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삼국) 59

삼국시대에 왜 형주(荊州)가 서로 다투는 촛점이 되었는가?

글: 정정(丁丁) 삼국간의 전투를 살펴보면, 적벽대전에서 서진이 촉한과 동오를 멸망시키고 통일할 때까지, 삼국간의 전쟁은 거의 멈춘 적이 없다. 기산에서 형주까지 그리고 합비까지의 길다란 전선이 있지만, 삼국이 다투는 진정한 촛점은 기실 '형주'였다. 기의 절대다수의 전쟁은 형..

백이병(白毦兵): 삼국시대 신비한 촉한의 특수부대

글: 유려평(劉黎平) 특수부대는 현대의 군대에 비로소 생긴 병종은 아니다. 냉병기시대에도 전투력이 출중하고 공격방어 돌파능력이 남다른 특수한 부대가 있었다. 이들은 전쟁에서 중요한 순간에 사용하거나 혹은 제왕이나 대장등 중요인물의 안전을 보호했다. 동한 말기와 삼국시대에..

손권이 유비에게 "차형주(借荊州)"해준 것은 부득이한 조치였다.

글: 양민복(楊民僕) 역사상 유비는 '차형주'하였고, 한번 빌린 후에 돌려주지 않은 철두철미한 '무뢰한'이라는 견해가 있다. 손권은 부인도 주고 병사도 잃었으며, 호의를 베풀었지만 보답은 받지 못하였다고 하여 사람의 동정을 받는다. 다만 문제는 손권과 같이 총명하기 그지없는 사람..

황건적의 난 이후의 5년 (3): 흔들리는 한영제와 떠오르는 영웅들

한영제는 역사적으로 혼군(昏君)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이 점에 관하여 얘기한 사람은 너무 많다. 동탁마저도 한 마디를 했다: "매번 한영제를 생각하면, 분독(憤毒)하게 된다"(<후한서.원소열전>) 그러나, 필자의 생각으로 한영제에 대하여 개관논정(蓋棺論定)한 사람으로 가장 뛰어..

황건적의 난 이후의 5년(2): 소란에서 내전으로

'황건'이후의 5년은 먼저 소란에서 내전으로 변화하는 5년이다. 동한의 변경지구와 소수민족의 반란(어떤 사람은 의거라고도 부르나 그건 각자 알아서 붙이면 될 일이다)은 건국이래 계속 있어왔다. 마원(馬援)의 이야기가 비교적 유명하다. 상대적으로 말해서, 전삼조의 상황은 기본적으..

삼국시대 전문가분석: 황건적은 왜 실패했는가?

글: 이개주(李開周) 황건적의 난이 횡행하여, 신주가 동란이 빠지고, 황건적의 해가 파져서 온 백성이 재난을 당한다. 금년금월금일금시까지 강각 형제 및 그가 영도하는 황건군은 이미 정부와 11개월째 격전을 펼치고 있다. 현재 장각은 이미 사망했고, 황건군의 실패는 거의 정해진 것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