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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한)

소하철학(蕭何哲學): 중국정계2천년의 거세철학

by 중은우시 2012. 8. 15.

글: 정만군(程萬軍) 

 

2천년 봉건사회에서 중국정계의 주류는 무엇인가? 통속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그것을 "소하철학"이라고 부른다.

모두 알다시피, 한나라의 개국황제 유방은 거의 모든 공신을 쫓아냈다. 오로지 소하만 남긴다. 그리고 역사상 소하와 같은 관리만이 관료사회의 오뚜기, 정계의 상록수가 되었다. 그건 무엇때문인가?

역사를 고찰해보면, 유방이 소하를 죽일 생각을 품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소하는 60여세때 병중에 유방으로부터 '대역무도'라는 죄명으로 감옥에 갇힌 적이 있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죽이지 않았다. 유방, 여후 두 부부는 소하에 대하여 측은지심이 들었던 것일까? 아니면 다른 생각이 있어서였을까?

유방, 여후의 앞에서, 소하는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자리매김했다. "집지키는 늙은 종(看門老奴)". 이렇게 자리매김하고 나자, 그는 유방, 여후가 언제든지 불러서 일시킬 수 있는 당직병이자, 아주 잘 위장한 방조범이었다. 이런 이중적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유방부부에 있어서는 찾기가 어려웠다.

 

유방이 거병하기 전에 직무는 겨우 정장이었다. 소하는 현청에 근무했다. 유방은 소하의 앞에서 공손했다. 유방이 정장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소하가 추천해주고 보증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십년하동, 삼십년하서인 법이다. 유방이 반란을 일으킨 후 소하는 스스로 유방의 부하를 자처한다. 시종 출실한 당직병으로 바쁘게 돌아다녔다.

한신을 유인살해하는 사건에서, 소하는 또 다른 특이한 기능을 보여준다. "선량"한 방조범이다. 유씨의 한나라천하는 절반이상이 소하의 공로이다. 이 명백한 공로를 소하는 분명히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유방이 암시하고, 여후가 나선 상황하에서 소하는 기꺼이 조주위학(助紂爲虐)하고, '청군입옹(請君入瓮)'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일생동안 총명했던 한신 대장군은 죽기 전에도 '소상국이 나를 구해줄 것이다'라고 믿었다. 그를 지하지옥으로 보낸 것이 바로 이 대간사충(大奸似忠)의 백락이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소하가 한신을 유인하여 살해한 것에 대하여 후세인들은 소하는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소하의 행적을 살펴보면, 여기에서 부득이하게 한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소하의 속임수가 얼마나 노련했는지 살펴보자.

가짜 성지로 한신이 입궁하도록 만든다. 반란자를 이미 붙잡아 참살했고, 열후, 군신이 입궁하여 축하한다고 한다. 한신이 자신을 해칠지도 모른다고 경계하고 병을 핑계삼아 가지 않고 있을 때, 소하는 노은사의 신분으로 나서서 진지하게 한신에게 말한다: "네가 비록 몸에 병이 있지만, 억지로라도 입궁하여 축하해라. 그래야 황제가 의심을 품지 않는다." 한신은 다른 사람의 말이었다면 믿지 않았겠지만, 자신에게 은혜가 있는 백락 소하는 의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신은 속임수에 걸려든 것이고, 스스로 함정으로 걸어들어갔다.

소하는 한신을 죽이는 것을 도와서 유방부부로부터 더욱 큰 은총을 받는다. 서한왕조에서 그는 오랫동안 '호호선생'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역사상의 '호호선생'은 반드시 호인이 아니다. 그들의 인생철학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명철보신(明哲保身)이다. 무슨 '철'을 잘 알고, 무슨 '신'을 보존하는가? 소하가 60여세 때 유방에 의하여 '대역무도'로 하옥되었다가 나중에 석방된다. 출옥후의 소하는 이미 고생하여 사람모양이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하여 스스로의 명예를 더럽힌다. 소하는 원래 '민심을 잘 보살피고 헤아려주는 것'으로 자신의 호인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러나 주공의 의심이 가중되자, 호인으로 백성들의 인기를 얻는 것은 주공보다 더 높은 공을 세워서 누르려는 야심을 가진 것으로 보여질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더 이상 호인으로서 좋은 일을 계속 해서는 안되었다. 그래서 소하는 강제로 사들이거나, 강제로 팔아먹거나, 혹은 매점매석하는 등으로 스스로의 명예를 더럽힌다.

고대인들은 생식기를 자르는 것을 '거세'라고 했다. 이때의 소하는 이미 생리적으로 거세당한 것은 아니지만 심리적으로 거세된 관리였다. 그러나 이런 지경에 이르러서도 그는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지 않는다. 죽을 때까지 승상의 직에 남아 있었다. 소하는 재상의 지위에 엄청난 미련을 보였다.

이를 보면 소하의 명철보신은 드러내는 것은 '거세'철학이다. 그가 지키려는 것은 '환관'의 몸이다. 온전하게 물러나서 목숨을 보전한 장량에 비하여 소하는 목숨을 보전했을 뿐아니라, 관직도 보전했다. 관직을 보전하기 위하여, 그는 일체의 댓가를 치렀다. 방조범이 되는 것도 마다자히 않았고, 스스로의 명예를 짓밟기도 했다.

 

관직에 미련을 두지 않았던 장량은 더낫다. 개성있던 한신은 피살당한다. 관직에 미련을 두고 있고, 스스로의 포지션을 노비로 두었던 소하는 혈우성풍의 정계에서 오뚜기가 되고, 상록수가 된다.

소하인생철학의 핵심은 장량, 한신과는 크게 다르다. 장량은 유방의 합작파트너이다. 소하는 유방의 노비이다. 합작파트너의 인격은 상대적으로 독립된 것이다. 그러나, 노비는 인격이 없다.

소하의 황로치세는 일종의 정치수완이었다. 그의 인생철학은 후세 관료사회의 기풍에 영향을 미친다. 부작용이 컸다. 소하이래 이천년간, 중국관료사회는 '호호선생'이 갈수록 많아진다. 그들은 주관도 없고, 선악도 없다. 중국정계는 죽지도 살아있지도 않은 '거세조정'이 된다.

거세된 정치는 거세된 남자와 마찬가지로, 영웅이 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