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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呂嬃): 중국역사상 최초의 여성 '후작(侯爵)'

by 중은우시 2011. 9. 5.

글: 왕준초(王俊楚)

 

비록 진승(陳勝)이 호기등등하게 '왕후장상에 씨가 따로 있느냐?"고 외친 바 있지만, 중국역사상, 진정 후작의 지위를 얻은 사람은 아주 소수의 인물들이다. 후작중에 여성은 더더욱 귀하다. 중국역사상 처음으로 후작에 오른 여성은 '여수(呂嬃)'이다.

 

여수가 여성의 몸으로 후작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바로 여치(呂雉, 여후)의 여동생이기 때문이다.

 

여치의 본적은 단보현(單父縣, 현재의 산동성 단현)이다. 여수의 부친인 여문(呂文, 사람들이 '呂公'이라고 부름)은 모두 4명의 자식을 두었다: 장남은 여택(呂澤), 차남은 여석지(呂釋之), 장녀는 여치, 차녀는 여수이다. 여공이 전란때 원수를 피해 패현(沛縣)으로 도망쳐왔을 때, 두 딸인 여치, 여수는 각각 유방(劉邦), 번쾌(樊)에게 시집을 간다.

 

기원전209년, 진승, 오광이 난을 일으키고, 유방은 소하, 조참, 번쾌등을 이끌고 패현에서 거병한다. 진나라가 망한 후, 유방은 한왕이 되며, 초한의 전투를 거쳐 해하일전에서 승리함으로써 유방이 항우를 물리치고, 천하를 빼앗아 한나라를 건립한다. 유방은 서한의 개국황제가 되며 역사에서 '한고조'로 불린다. 유방이 황제가 된 후, 여치는 황후가 된다. 번쾌는 개국공신이자, 여후의 여동생 여수를 부인으로 삼아서, 다른 장수들보다 가까웠으므로 무양후에 봉해지고 대장군, 좌승상에 오른다.

 

봉건왕조에서 후궁들간의 다툼이나 적서의 다툼은 항상 볼 수 있다. 유방의 후궁도 예외는 아니다. 명쟁암투과정에서 심계가 뛰어나고 수단이 독랄한 여치는 자리를 굳건히 잡고, 자신의 세력을 심는다. 유방이 죽은 후, 태자 유영이 황제에 오른다. 황태후가 된 여치는 후궁에서 나와서 역사의 무대로 올라오고, 임조칭제한다. 그녀는 중국역사상 최초로 임조칭제한 황태후이다. 황권을 빼앗은 여치는 유방이 생전에 한 "백마맹세"를 무시하고, 여씨들을 대거 제후로 봉한다. 먼저 돌아가신 부친 여문 및 죽은 오빠 여택을 왕으로 봉한다. 나중에는 조카 여태를 여왕에 봉한다(1년후 병사하자, 그의 아들 여가가 승계한다). 여록은 조왕으로, 조카손자 여산은 양왕에 봉하며, 여통은 연왕에 봉한다. 그리고 나머지 여씨성의 자제 6명을 후로 봉한다. 이외에 여동생 여수도 임광후(臨光侯)로 봉하니, 여수는 중국역사상 최초의 여성후작이 된다.

 

가족관게로 인하여 '후작'이 된 후, 여수는 그냥 조용히 있지를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캐내어, 기회만 되면 언니인 여치에게 밀고했다. 일찌기 남편 번쾌의 목숨을 구해준 적이 있는 진평도 그녀의 손속을 벗어나지 못했다.

 

여씨들이 권력을 잡자, 조정의 노신들은 불만이 컸다. 여씨를 무너뜨리려는 움직임이 암중에 있었다. 이에 여치는 위기의식을 느낀다. 기원전180년 가을, 여치는 병이 위중해진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하여, 여록은 북군을 이끌고 여산은 남군을 이끌게 한다. 그리고 두 사람에게 당부한다: "여씨들을 왕에 봉했는데, 대신들의 불만이 적지 않다. 내가 죽은 후, 황제의 나이가 어리니, 대신들이 변란을 일으킬 지 모른다. 너희는 반드시 군영에 남아서, 궁정을 엄밀히 보호하라. 일단 군영을 떠나면, 만의 하나 변고가 있더라도 너희는 어쩔 도리가 없고, 적의 수중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여치가 병사한 후, 주발, 진평을 우두머리로 하는 '반대파"는 전국에서 여씨타도운동을 일으킨다. 여씨성의 왕, 후들은 공공의 적이 된다. 그런데, 북군의 군권을 장악하고 있던 조왕, 상장군 여록은 여기의 말을 가볍게 믿고, 병권을 내놓고 화를 피할 생각을 하며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는다. 하루는 사냥에서 돌아오는 길에 고모인 여수의 집에 들른다. 여수는 여록이 이처럼 지모가 부족한 것을 보고 비분강개하여 말한다: "네가 장군에 있으면서 군영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니, 여씨가족은 죽어도 묻힐 곳이 없겠구나." 그리고는 집안의 금은보화를 마당에 꺼내놓고 노비들에게 나눠주며 탄식한다: "나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이것들을 지키고 싶지 않다."

 

여수의 예언은 적중했다. 여록이 병권을 내놓고도 처결을 당한다. 여산도 반대파들에게 쫓겨서 화장실에서 참살당한다. 여씨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조리 도살당한다. 반대파들은 여수를 미워했으므로 여수를 등나무가죽으로 때려서 죽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