은 곳이라 할 수 있다. 그중 북경과 북평 두 명사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북경은 왜 역사상 북평으로 불리게 된 것일까? 그것은 명나라의 창업자 주원장(朱元璋)부터 얘기를 시작해야 한다. 원나라말기, 몽골통치자에 반항하는 농민반란이 거세게 일어나 전국을 석권한다. 주원장은 농민군의 진우량(陳友諒), 장사성(張士誠)의 세력을 흡수한 후, 강남의 반벽강산을 차지한다. 그리고 원나라 지정27년(1367년) 대장 서달(徐達), 상우춘(常遇春)에게 군사를 주어 북벌에 나선다. 1368년, 주원장은 응천부(應天府, 지금의 남경)을 경사(京師)..

소림사 사상 최대의 겁난: 풍옥상부하의 소림방화

글: 황소범(黃小凡) 1928년, 중원지역의 군벌혼전으로 총포가 날로 보급되어갔다. 일부 소림제자들도 군벌이 부대에 참여하여 전공으로 공업을 세우고자 했다. 마지막에는 소림사에 유례없는 겁난을 가져오게 된다. 1500년의 역사에서, 소림사는 많은 겁난을 당한다. 봉건시대에 매 왕조가 ..

만주에서의 일본군 매춘업내막: 일본에서 7만기녀를 수입하다

작자: 미상 20세기말, 한 중국의 역사학자는 자료를 정리하다가, 우연히 아말리도 비스파라는 이탈리아간첩이 1930년대에 쓴 자술서를 발견한다. 자술서는 상세하고 진실되게 그가 중국의 만주에 있는 동안 일본군을 위하여 일하고, 나중에는 중국항일유격대를 도와준 파란만장한 경력을 ..

이대쇠(李大釗, 리다자오)의 후손중 3명의 고관

글: 왕남방(王南方) 이대쇠는 하북성 낙정현(樂亭縣) 사람이다. 중국공산주의운도으이 선구이며 최초의 마르크스주의자이고, 공산당의 주요 창시자중 한 사람이고, 저명한 학자이다. 이대쇠는 비록 일찌감치 떠났지만, 풍부한 혁명유산과 정신재부를 남겼다. 그가 만든 청정근근(淸正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