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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삼국)

백이병(白毦兵): 삼국시대 신비한 촉한의 특수부대

by 중은우시 2016. 6. 1.

글: 유려평(劉黎平)


특수부대는 현대의 군대에 비로소 생긴 병종은 아니다. 냉병기시대에도 전투력이 출중하고 공격방어 돌파능력이 남다른 특수한 부대가 있었다. 이들은 전쟁에서 중요한 순간에 사용하거나 혹은 제왕이나 대장등 중요인물의 안전을 보호했다. 동한 말기와 삼국시대에 이런 병종이 존재했었다.


<제갈량집>을 읽어보면 제1권에 제갈량이 형인 제갈근에게 보낸 서신이 있다. 명칭은 "여형근론백제병서(與兄瑾論白帝兵書)"이다. 이 서신은 <태평어럼> 제341권에서도 찾을 수 있다. 서신의 글은 백자가 되지 않는다. 다만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다: "도(到)가 지휘하는 것은 선제(先帝)의 수하에 있던 백이(白毦)이다. 서방상병(西方上兵)이다." 이는 유비의 경호부대이고 그들의 자질은 촉한 부대들 가운데 최고이다. '서방상병이다' 소위 '이'는 새나 짐승의 털이다. 갑옷투구의 장식품이다. 이것은 <좌전>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전투력이 특별히 강대한 부대는 대체로 군대의 표지로 백색의 새털이나 소털을 장식으로 삼았다. 제갈량의 서신에서 말하는 "도"는 백이병을 지휘하는 장수이다. 그는 누구인가? <삼국지>40권 "이엄전"에 그에 대한 기록이 있다. 226년, 제갈량이 한중에 병력을 주둔시키고 북벌을 준비하고 있을 때, 동시에 이엄에게 명하여 강주(江州)에 주둔하여 수비하도록  명했다. 이엄에 협조하기 위하여, 제갈량은 정예부대를 영안(永安)으로 보내어 이엄의 지휘를 받게 했다. 이를 통하여 촉국의 북벌시 후방을 공고히 한 것이다. 이 정예부대의 지휘관의 이름이 진도(陳到)이다즉 백이병의 사령관이다. "호군 진도를 남겨 영안에 주둔하게 했다(留護軍陳到駐永安 )"


242년, 촉한은 공신들을 표창하는데, 양희(楊戱)가 찬문(贊文)을 썼다. 그중에는 용맹했던 조운(趙雲)이 빠질 수 없다. 그리고 다행히 조운과 나란히 이름을 올린 사람은 진숙지(陳叔至)라는 장군이다. <삼국지>에는 이렇게 해석되어 있다. 진숙지가 바로 진도이다. 찬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맹장지열(猛將之烈)" 조운의 신분은 정남장군이고, 진도의 신분은 정서장군이다.


진도의 신비한 신분은 이들 몇 가지 단서에서 점점 수면위로 드러난다. 그는 아마도 촉한 특수부대의 지휘자였을 것이다. 이 부대의 전적이 어떠했을까? 특별한 기록은 없다. 다만 지위는 아주 높았다. 제갈량의 서신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런 부대가 아쉽게도 너무 적다. 그래서 전투경험이 풍부한 퇴역군인들 중에서 다시 한 무리를 뽑아서 백이병의 인력을 보충하려 한다고. "혐기소야(嫌其少也), 당복부분강주병이광익지(當復部分江州兵以廣益之)"


백이병은 역대전투에서 모두 유비의 안전을 보호했다. 에를 들어 208년 장판파전투에서 유비가 몸을 빼낼 수 있었고, 그의 가족이 보전될 수 있었던 것은 특수부대가 목숨을 버리며 보호한 것과 분명히 큰 관계가 있다. 그리고 장비가 이십여명의 정예병을 이끌고 물을 막고 다리를 끊고 조나라병사를 소리쳐서 물리친 일이나, 조운이 아두를 보호한 것에서 특수병의 역량이 드러난다. 특히 223년, 유비가 백제성으로 패퇴할 때, 동오의 군대는 영안까지 추격하다가 돌연 후퇴했다. 아마도 촉한 특수부대의 강력한 저지를 받은 것같다. "조운전"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선주(先主)가 자귀(秭歸)에서 패배하고, 조운은 병력을 영안까지 진격한다. 오나라군대는 이미 퇴각했다." 그릭 영안에서 조운은 병력을 이끌고 이곳에서 저지하여, 동오를 격퇴시켰다. 이를 보면 촉한의 특수부대가 영안이라는 이 촉,오의 경계지대에서많이 활동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후기 북벌전쟁때, 그들은 여전히 이 일대에 주둔했고, 동오측의 움직임을 방지했다. 조운과 진도가 차례로 이 부대를 지휘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기실 219년 위촉의 한중전투때, 조운은 소수의 부대만을 가지고 영문(營門)을 열고 깃발을 내리고 북도 멈추어, 조나라군대를 미혹시킨다. 그 후에 밀집한 궁노사격으로 조나라군대를 격퇴시킨다. 여기서도 특수부대의 그림자를 볼 수 있다. 이전에 황충을 구해내는 행동에서도 조준의 소규모분대는 일시에 조나라군대의 가운데로 돌진하여 갇혀있던 사람을 구해낸다. 그 후에 안전하게 철수한다. 이것도 아마 특수부대의 전투력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백이병의 병종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마도 초기에 하북(河北)과 남양(南陽)에서 왔을 것이다. 장판파전투에서 전투한 주요 인원은 이들 구성원이다. 사천이 도착한 후에 파촉현지의 병력을 보충했고, 강족(羌族)과 같은 소수민족등도 흡수하고, 심지어 마초(馬超)의 정예부대도 흡수했을 것이다. 마초의 군대도 백이를 차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초부대의 전투력은 일반적인 늑대가 아니다. 비록 조조가 수염을 깍고 옷을 버린 것은 단지 <삼국연의>의 전설일 뿐이지만, 그는 한때 낭패하게 패배했다. 그래서 허저가 곁에서 보호해주어야 했다. 이것은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