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분석/황자쟁위술

[황자쟁위술] 양장피단술(揚長避短術) – 홍인시효패(弘仁示孝牌) : 조비편

중은우시 2015. 7. 27. 22:03

 

황위후보자가 효자인지여부는 “효치천하(孝治天下)”의 중국고대에 중요한 참고자료가 되었다. 그리하여, 후보자들인 황자들 간에는 자신의 효성을 드러내어 점수를 따려는 활동을 하게 된다. 이를 통하여 황제에 오를 수 있었던 사람으로는 조조(曹操)의 아들 조비(曹丕), 수문제 양견(楊堅)의 아들 양광(楊廣, 수양제), 도광제의 아들 혁저(함풍제)등이 있다.

 

조조의 아들들 중에는 뛰어난 재주를 지닌 자식들이 많았다. 그중 어느 정도 이름을 날린 인물로는 조앙(曹昻), 조비, 조식(曹植), 조창(曹彰), 조충(曹冲)이 있는데, 이중 조앙은 장남이고 능력도 있어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가장 컸으나 전투중에 사망하고 만다. 그리고 조조의 총애를 가장 많이 받았던 조충은 코끼리의 몸무게를 잰 이야기와 쥐가 안장을 갉아먹어 곤경에 처한 병사를 도와준 이야기등 신동으로 이름을 날렸으나 요절하고 만다. 조충이 죽은 후 조비가 조조를 위로하자 조조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조충이 죽은 것이 나에게는 슬픔이지만 너희들에게는 기쁨이겠구나.” 그 의미는 조충이 만일 살아있었다면 그를 후계자로 삼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결국, 조비가 후계자 경쟁을 벌인 상대는 조식과 조창이었는데, 조창은 장군으로 무술을 좋아하고 글읽기를 싫어했고 정치적 감각도 없었다. 한번은 조조가 조창에게 너는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물었을 때 ‘장군’이 되고 싶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그는 후계자경쟁에서 탈락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남은 경쟁자는 조비와 조식이었다. 조식은 칠보시(七步詩)로 유명하며, 글재주에서는 조비가 도저히 조식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조비가 조식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데 도와준 두 명의 모사가 있다. 하나는 가후(賈詡)이고 다른 하나는 오질(吳質)이다. 조비는 조식과의 경쟁이 치열해지자 부득이 가후에게 고개를 숙여 도움을 요청하는데, 가후는 조비에게 이렇게 말한다: “장군(당시 조비는 오관중랑장이었음)께서는 덕과 도량을 가지고, 선비로서 일을 행하면서 아침저녁으로 근면하게 하고, 아들로서의 효도를 다하면 그만입니다”(行素士之業, 盡人之子道). 그 후 조비는 그의 말에 따라 부친과 여러 서모들에게 효도를 다하였고, 후궁들 중에서 그를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세설신어>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진다. 조조가 출정할 때, 조비와 조식이 배웅을 했다. 조식이 부친의 공덕을 칭송하는 멋진 문장의 글을 지어 읽으니 좌우의 사람들이 모두 감탄하고 조조도 기뻐했다. 조비가 준비한 글은 조식보다 못하여 우울해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오질이 귓속말로 ‘왕이 떠날 때 눈물만 흘리시면 됩니다’라고 한다. 조조가 떠나려 하자, 조비는 그저 눈물을 펑펑 흘리며 절을 했다. 그러자 조조와 신하들이 재주는 조식이 뛰어나지만 성심(誠心)은 조비를 따를 수가 없다고 여기게 된다. 결국 재주를 드러낸 조식보다 성심을 드러낸 조비가 더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이다. 가후와 오질은 두 사람의 능력과 상황을 잘 분석해서 조비에게 최선의 조언을 해주었고, 조비는 그들의 조언을 잘 실행함으로써 결국 왕위를 물려받을 수 있었다.

 

조비의 이 전술을 더욱 완벽하게 가다듬어 성공한 인물이 바로 함풍제 혁저인데, 별도의 편으로 나누어 소개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