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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분석/중국역사의 기록

중국 '첨신(諂臣)'의 아첨술

by 중은우시 2015. 3. 26.

글: 포강객(浦江客)


아부아첨을 하는 자는 역대 관료사회에 많이 있었다. 고인들은 그들을 "첨신"이라고 불렀다. 소위 "첨신"은 "첨미(諂媚)"라는 단어에서 파생되어 나온 말이다. 즉, 윗사람의 뜻을 받들어 비위를 맞추거나, 아부하는 관리를 가리킨다. <관자(管子)>에는 관리를 8종류로 분류했다. 그중 "첨신"은 "종과 북을 많이 만들고 부녀를 화장시켜서 황상을 미혹시키는 관리"라고 하였다. 관자는 그들이 많은 종과 북을 만들고 많은 미녀를 화장시켜 군주를 미혹시켜, 군주가 이에 미혹되어 충신의 의견을 듣지 않고, 첨신을 중용한다고 하였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아첨에 능한 관리들의 아첨술은 각양각색이다. 때에 따라 다르고, 사람에 따라 달라서 실로 경탄을 금할 수 없다.


"각노병(閣老餠)"은 양주의 전통 점심(點心)이다. 전설에 따르면 명나라때의 민간전설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명나라때 진홍모(陳洪謨)의 <치세여문(治世餘聞)>의 기록에 따르면, 명나라때 문연각대학사 구준(丘浚)은 면병(面餠)을 잘 만들었는데, 부드럽기와 찰진 것이 적당해서, 아주 맛있었다. 구준은 태감에게 부탁하여 면병을 황제에게 바친다. 황제도 먹은 후에 크게 칭찬한다. 그래서 어선을 담당하는 관리에게 배워서 만들도록 명한다. 그러나, 황제는 어선에서 배워서 만든 면병은 좋아하질 않았다. 그래서, 태감은 할 수 없이 구준에게 면병을 만드는 비결을 알려달라고 부탁하게 된다. 그러나 구준은 그 비결을 알려주지 않는다. 태감들은 탄식하며 말했다: "음식, 복식, 차마기용등 먹고 쓰는 물건을 황상에게 바쳐서 총애를 받는 것은 우리같은 내신들이 할 일이지, 재상이 할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조정의 중신으로서, 황상에게 총애를 얻는 방법으로 그가 면병을 만들 줄 안다는 별 것아닌 솜씨에 의존한 것이다. 당시 경성에는 "각노병"이라는 이야기가 널리 퍼졌는데, 이는 구준에 대한 큰 풍자라 아니할 수 없다.


청나라때 소련(昭槤)의 <소정잡록(嘯亭雜錄)>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강희제의 근신 고사기(高士奇)는 일이 생기면 먼저 황상의 생각을 눈치로 알아내어 상대방에 영합한다. 그래서 매번 황상의 환심을 샀다. 하루는 강희제가 사냥을 하는데, 말이 발을 헛디뎌 하마터면 말에서 떨어질 뻔했다. 그래서 황상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고사기는 이 일을 알고나서, 진흙으로 의복을 더럽힌 후, 급히 궁중으로 달려가서 황상을 모신다. 강희제는 이상하게 여겨져서 그에게 어찌된 일이냐고 묻는다. 고사기는 이렇게 대답한다: "제가 금방 말에서 떨어져 진흙물에 쳐박혔습니다. 그런데 옷을 바꾸고 씻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강희제는 그 말을 듣고 크게 웃으며 말한다: "너희 남방인들은 원래 이렇게 유약하다. 금반 나의 말도 여러번 발을 헛디뎠지만, 나는 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강희제의 노기는 가라앉게 된다. 기실 구준, 고사기 두 사람은 모두 학식이 많은 관리였고, 역사적 평가도 낮지 않다. 그러나 그들이 아첨을 잘했다는 추사(醜事)는 후세인들의 웃음거리로 남았다.


황상에게 잘보이는 것 이외에 관료사회에서 더 많은 관리들은 아부의 기술을 상사에게 쓴다. 그중 가장 전형적인 것은 아마도 명나라때 여러 관리들이 엄당(閹黨)의 우두머리 위충현(魏忠賢)을 위하여 생사(生祠, 살아있는 사람을 모시는 사당)를 지은 것과 "오줌술을 마신 일"일 것이다. 명나라때의 포여즙(包汝楫)은 <남중기문(南中紀聞)>에 이렇게 기록해 놓았다. 명희종 천계연간에 위충현이 조정을 좌지우지했고, 권세가 하늘을 찔렀다. 천계6년, 항주관리가 장액문내에 위충현 생사를 건립하고, 황상이 친히 편액을 써서 내려주었다. 그래서 각성은 속속 위충현 생사를 건립하게 되고 이를 가지고 아첨한다. 당시에 절강의 생사는 아주 화려하고 호화스러웠다. 궁전 정자식의 화려함은 말할 것도 없고, 위충현의 소상(塑像)을 만들어 모셨는데, 마치 살아있는 사람같았다고 한다.


더욱 황당하기 그지없는 아부는 "오줌술을 마신 것"이다. 당시 사회에서 연회를 거행하면 반드시 위충현의 소상을 모서서, 음악을 연주하고, 음식을 차리고 술을 내놓았다. 마치 살아있는 사람을 대하듯이했다. 소상의 배에는 주석으로 만든 창자를 놓아두었는데, 술을 올릴 때는 그 주석창자에 부었다. 그리고 그것이 꽉 차게 되면 주인은 공손하게 소상을 받들고 대청밖으로 나가서 "소변"을 보게 한다. 즉, 주석창자안의 마개를 열어서 술을 단지에 따른다. 마지막으로 사람을 시켜 음식을 거두게 하면서 단지 속에 든 술까지 참석한 여러 관리들에게 나누어준다. "아첨의 기술이 여기에 이르렀다" 정말 구토가 나올 지경이다.


아부를 하는 수단에서 일부 관리들은 아주 능숙했고, 심지어 후안무치했으며, 못하는 짓이 없었다. 북송신종 희녕연간에, 광록경 관직으로 번우태수를 하고 있던 자가 당시 재상 왕안석에게 보낸 서신이 있는데 이렇게 적었다: "제가 가장 유감스럽게 여기는 일은 나의 몸이 하루하루 건장해지는 것입니다. 저는 그저 하루빨리 죽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저는 승상께서 나를 위해 써주시는 묘지명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아마도 나의 이름은 당신의 뛰어난 글에 붙어서 영원히 후세에 남을 것입니다." (송나라때 장사정의 <권유록>). 아부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중국역대의 아첨술중에서 심지어 사서를 편찬하면서 당대 권력자에게 아부한 경우도 있다. <북제서.위수전>의 기록에 따르면, 북제 사람인 위수는 품행이 아주 좋지 않은 사관이었다. 그는 자주 다른 관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누구든지 나를 나쁘게 대하면 나는 사서에서 그를 땅속까지 폄하할 것이고, 누구든지 나에게 잘해주면, 그를 하늘위로 치켜세워 줄 것이다." 위수는 바로 사서를 쓰면서 자신의 개인적인 호오를 가지고, <위서>를 편찬했다. 그리하여 후인들은 이를 "예사(穢史, 더러울 예)"라고 부른다. 그가 당시의 권세가 양휴지(陽休之)의 도움을 받았을 때는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저는 당신의 은덕에 보답하지 못했습니다. 단지 국사를 쓸 때 당신의 전기를 잘 써드리겠습니다." 그의 인품이 얼마나 비열한지는 분명히 드러난다.


당연히 어떤 관리들이 보기에 아첨도 좋고, 아부도 좋고 모두 댓가가 있는 것이다. 이는 한 글자와 관게있다. 돈. 명나라때 진방첨(陳邦瞻)의 <송사기사본말>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남송 영종연간 권상 한택주의 권세가 하늘을 찔렀다. 그에게 아부하는 자들이 아주 많았다. 조사고(趙師睾)는 한택주에 빌붙어서 임안부를 관장하는 직위를 얻는다. 한택주의 생일때, 관리들이 앞다투어 그에게 진귀한 보물을 바치며 생일을 축하한다. 조사고는 마지막에 도착하여,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작은 과일을 바치고자 합니다." 그가 상자를 열어보니, 금포도가 한 송이 있고, 거기에 100여개의 금포도알이 달려 있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라고, 그가 한수 앞선다고 인정한다. 한택주에게는 4명의 애첩이 있었는데, 모두 군부인(郡夫人)에 책봉되었다. 다음으로 10명의 명분을 지닌 첩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 한택주에게 4개의 북주관(北珠冠)을 바치자, 한택주는 이를 4명의 군부인에게 주었다. 나머지 10명의 첩은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 조사고는 이 말을 듣고는 즉시 북주를 사서 10개의 북주관을 바친다. 그리하여 10명의 첩들이 아주 기뻐한다. 모두 조사고를 추천하여 승진시켜달라고 부탁한다. 나중에 조사고는 공부시랑에 오른다.


<송사기사본말>에는 이런 기록도 있다. 남송영종연간, 전당현 지현 정송(程松)은 한택주에 빌붙어 아첨했다. 2년도 되지 않아 간의대부에 오른다. 다만 임직기간이 끝났는데 승진이 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마음 속으로 우울해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시장에 가서 첩을 한 명 사서 한택주에게 바친다. 이름은 "송수(松壽)"라 한다. 한택주가 묻는다: "왜 그녀의 이름이 너와 같은가?" 정송이 이렇게 대답한다: "저의 비천한 이름이 자주 당신의 귀에 들리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결과, 한택주는 그를 불쌍히 여겨서, 가태원년에 동지추밀원사로 승진시켜준다.


전해지는 바로는 청나라때 관료사회에는 관직을 구하는 6자진언이 유행했다고 한다: 즉,"공(空), 찬(鑽), 취(吹), 봉(捧), 공(恐), 송(送)". 여기서 "봉"은 바로 아첨하는 것을 말한다. 무릇 자신에게 쓸모있는 사람이면 어떤 때이건, 어떤 경우이건 그에게 아첨해야 한다. 얼마나 느끼한 말이든 모두 해야 한다. 기실, 이런 수단은 하나의 "조합권(組合拳)"이다. '한가한 시간이 있으면'(空), 항상 관직에 나갈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잘 '뚫고 들어가(鑽)'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 기회가 있으면 절대로 놓치지 않아야 한다; '자신을 자랑하며 다녀야 한다'(吹). 스스로를 치켜세우고 속이고 허풍을 떤다. '상사를 겁준다'(恐).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의 배경이 어떤지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마지막에는 '선물을 보낸다'(送). 상대방이 네 돈을 받았다면, 분명 너를 도와줄 것이다. 결론적으로 온갖 머리를 짜내어, 있는 기량은 다 펼쳐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귀족에게 아부한다. 이는 역대 아첨군들의 공통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