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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풍제43

함풍제의 AB면: 주색지도(酒色之徒) or 영웅기단(英雄氣短) 살그글: 서광원(徐廣源) 함풍(咸豊), 애신각라 혁저(奕詝)(1831-1861). 도광제(道光帝)의 넷째아들. 북경 원명원(圓明園)에서 출생함. 중국역사상 최후의 실제 통치권을 행사한 황제이다. 함풍제의 호색은 유명하다. 그가 즉위했을 때는 막 스무살이었다. 한창 성욕이 왕성하고 정력이 넘.. 2016. 8. 19.
우화대전투(雨花臺戰鬪): 태평군과 청군의 가장 치열한 전투 글: 자주군(煮酒君) 1851년, 태평천국운동이 흥기하여 일시에 중국의 절반을 차지한다. 청저우의 남방 수개 성의 통치는 곤란에 빠진다. 일시에 태평군이 북상하여, 호남으로 들어가고, 호북을 빼앗고, 무창에서 장강을 내려가, 안경을 함락시키고, 남경을 점령한다. 이제 북경에 있는 함풍.. 2016. 6. 22.
[황자쟁위술] 이세탈인술(以勢奪人術) 적장신분패(嫡長身分牌) 동치제편(2) 지자천려 필유일실(智者千慮 必有一失)인 법이다. 함풍제가 임종시에 정교하게 설계한 권력분배방안은 기실 여러 방면의 견제로 권력의 균형을 이루고 황권이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안배는 보기에는 교묘하게 균형을 맞춘 것같고, 전혀 빈틈이.. 2015. 10. 11.
[황자쟁위술] 이세탈인술(以勢奪人術) 적장신분패(嫡長身分牌) 동치제편(1) 함풍제는 황위계승자문제에 대하여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아들이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즉, 서태후(자희태후)가 낳은 재순(즉, 나중의 동치제)뿐이다. 그러므로, 옹정제때 만든 비밀건저(秘密建儲)도 실시할 필요가 없었다. 함풍제는 조부인 가경제처럼 후계자를 느긋하.. 2015. 10. 11.
[황자쟁위술] 투량환주술(偸梁換柱術) 후전황지패(后傳皇旨牌) 서태후편 청나라말기 중국을 반세기동안 통치했던 서태후 예허나라씨(葉赫納拉氏)는 원래 수녀(秀女)선발로 황궁에 들어가 함풍제(咸豊帝)를 모셨다. 그녀는 총명하여 점차 함풍제의 총애를 받는다. 마침 황후는 아들을 낳지 못하여, 하마터면 함풍제는 대가 끊어질 뻔한다. 함풍제가 아들을 학수.. 2015. 10. 11.
[황자쟁위술] 양장피단술(揚長避短術) – 홍인시효패(弘仁示孝牌) 함풍제편 청나라에서 후임황제를 정하는 방식은 네가지가 있었다. 처음에는 귀족추대방식으로 청태종과 순치제가 이런 방식으로 황제가 되었다. 다음에는 유조계위방식으로 강희제, 옹정제, 동치제가 이 방식으로 황제가 되었다. 그 다음에는 비밀입저방식을 취하는데, 건륭제, 가경제, 도광제, .. 2015. 7. 27.
[황자쟁위술] 양장피단술(揚長避短術) – 홍인시효패(弘仁示孝牌) : 조비편 황위후보자가 효자인지여부는 “효치천하(孝治天下)”의 중국고대에 중요한 참고자료가 되었다. 그리하여, 후보자들인 황자들 간에는 자신의 효성을 드러내어 점수를 따려는 활동을 하게 된다. 이를 통하여 황제에 오를 수 있었던 사람으로는 조조(曹操)의 아들 조비(曹丕), 수문제 양견.. 2015. 7. 27.
청나라황실(3): 황족은 내부적으로 어떻게 나누었는가? 글: 귤현아 옛날 사람들은 가족관념이 강했다. 그 '가족'의 개념은 오늘날보다 훨씬 넓다. 인구가 팽창한 후에 구체적으로 구분하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공씨(孔氏)의 경우에도 내공(內孔), 외공(外孔)의 구분이 있고, 사지오위십이부(四支五位十二府)등등의 말이 있다. 청나라 황족도 스.. 2014. 7. 17.
증국번: 영불연합군의 북경공격때 왜 북상하여 근왕(勤王)하지 않았는가? 글: 문재봉(文裁縫) 옥루편봉연야우(屋漏偏逢連夜雨) 선지우우타두풍(船遲又遇打頭風) 지붕이 샐 때 하필이면 장마가 내리고 배가 늦을 때 하필이면 역풍이 분다. 매번 이 두 마디 말을 생각할 때마다, 머리가 빠개질 것같고,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당시의 국면을 생각해보자. 자신은 .. 2014. 4. 29.
워싱턴기념탑의 중국비석 출처: <안과유성(雁過有聲): 중미인문교류의 기억> 미국인이 광주(廣州)에 오고나서 십년간, 청나라관리들은 여전히 미국인과 영국인을 구분하지 못했다. 청나라정부는 "외국의 상황에 대하여는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알려 하지 않은 상황이 전혀 고쳐지지 않았다." 아편전쟁이 발발한.. 2014. 4.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