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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작림19

만주에서의 일본군 매춘업내막: 일본에서 7만기녀를 수입하다 작자: 미상 20세기말, 한 중국의 역사학자는 자료를 정리하다가, 우연히 아말리도 비스파라는 이탈리아간첩이 1930년대에 쓴 자술서를 발견한다. 자술서는 상세하고 진실되게 그가 중국의 만주에 있는 동안 일본군을 위하여 일하고, 나중에는 중국항일유격대를 도와준 파란만장한 경력을 .. 2016. 1. 7.
민국 10대 토비(土匪) 글: 이자지(李子遲) 1. 동북왕(東北王) 장작림(張作霖): 난세효웅, 애국항일, 역비역관(亦匪亦官), 역사역정(亦邪亦正), 독패동북(獨覇東北), 고금소유(古今少有). 장작림(1875-1928), 자는 우정(雨亭), 아명은 노걸탑(老疙瘩), 다른 사람들은 그를 "장대수(張大帥)"라고 부르기를 좋아했.. 2015. 2. 10.
풍옥상은 왜 소림사를 불태웠는가? 글: 관첩(關捷) 많은 사람들은 오해하고 있다. 청나라정부가 소림사를 불태웠다고. 그것은 아니다. 사실상, 청나라때의 여러 황제들은 모두 소림사에 관심을 가지고 혹은 친히 편액을 써주고, 혹은 절로 순유를 왔다. 건륭15년(1750년), 건륭제는 친히 소림사로 가서, 밤에 방장실에서 잠을 .. 2014. 5. 30.
이대쇠(李大釗, 리다자오)의 후손중 3명의 고관 글: 왕남방(王南方) 이대쇠는 하북성 낙정현(樂亭縣) 사람이다. 중국공산주의운도으이 선구이며 최초의 마르크스주의자이고, 공산당의 주요 창시자중 한 사람이고, 저명한 학자이다. 이대쇠는 비록 일찌감치 떠났지만, 풍부한 혁명유산과 정신재부를 남겼다. 그가 만든 청정근근(淸正勤.. 2013. 12. 26.
9.18사변에서 누구를 가장 질책해야 하는가? 글: 정만군(程萬軍) 2013년 9월 18일은 "9.18사변" 82주년이다. 필자는 지금까지, "9.18사변"은 "7.7사변"보다 더욱 큰 치욕이라고 생각해 왔다. 비록 전자로 잃은 영토가 후자만큼 많지는 않았지만, 군대와 그 지도자들의 행동은 적국으로 하여금 완전히 무시하게 만들었기 대문이다. 이 사변에 .. 2013. 11. 11.
장학량(張學良)에 대한 재판경위 글: 주운(周雲) 만일 1935년 이전에 장학량이 재판을 받았다고 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유언비어일 것이다. 당시의 장학량은 비록 9.18사변이후 권세가 약간 쇠락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중국정계의 중량급인물로, 손아귀에 중병을 쥐고 있고, 영수(장개석)과는 결의형제이다. 그는 말그대로 .. 2013. 10.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