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삼국) 126

조자룡의 장판파(長板坡)전투 전설들.....

글: 기사석금(記史惜今) 수백년동안, 삼국이야기는 역사에서 소설, 다시 민간이야기를 거치면서 변화해왔다. 당양(當陽)은 일찌기 삼국시대의 고전장(古戰場)으로서, 자연히 여러 민간이야기로 전해내려오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들은 정사(正史), 연의(演義, 소설)의 내용에 국한되지 않고, 현지 민중들의 상상력까지 보태지면서, 현지의 산 하나 물 하나, 풀 하나 나무 하나, 민속풍정까지 모두 신화같은 전설적인 색채를 띄게 되었으며, 그것들은 모두 그 파란만장한 역사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처럼 고토(故土)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여러 이야기는 모두 해당 지방의 특색을 띄게 되었고, 많은 에피소드와 인물이미지는 적지 않게 바뀌게 되었다. 정사기록인 의 이와 관련된 부분은 짧은 몇 마디에 불과하다: "그리고 선..

손책(孫策)은 강동을 평정하면서 얼마나 많은 인재를 거두었을까?

글: 역사대작회(歷史大炸燴) 손책(孫策)의 강동을 평정하기 위한 발걸음은 195년(이전인 194년에 원술은 일천여명을 손책에게 귀속시키고, 부친 손견도 이전에 부하들을 손책에게 넘겨준다) 장강을 건너 유요(劉繇)를 공격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200년까지, 전후로 오현(吳縣), 회계현(會稽縣), 단양현(丹陽縣), 예장현(豫章縣), 여릉현(廬陵縣, 예장현에서 분리됨), 여강현(廬江縣)등 강동육현(江東六縣)을 차지한다. 그 기간은 6년이 걸렸다.이것이 강동의 기반이고, 동오의 기반이다. 손책은 수천명으로 강동을 휩쓸면서 약한 집단에서 강한 집단으로 거듭난다. 그 동안 그가 거두어들인 사람의 수는 날로 늘어났다. 거기에 얼마나 많은 인재들이 포함되어 있었을까? 두명의 도독(都督), 네명의 명신(名臣), 일곱명의..

영천순씨(潁川荀氏): 동한에서 남북조까지...

글: 소태양(小太陽) TV드라마 에서 왕징쏭(王勁松)이 연기한 순욱(荀彧)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지모가 뛰어나서, 조조에 전심전력을 다하는 동시에 한황실에 충성하며 한나라의 이익을 보호했다. 순욱은 동한과 조위집단의 중요인물인데, 그의 뛰어난 개인적인 능력이외에 우리가 살펴보아야할 점은 그의 배후에 있는 가족세력, 즉 영천순씨(潁川荀氏)이다. 동한에서 시작하여 남조에 이르는 명문거족으로서 순씨가족의 역사는 많은 왕조들보다 길었다. 오늘은 영천순씨의 역사를 사를 살펴보기로 하자. 1. 순씨가족의 탄생 영천은 오늘날의 하남성(河南省)에 소재하고 있고, 낙양(洛陽)과 이웃하고 있는 중원의 복지(腹地)이고, 경제중심이 남방으로 옮겨가기 전까지 이곳은 교통요지였을 뿐아니라, 역대왕조의 정치와 문..

순욱(荀彧)의 죽음 배후의 진정한 원인은...?

글: 수호독서(繡虎讀書) 건안16년(211년) 십이월, 조조는 업성(鄴城)으로 회군하고, 하후연(夏侯淵)을 남겨 장안을 지키도록 한다. 212년 정월, 조조가 업성에 도착하고, 한헌제(漢獻帝)는 특별히 조조에게 "참배불명(參拜不名), 검리상전(劍履上殿)"(황제를 배알할 때 이름을 외치지 않아도 되고, 검을 차고 대전에 들어올 수 있음)"하도록 허락한다. 그후, 조조는 점차 한나라로부터 정권을 찬탈하는 과정을 진행시킨다. 국공(國公)에 봉해지고 구석(九錫, 구석은 고대 제왕이 대신에게 내리는 9가지 상사물로서 차마, 의복, 악기, 무사, 궁시등이 있다. 이는 대신에 대한 최고의 예우이다)을 받는다. 서한에서 구석을 받은 자가 마지막에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서한을 찬탈한 왕망을 말함)..

동한(東漢)의 유씨성의 5대주목(州牧)

글: 심근배조(尋根拜祖) 유표(劉表), 유언(劉焉)/유장(劉璋), 유우(劉虞), 유요(劉繇)/유대(劉岱)는 동한말기 지방에 할거한 4대주목(四大州牧)이다. 유비(劉備)가 나중에 유표와 유언의 자리를 차지한다. 동한말기에 유씨성의 관리는 아주 많았는데, 그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한고조 유방(劉邦)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먼저 그들의 혈연관계를 소개한 후, 다시 정치관계를 이야기하기로 한다. 여러 유씨주목들간의 혈연관계 1. 유대, 유원: 유방의 서장자(庶長子) 제왕(齊王) 유비(劉肥)의 후손 유대와 유요는 친형제이고, 유대는 관직이 연주자사, 유요는 양주자사에 이른다. 나중에 '양주목(揚州牧)'을 받아 동한말기 4대종실주목중 한명이 된다. 혈연관계로 보면, 이들은 황실과의 관계가 가장 소원했..

하후패(夏侯覇)의 인생궤적

글: 흑미애여행(黑米愛旅行) 삼국시대 여러 명장들 중에서, 하후패는 비교적 특별한 존재이다. 먼저, 그는 하후연(夏侯淵)의 차남이고, 조씨(曹氏)와 하후씨(夏侯氏)의 관계 및 하후연이 전장에서 사망하여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공로로 인하여, 하후패는 조조(曹操), 조비(曹丕), 조예(曹叡)시기에는 비록 크게 뜨지도 않았지만, 조상(曹爽)이 집권한 기간동안에는 점차 중용되게 된다. 다음으로, 장비(張飛)의 처는 하후패의 당매(堂妹)이다. 그래서 그는 촉한의 후주인 유선(劉禪)의 외숙이 된다. 고평릉사변후 사마의(司馬懿)가 군대내의 조씨세력을 몰아낼 때, 하후씨는 가장 먼저 제거대상이 된다. 우장군(右將軍) 하후패는 그리하여 전선에서 촉한으로 도망친다. 하후패의 이런 인생경력은 삼국시대에 유일무이한 경우..

손권(孫權) 말년의 태자쟁탈전

글: 고소소고사(搞笑小故事) 중국고대의 강력한 제왕에게는 자주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전명후암(前明後暗). 전반기에는 제왕이 여러 사람들의 말을 잘 듣고, 큰 뜻을 이루겠다는 마음도 있으면서, 심혈을 기울여 통치하지만, 후반기에 이르러, 한쪽 말만 듣고, 간신을 총애하며, 후계자다툼이 치열해지게 된다. 한무제, 당현종, 주원장, 강희제에게서 모두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제왕은 바로 삼국의 삼대군주중 하나인 손권이다. 손권의 성취에 관하여 우리는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는 등극초기 웅주의 모습을 보였다. 유비와 연합하여, 공동으로 조조를 격패시켰다. 그후 오나라의 경제발전과 영토확장에 전력을 다했다. 유비가 한중을 점령하고 전성기를 이룬 후, 손권은 형주를 기습하고 관우를 잡아 죽여, ..

장로(張魯): "조조의 종이 될지언정, 유비의 귀빈은 되지 않겠다!"

글: 소한신시야(笑寒新視野) 삼국의 이야기와 인물은 중국에서 삼척동자도 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진실한 삼국시대는 겨우 몇십년에 불과했지만, 그 영향은 아주 컸다. 식사자리에서의 얘기거리가 될 뿐아니라, 그 속의 선악을 통해 민간문화의 형식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역사보급교육을 했다. 민간문화이므로, 전형적인 인물로 그려지게 되고, 인물의 성격을 선명하게 그리게 된다. 그러다보니 검보화(臉譜化)하게 된다. 어쨌든 복잡한 인물로 그리면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렵다. 유비,조조처럼 한명은 충신, 한명은 간신, 한명은 좋은 사람, 한명은 나쁜 사람. 이렇게 해야 사람들이 기억하기 쉽다. 삼국의 이야기는 송나라때부터 시작하여 선악의 구분이 생기게 된다. 유비는 점점 정통으로 되고 좋은 사람으로 그려지는데 반하여 조조..

소교(小喬)는 주유(周瑜)의 정실부인이었을까?

글: 이치아(李治亞) 소교는 동한말기의 미녀이다. 당나라때의 시인 두목(杜牧)의 싯구에 이런 구절이 있다: "동풍불여주랑편(東風不與周郞便), 동작춘심쇄이교(銅雀春深鎖二喬)" 이를 보면, 시인의 마음 속에 조조가 동오를 공격한 목적은 그저 강동이교를 포로로 잡기 위함이었다. 왜냐하면 대교와 소교는 친자매로 모두 당시 첫째 둘째가는 미녀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소교는 주유의 정실부인이었을까? 당연히 아닐 것이다. 역사자료 의 기록을 보자: "당시 손책은 형주를 공격하여 취하고자 하여, 주유를 중호군으로 삼고 강하태수의 직위를 주어 환(皖)을 공격하여 함락시킨다. 당시 교공(橋公)의 두 딸을 얻는데 모두 국색(國色)이었다. 손책은 스스로 대교를 거두고, 주유는 소교를 거둔다(策自納大橋, 瑜納小橋)"(고대에 ..

서원팔교위(西園八校尉): 삼국의 역사를 바꾼 인물들...

글: 재하도장문(在下刀掌門) 교위는 중국역사상 중요한 무관이다. 진나라때 처음 설치하기 시작했고, 한나라는 교위의 전성시기이다. 지위는 장군(將軍)에 바로 다음간다. 다만 교위는 자신이 이끄는 부대가 있도, 장군은 반드시 자신이 이끄는 군대가 있는 것이 아니다. 교위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동한말기 한영제가 설치한 '서원팔교위'이다. 서원은 낙양의 궁원(宮苑)이다. 한영제의 직속 재정관련기구이다. 서원에 임직하는 관리를 "중사(中使)"라고 불렀고, 환관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들은 황제를 위해 재물을 모은다. 관리로서 성공하려면 서원을 거치는 것이 지름길중 하나였다. 하황후(何皇后)를 뒷배경으로 하여 하진(何進)을 우두머리로 하는 하씨일족의 세력이 날고 강해지자, 한영제는 하씨형제들을 꺼려하기 시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