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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선왕(忠宣王) 왕장(王璋): 티벳(西藏)으로 귀양간 고려왕

글: 자귤(紫橘)​고대 중국과 조선의 관계는 오호난화이후 적지 않은 변화가 발생한다. 그후 중원왕조는 거의 조선반도의 일에 더 이상 관여하지 않았다. 다만 원(元)나라는 예외이다. 조선반도는 명목상으로는 독립정권이었지만, 원나라의 번속국으로 쌍방은 생구(甥舅, 조카와 외삼촌)관계를 건립한다. 다만, 원나라는 언제든지 조선반도의 일에 간섭할 수 있었다. 그 전형적인 사례는 바로 원영종(元英宗)이 고려(高麗)의 충선왕(忠宣王) 왕장(王璋)을 티벳(西藏)으로 유배보냈던 일이다. 원영종이 왜 일국의 왕을 유배보냈을까?​최초의 몽골-고려혼혈왕​고려의 충선왕 왕장의 부친은 충렬왕(忠烈王) 왕거(王昛)이다. 모친은 원세조 쿠빌라이의 딸 원성공주(元成公主) 쿠틀룩켈미쉬(忽都魯揭里迷失)이다. 왕장은 1274년에 태어났으..

문혁(文革)시기 북경홍위병의 "소혼단(小混蛋)"사건

글: 미학도(米鶴都)2014/08/27​(1968년 여름, 문혁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북경에서 "소혼단사건"이 벌어진다. 여러 해동안 왕삭(王朔)의 소설, TV드라마 등 문예작품의 소재가 되었고, 이 사건은 이미 강호의 전설이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여러가지 설이 돌고 있다. 제662기에 실린 미학도의 글은 이 사건의 내력을 파악하게 해준다)​"이 일의 앞뒤 사정, 특히 마지막 장면은 여기에 앉아 있는 당사자들만이 분명히 말해줄 수 있다. 나머지 여러 소문은 대부분 날조된 것이다." 조도도(曹都都)가 필자에게 해준 말이다.​2008년부터 2013년까지 사이에, 필자는 여러번 사건의 핵심당사자 왕남생(王南生), 중요참여자 유호생(劉滬生), 강소로(江小路), 목격자 왕기예(王冀豫), 조도도등을 인터뷰했다..

<규범도설(閨範圖說)>: 황위승계다툼에 말려들다...

글: 춘추소력(春秋小歷)​만력18년, 여곤(呂坤)이라는 사람이 산서안찰사(山西按察使)로 부임했다.​이 직위는 상당히 중요하다. 권력도 아주 크다. 산서성의 법률과 감찰업무를 책임지는 자리이고, 적어도 정사품(正四品)에 해당한다.​이 여곤이라는 사람은 관리가 되기 전에 명나라의 거유(巨儒)로 학식이 뛰어났고, 책을 편찬하고 쓰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산서에 부임한 후, 남는 시간에 책 하나를 편찬하여 출판한다. 명칭은 이다.​이 책은 인물의 전기로 주로 명나라이전 역대왕조 정결열녀(貞潔烈女), 현부양녀(賢婦良女)들의 이야기이다. 그녀들의 행위를 선양하고, 그녀들의 품덕을 칭송함으로써 천하의 여자들이 본받도록 선전하는 작용을 하는 것이다.​이 책이 나온 이후 널리 호평을 받고, 산서에서 적지 않은 수량이 인..

서태후(西太后) 인생의 마지막 하루

글: 사설신어(史說新語)​서태후를 얘기하자면 사람들은 그녀를 그다지 좋게 보고 있지 않다.​그녀를 얘기하면 모두가 떠올리게 되는 건 폐관쇄국(閉關鎖國), 각종 굴욕적인 불평등조약, 서방열강에 대해 부득이 무릎꿇는 것, 그리고 수렴청정(垂簾聽政)등등 별로 좋지 않은 단어들이다.​서태후는 17살에 후궁으로 입궁하여, 평생동언 정변도 일으키고, 3차례 수렴청정하면서 48년간 청나라정권을 좌지우지해왔다.​당시 서방은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었고, 문명이 급속히 발전하는 시대였는데, 서태후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도피하는 방법으로 왕조의 꿈만 꾸었다.​그녀는 대권을 독점하면서, 주위의 열강이 노려보는 것을 보지 못했고, 그저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는 것같았다.​만성독약을 먹은 것처럼 방대한 청왕조는 점점 사..

당현종(唐玄宗): 천고반제(千古半帝)의 황당한 말년

글: 최애역사(最愛歷史)​역사는 다시 한번 증명했다: 털빠진 봉황은 정말 닭보다 못하다는 것을​상원원년(760년) 칠월, 오랫동안 흥경궁(興慶宮)에 거주해오던 당현종(唐玄宗) 이융기(李隆基)가 태극궁(太極宮)으로 놀러갔을 때, 돌연 500명의 부대가 돌아가는 길을 막는다. 사병들은 칼과 검을 꺼내들었고, 빛이 반사되어 눈부셨다. 우두머리는 태상황(太上皇)에게 태극궁으로 옮겨서 거주할 것을 '요청'하였다. 확실히 이건 협의하는 것이 아니라 통보하는 것이다.​이전에 두 차례의 정변을 일으키고, 혈우성풍 속에 살아온 태상황은 이때 등에서 식은 땀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신을 차린 당현종은 타협을 선택한다. 한번 여행한 것이 이사가 되어버렸다. 이들 병졸들의 '호..

중국정치국회의의 3대 이상조짐

글: 주효휘(周曉輝)​중공중앙군사위부주석 장여우샤(張又俠)가 베트남방문시 높은 규격의 예우를 받고, 심상치 않은 발언을 하여 외부에서 주목을 받을 때, 중공중앙정치국은 관례에 따라 10월 28일 회의를 개최했다. 관영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를 심의하였고, 시진핑이 회의를 주재했다고 한다.​의문의 여지없이, 제3차순시상황에 관한 종합보고가 있으면, 당연히 제1차 및 제2차 순시상황보고에 대한 정치국회의도 있을 것이다. 중국의 관영매체 보도에 따르면, 제1차순시상황보고를 심의하는 정치국회의는 2023년 9월 27일에 개최되었고, 제2차순시상황보고를 심의하는 정치국회의는 2024년 3월 29일 개최되었다. 세 차례의 내용에 대한 관영매체보도를 비교해보면, 이번에 개최된 정치국회의에는 3가지 이상한 부분이 나타..

카테고리 없음 2024.10.30

2천년동안 서방은 기업을 키웠고, 중국은 정부를 키웠다

글: 장유영(張維迎)2024년 10월 20일​중국은 2쳔년동안 개방된 관료사회와 봉쇄된 상업사회였다.​진시황의 군현제이후, 역대왕조는 황제를 제외하고 정부의 모든 관직이 백성들에게 개방되어 있었다. 능력만 있고, 운만 좋으면, 정부에 들어가 관료가 될 수 있다.​한나라때는 거현량(擧賢良), 용효제(用孝悌)로 인구비율로 지방에서 관료를 선발해서, 중앙정부로 보내 배양했다. 수,당이후, 정식 과거제도가 생겨 평민의 자식도 공부만 열심히 하면 시험에 참가할 수 있었고, 대신 심지어 재상급의 관직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이와는 상대적으로 한무제이후, 많은 상공업활동은 정부가 독점했고, 민간경영을 허용하지 않았다. 설사 허가하더라도, 여러가지 제약이 있었고, 상인은 자주 관청으로부터 약탈당했다.​이는 서방국가와 ..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중국제도는 우세인가, 열세인가?

글: 사로(思蘆)은 금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의 저작이다. 이 책은 그들이 상을 받게 된 이론을 설명하고 있다. 책에서 글로벌발전불평등에 관한 각종 이론을 분석하였다. 지리결정론, 문화결정론과 지도자무지론은 모두 결함이 존재한다고 보고, 제도가 각국의 발전에 결정적인 작용을 한다고 보았다. 제도는 정치제도와 경제제도로 구분된다. 정치제도는 국가정권의 조직형식, 국가구조형식, 정당제도 및 선거형식등이고, 경제제도는 공민의 재산관계를 규정한다. 모든 제도는 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착취식(extractive)"이고 다른 하나는 "포용식(inclusive)"이다. 포용식경제제도는 사회 대부분 사람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불합리한 재산양도를 용인하지 않고, 모든 민중이 경제관..

청나라 병사: "병(兵), 정(丁), 졸(卒), 용(勇)"은 어떻게 구분되는가?

글: 설정사기(雪亭史記)​청나라궁중드라마를 보면 아마도 이런 모습에 익숙할 것이다. 머리에 붉은색의 두립(斗笠)을 쓰고 변발을 기른 청나라병사들의 상의 중간에 둥근 원 안에 "병(兵)", 혹은 "정(丁)", 혹은 "졸(卒)", 혹은 "용(勇)"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마치 상품에 브랜드를 붙인 것처럼.​병사들의 복장에 왜 이런 글자를 써놓았을까? 병, 정, 졸, 용은 각각 무슨 뜻일까?​어떤 사람은 그건 간단하지 않냐고 말하지 않을까 모르겠다.​병과 졸은 장기의 소병과 소졸처럼 청나라의 가장 하급의 병종으로 선봉으로 적진으로 돌진하는 역할을 해서, 대포받이 되는 것을 말하지 않느냐고. 한 마디로 말해서 장교가 뒤에서 명령만 내리면 병과 졸은 적진으로 돌진다가 죽는 병사일 것이라고.​정과 용은 다르다. ..

타이완 핵무기개발의 역사

글: 아항(阿恒)​최근 들어 핵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오펜하이머를 소재로 한 영화 가 인기를 끌었고, 관중들은 핵무기탄생의 역사를 이해함과 동시에 '근거리'에서 핵무기의 엄청난 위력을 느낄 수 있었다. ​미국에서 성공적으로 핵무기를 연구개발한 이래, 일본에서 최초로 투하된 원자폭탄은 세계로 하여금 핵무기의 위력을 직접 느끼게 만들었다. 각국은 공포를 느끼는 동시에, 앞다투어 연구개발하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중국이 포함된다.​1958년, 타이완해협에서 제2차위기가 발발한다. 미국은 한때 핵무기사용까지 고려하였으니, 최종적으로 소련이 그 기회를 틈타 개입할까봐 우려하는 등의 요소로 포기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이런 생각은 중국으로 하여금 핵무기를 대거 개발해야겠다는 의식을 갖게 만들었고, 하루빨리 핵무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