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보신(王輔臣): 일생동안 7번의 배신, 강희제에 투항한 후 왜 자결하였을까?
글: 진단설(震旦說) 스승이 어떤지에 따라, 닮은 제자가 나온다고 한다. 오삼계(吳三桂), 강양(姜瓖)이 왕보신에게 끼친 영향은 기실 그런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삼계는 처음에 명나라의 장수였다. 이자성(李自成)이 경성에 진입한 후, 그는 이자성에게 귀순하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자성이 그의 가산을 몰수하자, 다시 이자성을 배반하고 청나라에 귀순한다. 청나라가 천하를 평정한 후에는 다시 운남에서 청나라에 반란을 일으킨다. 계속하여 배반한 일생이라고 할 수 있다. 왕보신은 원래 농민군 출신이다. 고영상(高迎祥), 이자성의 휘하에 있었다. 그는 도박을 좋아하여, 자형을 죽여버린 후, 명나라의 대동총독(大同總督) 강양(姜瓖)에 투항한다. 이자성이 경성으로 진격하는 도중에, 강양은 투항을 선택하여, 왕보..
2023. 6. 23.
"구자탈적(九子奪嫡)"때, 왜 황십사자(皇十四子) 윤제(胤禵)는 동모형제(同母兄弟)인 황사자(皇四子) 윤진(胤禛)를 지지하지 않았을까?
글: 이뢰일(李磊一) 최근 시간이 남아서 다시 한번 드라마를 보면서, 많은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강희제(康熙帝) 말년에 발생한 소위 '구자탈적'의 일을 모두 알고 있다. 즉, 황위를 서로차지하기 위하여 황자들간의 다툼이 발생한 것이다. 황장자(皇長子) 윤제(胤禔), 폐태자(廢太子) 윤잉(胤礽), 황삼자(皇三子) 윤지(胤祉), 황사자 윤진(나중의 옹정제), 황팔자(皇八子) 윤사(胤禩), 황구자(皇九子) 윤당(胤禟), 황십자(皇十子) 윤아(胤䄉), 황십삼자(皇十三子) 윤상(胤祥), 황십사자 윤제이다. 이들중에서 한쌍의 형제가 아주 특수하다. 그것은 바로 황사자 윤진과 황십사자 윤제로 동모친형제이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적대진영에 속했다. 이치대로라면 고인들이 항상 말하는 것처럼, "상진친형제(上陣親兄弟),..
2023. 6. 22.
고륜화효공주(固倫和孝公主): 건륭제가 65세에 얻은 십공주(十公主)
글: 왕옥호(王鈺浩) 고륜화효공주는 건륭제가 65세에 얻은 막내공주이다. 만일 그녀가 사내아이였다면 아마도 가경제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혼후 집안이 망하면서 고독하게 13년을 살다가 죽는다. 건륭제의 일생을 보면, 수명이 길어서 재위기간도 길고, 후비(后妃)와 자녀도 많았다. 그가 12살때, 강희제는 사람을 시켜 그의 사주팔자를 살펴보는데, 결과는 '홍복제천(洪福齊天, 하늘과 같이 큰 복을 타고났다)'이라는 말을 듣는다. 아마도 그것때문인지, 그는 팔자가 아주 셌고, 그의 후비, 자녀는 대부분 그보다 먼저 죽는다. 십공주가 태어나기 전에 그는 이미 26명의 자녀가 있었다. 그런데, 그가 65세가 되던 해 살아있는 자녀는 겨우 11명이었다. 아들중 가장 어린 황자는 열살이었고, 딸들은 일찌감치 시집을..
2023. 2. 8.
토목보지변(土木堡之變)의 원흉인 왕진(王振)은 충신인가, 간신인가?
글: 역사상적괴점(歷史上的拐點) "토목보지변"은 명나라 수십년간 축적한 국력을 하루아침에 모조리 날려버린 사건이다. 이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문신, 무장, 병사들이 부지기수였다. 이 전쟁은 명나라의 전환점이 되었으며, 그후 명나라는 다시 대규모로 병력을 일으켜 몽골을 공격하지 못한다. 알아야 할 것은 이때는 명나라가 수십만대군을 일으켜 몽골을 친지 겨우 25년이 지난 때였다. 그리고 이 비극을 일으킨 것은 바로 왕진이었다. 천순(天順)원년, 명영종(明英宗)은 왕진의 관직을 회복시켜주고, 영예롭게 장례를 치러주고(의관총), 왕진을 위해 사당을 지어 기념한다. 지금도 그 사당은 남아 있는데, 바로 베이징의 지화사(智化寺)이다. "왕진에게 제사를 지내고 장례를 지내도록 하고, 사당을 세워주었다(賜王振祭葬, 立..
2023. 1.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