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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우121

관우의 후손이 있을까? 글: 선한(宣漢) 중국인에게 "의용(義勇)" 두 글자의 화신인 관우는 성공을 다 이루지 못하고 동맹군에게 성을 빼앗기고 도망치다가 죽는다. 그의 최후는 역대의 사람들이 안타까워하는 일이다. 관우의 장남 관평은 부친을 따라 전투에 나섰다가 맥성에서 포위망을 돌파하다가 붙잡혀 부친과 함께 죽는다. 차남 관흥은 제갈량이 중시했으나 불행히도 젊은 나이에 요절한다. 띨 관씨는 여몽의 손에 붙잡한 후 행방이 묘연하다. 관우의 혈맥은 그리하여 더욱 희박해지게 된다. 한나라가 멸망한 후 수백년 천여년이 지나는 동안 관우는 역대군왕, 무인,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고, 신으로까지 모셔진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일부 관우의 후예로 자처하는 사람들이 나서서 정부의 녹봉과 관직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관우의 후손은 이어져.. 2021. 12. 25.
관우의 후손이 남아 있을까? 글: 고산(高山)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은 심심하면 항상 고대의 명인들의 후손에 대하여 얘기하다가, 일단 관우의 이름이 나오면 사람들은 모두 할 말이 없어진다. 관우의 후손은 그다지 큰 공헌이 없으므로 언급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다만 어떤 사람은 관우에게는 후손이 없다고 얘기한다. 도대체 관우는후손을 두었을까? 관우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동한 삼국시대의 대장이다. 또한 유비와 도원결의한 형제이기도 하다. 관방사서의 기재이건 아니면 역사연의소설의 묘사이건, 관우는 모두 충성과 의리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는 온조참화웅과 천리주단기로 삼척동자도 아는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영웅도 죽는 법이다. 건안24년(219년), 관우는 형주를 지키다가, 조조와 손권이 .. 2021. 12. 24.
촉한(蜀漢) 오호상장(五虎上將)의 부인은...? 글: 천애간점역사호(天涯看點歷史號) 에 이런 문구가 있다: "자룡일신도시담(子龍一身都是膽), 갱유인심병의간(更有仁心幷義肝)" 조운의 자는 자룡이고, 오호상장중 하나이다. 유비에 대하여 충성심을 가졌고, 유비가 조조의 오천 호표기(虎豹騎)에 쫓기느라 처자식을 돌볼 겨를이 없어, 처자식을 전진에 놔두고 혼자서 도망쳤다. 유비는 자신의 처자식을 버린 것이다. 그러나, 조운은 부하로서의 직책을 잊지 않고 장판파에서 한편으로 싸우면서 한편으로 유비가 버리고간 미부인(糜夫人)과 유선(劉禪)을 찾아다녔다. 조운은 이처럼 협의로운 인물이다. 여자들은 모두 그에게 시집가고 싶어했다. 그러나, 에 그의 처에 대한 내용은 없다. 그렇다면 조운의 처는 도대체 누구일까? 오호상장은 모두 결혼을 했고, 부인이 있다. 비록 에는 .. 2021. 7. 13.
조위(曹魏)의 오자양장(五子良將)을 비교한다. 글: 소천(小天) 조위의 오자양장은 삼국시기 조위세력의 5명의 명장을 가리킨다. 장료(張遼), 악진(樂進), 우금(于禁), 장합(張郃)과 서황(徐晃)이다. 이 다섯 명의 장수는 전투에 능했다. 의 작자인 진수(陳壽)는 이 5명을 묶어허 하나의 전(傳)에 기록하며 이들을 높이 평가한다: "당시의 좋은 장수는 오자가 우선이다(時之良將, 五子爲先)" 그렇다면, 이 다섯 명 중에서 관직은 누가 가장 높고, 식읍은 누가 가장 많았을까? 우선 관직을 보자. 장료는 병사하기 전에 가장 높았던 관직이 전장군(前將軍)이다. 그 전에는 정동장군(征東將軍)이었다. 장료가 죽은 후에는 강후(剛侯)라는 시호를 받는다. 악진은 병사하기 전에 가장 높았던 관직이 우장군(右將軍)이다. 사후에 시호는 위후(威侯)이다. 악진은 다섯 명.. 2021. 5.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