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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후46

주창(周昌): 사대부(士大夫)와 노재(奴才) 글: 후홍빈(侯虹斌) 한나라초기의 어사대부 주창은 말을 더듬는 버릇이 있었다. 말을 하다가 급하면, "기(期)....기(期)...."라고 하며 말을 끝맺지 못했다. 서진때의 등애(鄧艾)도 마찬가지로 말을 더듬었다. 말을 하다가 자주, "애(艾)....애(艾)...하고 했다. 두 명신을 합하면 바로 성어인 "기.. 2013. 8. 15.
한고조 유방과 그의 장남 글: 동리채국(東籬採菊) <사기>의 "고조본기"를 세심하게 읽은 독자라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한고조 유방이 한왕에 봉해지기 전에 부인이 있었는데 그녀는 바로 여태공의 딸인 여치(呂稚), 즉 나중의 여후(呂后)이다. 여후는 평생동안 자식을 둘 낳는데, 한 명이 효혜제(孝惠帝)이.. 2013. 8. 15.
대한개국귀재 진평: 유방이 죽은 후 글: 진사황(秦四晃) 유방이 죽자, 진평의 마음은 모조리 여후와 어떻게 소통할 것인지로 옮겨간다. 그는 충성스러운 모양으로 여후의 신임을 얻는다. 얼마후 그는 낭중령에 임명되고, 다시 그에게는 특별한 임무가 부여된다. 즉위할 태자 유영을 가르치고 보호하는 것이었다. 노신들은 연.. 2013. 4. 27.
여인도 후(侯)의 작위를 얻은 적이 있다. 글: 후홍빈(侯虹斌) 여후가 권력을 농단할 때, 여러 여씨들이 분봉을 받는데, 그중에 놀랍게도 여후의 여동생인 여수(呂媭)도 후에 봉해졌다. 그녀는 임광후(臨光侯)가 된 것이다. 필자는 그녀가 최초로 후에 봉해진 여인이라고 본다. 이것은 확실히 기괴한 일이다. 제왕사상 여성의 작.. 2013. 4. 26.
한문제(漢文帝): 고대 황실에서는 어떻게 귀복(龜卜)을 쳤는가? 글: 우좌(于左) 유항(劉恒)은 한고조 유방(劉邦)의 아들이다. 그는 대왕(代王)에 봉해졌다. 기원전180년 구월의 어느 날, 사자가 도성 장안에서 대국으로 온다. 그리고 대왕 유항에게 장안으로 가서 황제에 등극하라고 말한다. 하늘에서 떨어진 황위는 기쁘면서도 놀라웠다. 유항은 마음 속.. 2013. 4. 16.
소하철학(蕭何哲學): 중국정계2천년의 거세철학 글: 정만군(程萬軍) 2천년 봉건사회에서 중국정계의 주류는 무엇인가? 통속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그것을 "소하철학"이라고 부른다. 모두 알다시피, 한나라의 개국황제 유방은 거의 모든 공신을 쫓아냈다. 오로지 소하만 남긴다. 그리고 역사상 소하와 같은 관리만이 관료사회의 오뚜기, .. 2012. 8. 15.
황제사후 비불발상(秘不發喪)의 비밀 글: 대지약(大智若) 일세를 풍미하고, 권력을 독단,전횡하며 풍운을 질타했던 황제가 죽은 후에 시체가 썩을 때까지 그냥 놔두고 장례식을 치르지 않은 경우들이 있다. 이들 제왕의 시체에는 도대체 무슨 비밀이 있었던 것일까? 제환공의 경우 공자소백(公子小白)이 계모를 써서 왕위를 .. 2012. 4. 12.
여치(呂雉)와 유방(劉邦) 글: 상선약수(上善若水) 여치는 한고조 유방의 황후이다. 역사상 아주 성공한 여성정치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녀의 이름을 언급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녀의 악독함과 권모술수이다. 그러나, 젊었을 때의 여치는 그렇지 않았다. 현숙한 여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 2012. 1. 31.
"모성(謀聖)" 장량(張良)에 관한 수수께끼 글: 여영무(余英茂) 진말한초의 군사모략가 장량은 중국역사상 전설적인 인물이다. 소위 "운주어유악지중(運籌於帷幄之中), 결승어천리지외(決勝於千里之外)"는 바로 장량을 말하는 것이다. 장량은 '모성'으로 칭송되고, 그의 이름은 지혜의 대명사가 되었다. 문성 공자, 무성 관.. 2012. 1. 29.
여수(呂嬃): 중국역사상 최초의 여성 '후작(侯爵)' 글: 왕준초(王俊楚) 비록 진승(陳勝)이 호기등등하게 '왕후장상에 씨가 따로 있느냐?"고 외친 바 있지만, 중국역사상, 진정 후작의 지위를 얻은 사람은 아주 소수의 인물들이다. 후작중에 여성은 더더욱 귀하다. 중국역사상 처음으로 후작에 오른 여성은 '여수(呂嬃)'이다. 여수가 여성의 몸으로 후작이 .. 2011. 9.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