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명)118 명나라 대예의지쟁(大禮儀之爭)의 진상 글: 자작자애2(自作自愛2) 정덕제(正德堤)가 사망한 후 그의 후계자가 오기까지 35일간, 양정화(楊廷和)는 실제로 대명제국을 통치한다. 그는 즉시 이미 죽은 황제의 조정을 해체하고, 변방주둔군을 불러들여 태감들을 제압하고 나서, 경사의 부대는 그들 원래의 지휘관들에게 돌려주었다... 2013. 4. 13. 왕기재연(王氣在燕): 명나라의 수도가 북경으로 정해진 경위는? 글: 우좌(于左) 명성조 주체(영락제)가 등극한 후, 공신들에게 크게 상을 하사한다. 장신(張信)도 봉상(封償)을 받은 사람중 하나이다. 그는 융평후(隆平侯)에 봉해지고, 식록(食祿) 1천석을 받았다. 자손들은 융평백(隆平伯)을 세습할 수 있다. 장신이 중요한 순간에 한 선택은 자신에게 그.. 2013. 3. 13. 청류오국(淸流誤國) - 대예의(大禮儀) 글: 불요이분법(不要二分法) 한비자의 저작중 <난(難)>은 상당히 별다르다. "난"은 반박이다. 먼저 이미 정설도 되어 있는 역사이야기를 한 후에, 다시 반박하는 것이다. 즉, 먼저 과녁을 고정시킨 후 다시 무너뜨리는 것이다. 먼저 '대예의'부터 시작해야 한다. 왜냐하면, '대예의'는 소.. 2012. 8. 15. 명나라와 서역(西域)의 관계 작자: 미상 종객파 토번(吐蕃)과 중국은 오래된 적수이고, 교분이 오래된 친구이기도 하다. 당왕조가 멸망한 후, 토번도 내란에 빠진다. 이때부터 쌍방간의 교류는 적어진다. 남송시기에, 징기스칸의 세력이 확대되면서, 토번은 부득이 복종하여, 원나라의 종주국지위를 인정하게 .. 2012. 2. 1. 마테오 리치 시대에 중국과 서방은 서로를 어떻게 보았는가? 글: 고수선(高壽仙) 오래전부터 중국과 서방은 서로 약간 들어서 알고 있었다. 유럽인들 중에서 가장 먼저 중국에 대하여 언급한 사람은 기원전4세기에 살았던 고대그리스인 크테시아스(Ktesias)이다. 그는 중국을 "세레스(Seres)"라고 불렀는데, 그 뜻은 '사국(絲國)'이라는 것이다. 중국에서 유럽을 가장 .. 2011. 1. 1. 임진왜란: 명, 청, 조선의 관계변화 글: 장개봉(張凱峰) 가정연간의 어느 날 밤. 명나라의 요동대원수 이성량(李成梁)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시종으로 하여금 발을 씻게 하고 있었다. 시종이 이성량이 발을 보니 발바닥에 점이 3개 있었다. 이성량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나의 복과 관운은 모두 이 점 세 개 덕분이다." 그러자, 시종이 대꾸.. 2010. 12. 10. 이전 1 ··· 10 11 12 13 14 15 16 ··· 2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