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공통)

중국역사상 세 개의 무자비(無字碑)

중은우시 2005. 8. 7. 04:15


건릉(무측천)에 있는 무자비

 

중국역사에 무자비(無字碑)를 세운 인물로 유명한 사람은 세 명이 있다. 무자비는 비석만 세우고, 그 비석에 아무 글도 적지 않은 것을 말한다.

 

첫째, 사안(射安). 동진(東晋)의 "비수지전([水+肥]水之戰)의 주장으로, 교만하기 이를데 없던 부견(符堅)을 격패시켜, 동진의 강산을 공고히 하였다. "偉業偉功不勝記也"(위대한 업적과 위대한 공로는 글을 써서 표현할 수가 없다)인 경우이다.

 

둘째, 무측천(武則天, 측천무후). 당나라때의 여황제이다. 무자비를 세운데 대하여는 두가지 설이 전한다. 하나는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공로가 너무 크다고 생각하여 하나의 비석에 다 쓸 수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무측천은 시비공과는 후세 사람들이 판단하도록 하면 되는 것이지 굳이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였다는 것이다.

 

셋째, 진회(秦檜) : 남송때의 간상으로 악비를 모함하여 죽게 만든 사람이다. 나라를 팔아먹고 스스로의 영화부귀를 꾀한 인물이다 "穢德醜行不屑書也" (더럽고 추한 행위를 글로 담을 수가 없다)는 경우이다. 진회가 죽은 후에 아무도 그를 위하여 비문을 쓰고자 하지 않아 무자비로 남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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