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의 임인궁변(壬寅宮變), 속칭 궁녀모반(宮女謀叛) 명나라의 역사상 궁중에서 일어난 해괴한 일들이 적지 않지만, 명나라 세종, 즉 가정제(嘉靖帝)때 궁녀에 의한 황제모살사건도 후세에 적지 않은 의문을 남겼다. 자고이래로 경비가 삼엄한 곳은 감옥이 아니라 황궁이었다. 황제는 다른 사람이 암살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밤낮으로 주변을 경계하.. 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명) 2005.08.29
청나라 공주(公主)에 관한 몇가지 이야기 중국 봉건사회에서는 제왕의 딸은 공주(公主)라고 불렀다. 황제의 누이는 장공주(長公主)라고 부르고, 황제의 고모는 대장공주(大長公主)라고 불렀다. 청나라에서는 누르하치때부터 황제의 딸을 거거(格格)라고 불렀다. 황제의 아들과 황족의 남자들은 친왕(親王), 군왕(郡王), 패륵(貝勒), 패자(貝子), .. 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청 초기) 2005.08.25
명나라 말기 3대 의안(疑案) 명나라 말기에 황위계승을 둘러싼 3건의 의심스러운 사건이 있었는데, 보통 정격안([木+廷]擊案), 홍환안(紅丸案), 이궁안(移宮案)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세개의 사건은 각각 만력제, 만력제의 아들인 태창제 광종(光宗), 만력제의 손자인 천계제 희종(熹宗)때 일어난다. 1. 정격안. 정격안.. 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명) 2005.08.16
시검교(施劍翹)의 복수사건 시검교가 부친의 복수를 위해 손전방을 죽인 후 뿌렸다는 전단지. 중화민국(中華民國)시절의 정계에는 암살사건이 유난히 많았다. 도성장(陶成章), 송교인(宋敎仁), 정여성(鄭汝成), 진기미(陳其美), 탕화룡(湯化龍), 서수쟁(徐樹錚), 장소증(張紹曾), 요중개(廖仲慨), 소표평(邵飄萍), 사량재(史量才, 양.. 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민국 초기) 2005.08.13
장자강(張子强)의 이가성(李嘉誠) 아들, 곽병상(郭炳湘) 납치사건 재판정에서의 장자강. 장자강은 1996, 1997년경 홍콩에서 최고부자인 이가성의 둘째아들인 이택거(李澤鋸)를 납치하여 10.38억홍콩달러를 받아내고, 곽병상을 납치하여 6억 홍콩달러를 받아낸 인물이다. 두건을 합하여 16.38억홍콩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2,000여억원에 달하는 돈을 현금으로 받아내어 한 때.. 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문혁후) 2005.08.12
황당한 산해도(山海圖) 우리나라에서도 고대의 지명을 중국의 각지역으로 확장하는 사람들이 있던데.... 중국 사람들은 우리보다 더 황당하네요. 중국 고대의 책 <<산해경(山海經)>>에 나오는 지명을 전 세계 각지로 뿌려버렸습니다. 계리(季狸)는 중국어 발음이 "지리"로 칠레의 중국어 발음인 지리(智利)와 비슷하다.. 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선진) 2005.08.09
전국옥새의 뒷이야기 전국옥새는 진시황제 이래로 황제를 상징하는 물건, 황권을 상징하는 물건이었다. 이에 따라 전국옥새를 차지하여 황제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혈안이 되어 전국옥새를 노렸고, 전국옥새는 진시황이래로 많은 곡절을 겪고, 많은 이야기를 남기게 되는데, 이와 관련하여 전국옥새를 차지한 인물들을 .. 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진) 2005.08.09
도광제(道光帝)의 즉위에 얽힌 이야기 도광제의 이름은 민녕(旻寧, 즉위전의 이름은 綿寧이었으나 피휘를 간편하게 하기 위하여 돌림자를 바꿨음)으로 건륭47년(1782년)에 출생하였다. 도광제는 청나라 황제중 유일하게 황후의 적자로 제위에 오른 인물이다. 도광제는 가경제의 둘째 아들(皇次子)로서, 생모는 시타라씨(喜塔蠟.. 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청 중기) 2005.08.07
청나라 황제즉위제도의 변천 청나라의 황제즉위방식은 크게 4단계를 거쳐 변화해갔는데, 바뀌면 바뀔수록 개악된 듯한 느낌이 있다. 첫째 시기. 귀족추대방식 누르하치의 후계자인 청태종, 청태종의 후계자인 순치제는 모두 귀족추대방식으로 황제에 올랐다. 전 황제의 사망후 8기의 주요 귀족들이 모여서 상의한 후 다음 황제를 .. 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청 초기) 2005.08.07
중국역사상 세 개의 무자비(無字碑) 건릉(무측천)에 있는 무자비 중국역사에 무자비(無字碑)를 세운 인물로 유명한 사람은 세 명이 있다. 무자비는 비석만 세우고, 그 비석에 아무 글도 적지 않은 것을 말한다. 첫째, 사안(射安). 동진(東晋)의 "비수지전([水+肥]水之戰)의 주장으로, 교만하기 이를데 없던 부견(符堅)을 격패시켜, 동진의 강.. 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공통) 2005.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