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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젠성(福建省) 윈샤오현(雲霄縣): 짝퉁담배 최대생산지... 글: 일지면양(壹知眠羊)​브랜드제품 짝퉁을 얘기하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지방은 푸텐(莆田)일 것이다. 짝퉁브랜드 신발을 판매하는 사람이면 다 알고 있다. 푸텐은 짝퉁제조의 고수중 고수라는 것을.​그러나, 푸텐에서 3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작은 현성(縣城)이 있는데, 이곳도 고수중의 고수라 할 수 있다. 짝퉁담배를 만들 뿐아니라, 정품이 그들의 짝퉁제품을 모방하게 만들기도 할 정도로 업계의 유행을 이끌었다.​더욱 기이한 점은 이 작은 현성의 짝퉁담배는 해외로 진출하여, 미국에서의 판매량이 천억(千億)을 넘겼다. 이 작은 현성의 이름은 바로 윈샤오현(雲霄縣)이다. 평범하기 그지없지만 무시할 수는 없는 곳이다. 2005년, 미국에서는 담배밀수사건이 터진다. 이 사건은 공개된 후, 미국의 FBI가 개.. 2024. 11. 15.
유인궤(劉仁軌): 당나라때 출장입상(出將入相)의 항왜민족영웅 글: 최애역사(最愛歷史)​당고종(唐高宗)때 낙양(洛陽)에 순우씨(淳于氏)라는 부인이 있었다. 그녀는 남편을 죽인 죄로 대리시(大理寺)에 압송되어 수감되었다. 그녀의 죄명은 마땅히 사형감이다. 그런데 재상(宰相) 이의부(李義府)가 마침 대리시를 시찰왔다가 순우씨를 보고 그녀의 미모에 반해버린다.​그리하여, 이의부는 대리시승(大理寺丞) 필정의(畢正義)에게 자신이 순우씨를 첩으로 삼고 싶으니, 방법을 찾아서 그녀를 풀어주라고 말한다.​필정의는 그저 담량이 적은 관리였다. 재상의 분부를 어찌 어길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는 몰래 희생양을 찾아서 순우씨와 바꾸게 된다. 그런데, 이 일이 나중에 대리시경(大理寺卿) 단보현(段寶玄)에게 발각되고, 그가 고발하여 경성을 뒤흔들게 된다.​사안이 중대하다보니 당고종이 직접.. 2024. 11. 14.
"헌충사건(獻忠事件)"이 왜 빈발하는가? 글: 사기(思琪)​"헌충사건"이라는 명칭은 역사인물 장헌충(張獻忠)에서 따온 것이다. 사료기재에 따르면, 장헌충은 황제를 칭한 후, 사천(四川)에서 여러차례의 대도살을 자행했다. 그리하여 인구가 격감하게 된다. 중국의 인터넷에서 헌충사건은 핫이슈이다. 최근 몇년간의 악성묻지마살인상해사건들을 가리킨다.​관련보도에 따르면, 금년들어 중국에서는 여러 건의 악성 묻지마사건이 벌어진다. 지난달 28일 한 50세가량의 남자가 칼을 들고 베이징 하이덴구 중관촌제3소학에 들어가 무차별적으로 수업이 끝난 아이와 가장들을 찔러 3명의 아이와 2명의 어른이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중국헌충사건의 특징​​​먼저, 헌충사건은 통상적으로 사회에 대한 보복의 형식으로 나타난다. 소위 사회에 대한 보복이라 함은 일종의 무지항성적(묻지.. 2024. 11. 14.
양각애(羊角哀)와 좌백도(左伯桃): 결의형제(結義兄弟)이야기의 원조 글: 자귤(紫橘)​도원삼결의(桃園三結義)를 배울지언정, 와강일주향(瓦崗一炷香)은 배우지 말라. 유비, 관우, 장비가 결의형제를 맺은 후, 생사를 같이 하기로 하는 형제가 된다. 그들이 결의를 맺은 이야기는 후대에까지 칭송받고 있다. 이후 형제결배(結拜)이건 아니면 흑방결배이건 모두 도원결의의 여파라 할 수 있다. 다만 실제로, 유관장의 도원결의 이야기는 명(明)나라때 비로소 나타난 것이다. 명나라이전에 형제간의 결의를 맺을 때는 양각애와 좌백도를 따랐다. 이 두 사람 간에는 도대체 무슨 이야기가 있는 것일까?​별로 유명하지 않은 형제정의​양각애, 좌백도의 이야기는 정사(正史)에 실려 있지 않다. 두 사람의 이야기의 출처는 서한시대 유향(劉向)의 이다. 아쉽게도 원문은 송나라때 이미 유실되었고, 오늘날 볼.. 2024. 11. 13.
원세개(袁世凱) 칭제(稱帝) 막후의 몇몇 추동자들... 글: 소전유(蘇全有)​1915년 12월 12일, 원세개는 소위 민중권진서(民衆勸進書)를 받아들여, 등극을 선포한다. 역사에서 홍헌황제(洪憲皇帝)라고 불리게 된다. 1916년 3월 22일, 원세개는 어쩔 수 없이 하야한다. 이렇게 83일간의 황제생활은 끝이 난다. 그리고 6월 6일 요독증으로 세상을 떠난다. 원세개는 모략이 비범했던 인물이다 그런데 왜 그가 천하의 금기를 어기고 역사의 조류를 거슬러 황제에 올랐을까? 여기에는 원세개 본인의 원인외에 나머지 몇 사람이 막후에서 부추긴 것도 있었다. 그 요소를 분석해보지 않을 수 없다. ​원세개는 임종전에 힘들여 네 글자를 내뱉는다: "그가 나를 해쳤다(他害了我)". 그렇다면 여기의 "그(他)"는 도대체 누구일까?​원씨가족들은 원세개가 죽기 전에 말한 "그가 .. 2024. 11. 13.
당덕종(唐德宗): 큰 일을 하려다, 큰 일을 당하다 글: 최애역사(最愛歷史)​안사의 난(安史之亂)이후, 당나라는 이미 "부고모갈(府庫耗竭, 국고를 소모하여 고갈되다)", "금군미약(禁軍微弱)"의 곤경에 빠진다. 그러나, 제오기(第五琦), 유안(劉晏), 양염(楊炎)등 이재(理財)대가들의 노력을 거쳐, 당덕종 즉위초기인 건중원년(780년)의 국고세수는 이미 1305만관곡(貫斛)에 이른다. 정상적인 세입외에 매년 700만관곡에 이르는 염리(鹽利)세수도 있었다. ​그의 부친 당대종(唐代宗)의 즉위초기와 비교하면 국고수입은 몇배로 늘었다.​이런 자금은 당덕종의 허리를 튼튼하게 만들었고, 그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삭번(削藩)"전쟁을 시작한다.​그는 큰 일을 하고자 했다(大幹一場). 그러나 역사는 오히려 이를 피동문장으로 바꾸어 버렸다. ​1​안사의 난 이후, 당나라.. 2024. 11.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