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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삼국)

손책(孫策)은 강동을 평정하면서 얼마나 많은 인재를 거두었을까?

by 중은우시 2023. 2. 27.

글: 역사대작회(歷史大炸燴)

 

손책(孫策)의 강동을 평정하기 위한 발걸음은 195년(이전인 194년에 원술은 일천여명을 손책에게 귀속시키고, 부친 손견도 이전에 부하들을 손책에게 넘겨준다) 장강을 건너 유요(劉繇)를 공격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200년까지, 전후로 오현(吳縣), 회계현(會稽縣), 단양현(丹陽縣), 예장현(豫章縣), 여릉현(廬陵縣, 예장현에서 분리됨), 여강현(廬江縣)등 강동육현(江東六縣)을 차지한다. 그 기간은 6년이 걸렸다.이것이 강동의 기반이고, 동오의 기반이다. 손책은 수천명으로 강동을 휩쓸면서 약한 집단에서 강한 집단으로 거듭난다. 그 동안 그가 거두어들인 사람의 수는 날로 늘어났다. 거기에 얼마나 많은 인재들이 포함되어 있었을까?

 

두명의 도독(都督), 네명의 명신(名臣), 일곱명의 장군이 대표적이다. 여기에서 손견의 옛부하인 정보(程普), 황개(黃蓋), 한당(韓當), 주치(朱治), 조무(祖茂), 서곤(徐琨), 오경(吳景), 손정(孫靜), 손하(孫河), 손향(孫香), 예지(芮祉), 공구칭(公仇稱)등은 포함하지 않는다.

 

두명의 도독: 주유(周瑜), 여몽(呂蒙)

 

주유, 노숙(魯肅), 여몽, 육손(陸遜) 네명의 동오도독은 대단한 인물들이라 할 수 있다. 

 

주유는 어려서부터 손책과 가까운 친구였다. 손책이 거병하여 장강을 건널 때, 주유는 무리를 이끌고 가담하여 손책의 가장 중요한 오른팔이 된다. 손책이 사망한 후, 주유는 손권이 정권을 안정시키는데 가장 능력있는 인물이었다. 아쉽게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적벽대전으로 남군을 얻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하고 만다.

 

여몽은 소년시기 매부인 등당(鄧當)을 따라 손책에 의탁한다. 등당이 죽은 후, 여몽은 젊은 나이로 한개 부대를 넘겨받아 사마(司馬)가 되어 계속하여 등당의 옛 부하들을 지휘한다. 손책이 죽은 후, 손권은 점차 여몽을 발탁하여 자신의 적계로 삼는다.

 

노숙은 기실 손책을 보기는 했지만, 그가 진정으로 강동에 의탁한 것은 손책의 사후 손권의 집권시기이다. 그래서 노숙은 여기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사대명신(四大名臣): 장소(張昭), 장굉(張紘), 우번(虞翻), 여범(呂范)

 

강동이장(江東二張)은 장소와 장굉 두 사람을 가리킨다. 그들은 손책이 강동을 평정할 때 주유가 소개한 사람들이다. 손책은 직접 이들을 찾아가서 두 사람을 휘하로 거두었다.

 

특히 장소는 주유와 더불어 손책 수하의 가장 중요한 양대인재이다. 한명은 문관으로 한명은 무관으로. 손책이 피살된 후, 두 사람은 손권을 보좌할 책임을 맡는다.

 

나중에 미방(麋芳), 우금(于禁)을 욕한 동오의 독설가 우번은 원래 회계태수 왕랑(王郞) 수하의 공신이었다. 나중에 손권도 그를 못마땅히 여겨 멀리 교주(交州)로 유배보낸다.

 

엄격히 말하자면 여범은 손책이 강동을 평정할 시기에 거두어들인 인재가 아니다. 손견이 죽은 후, 손책은 의탁할 사람이 없어서 원술에 의탁한다. 바로 그 때, 여범이 손책을 만난다. 이 기간 및 그 이후 손책이 강동을 평정할 때 여범은 손책을 적지 않게 도운다. 그리하여 손책이 거두어들인 최고의 인재중 하나로 꼽을 수 있는 것이다. 여범은 동오의 중신중 하나이고, 손권은 그를 동한때 개국공산 운대이십팔장중 서열2위인 오한(吳漢)에 비유하기도 했다.

 

칠호장(七虎將): 태사자(太史慈), 장흠(蔣欽), 주태(周泰), 진무(陳武), 동습(董襲), 하제(何齊)

 

태사자는 원래 손책이 강동을 평정할 때의 적수인 양주자사(揚州刺史) 유요(劉繇)의 맹장이었다. 그는 손책에 투항했고, 손책의 장군이 된다. 손권이 강동을 장악한 후, 태사자는 남방의 대사를 모두 처리했다. 태사자는 강동의 장수들 중에서 뛰어난 인재였다. 아쉽게도 그는 젊은 나이에 죽는다. 적벽대전전에 죽으니 당시 나이 41살이었다. 

 

장흠, 주태, 진무, 동습은 강동십이호신(江東十二虎臣)중 네명이다.(강동십이호신은 정보, 황개, 한당, 장흠, 주태, 진무, 동습, 감녕, 능통, 서성, 반장, 정봉을 가리킴). 이들은 모두 손책이 강동을 평정할 때 그의 휘하로 들어온 인물들이다. 그중 장흠이 가장 두드러진 인물이다. (능조(凌操)는 능통의 부친인데 끝까지 황조(黃祖)를 따르고 강동에 투항하지 않았다)

 

하제는 저평가된 강동의 장수이다. 동오의 산월(山越)반란중 대부분이 하제에 의해 진압된다. 강동에서 동오정권이 안정적으로 자리잡는데 중요한 작용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