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안석 27

양송의 "세폐(歲幣)"는 송나라에 어느 정도의 부담이었는가?

글: 마도사(魔都師) 양송역사에는 후세에 욕을 얻어먹는 국책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세폐"를 바치고 평화를 얻은 것이다. 일찌기 요나라와 격전을 벌이다가 나중에 <전연지맹>을 체결한다. 나중에는 서하와 악전고투하다가 마지막에는 "세폐"를 주고 서하로부터 칭신을 받아낸다. ..

왜 황하는 이름이 하나인데, 장강은 구간마다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릴까?

글: 정정(丁丁) 중국경내에 가장 긴 두 개의 하류가 있다. 바로 장강(長江)과 황하(黃河)이다. 이 둘은 중화민족의 모친하(母親河)로 불린다. 기실 장강과 황하를 제외하고 중국에는 무수한 하류가 있다. 그들도 기실 중화민족의 모친하이다. 바로 무수한 크고 작은 하류가 중화 각민족을 ..

왕안석(王安石)의 아들 왕방(王雱)을 둘러싼 수수께끼

작자: 미상 왕방(1044-1076), 자는 원택(元澤), 왕안석의 아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그는 왕안석이 변법을 추진할 때 힘이 되는 조수였다고 한다. 일찌기 신법의 기획과 제정에 참여하고, 신법의 추진과정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사람의 그의 지력(智力)..

사상잠화(四相簪花): 신기한 송나라때 이야기

글: 노채(老蔡) 명나라 구영(仇英)의 <사상잠화도> 송나라때는 기이한 이야기들이 많다. 문인과 사대부들은 그런 이야기를 모아서 기록으로 남기길 좋아했다. <몽계필담보록권삼> <후산담총> <청파잡지>에는 모두 같은 이야기 하나를 적고 있다. 즉, "사상잠화"이야기이다..

왕안석(王安石)은 왜 복건자(福建子)를 미워했는가?

글: 송지견(宋志堅) 왕안석에 마지막으로 재상에서 파면될 때, 가슴 속에 원망을 품고 있던 대상은 "시종 신법은 안된다"고 주장한 사마광(司馬光)이 아니라, 원래 "왕안석에 찬동해서 신법을 건립했던" 여혜경(呂惠卿)이었다. 여혜경은 복건(福建) 천주(泉州) 사람이다. 역사의 기록에 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