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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후46

균형의 타파와 재건 글: 왕립군(王立群) 세력간의 균형은 제국정권을 안정시키는 중요한 방식의 하나이다. 다만, 이런 균형은 가장 취약한 형태이기도 하며, 아주 쉽게 타파되기도 한다. 일단 균형이 타파되면, 제국정권의 안정성은 심각한 도전을 받는다. 균형이 타파되는 것은 어느 일파가 특정한 역사조건.. 2011. 4. 27.
도덕규범과 권력법칙 글: 왕립군(王立群) 한나라 혜제(惠帝) 7년, 유영(劉盈)이 병사한다. 혜제 유영의 요절은 여후에게 큰 타격을 주게 된다. 여후에게는 아들이 유영 하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아들이 24살 때 요절을 하고 만 것이다. 노년에 아들을 잃은 어머니로서 여후가 얼마나 큰 타격을 받았을지는 상상할 수 있을 .. 2011. 3. 22.
유방(劉邦)과 여후(呂后): 명쟁암투(明爭暗鬪)의 일생 글: 진령신(陳令申) 진(秦)나라 말기, 통치는 가혹했고, 백성들은 모두 도탄에 빠져 있었다. 이때 패현(沛縣)에는 이런 인물이 있었다. 하루종일 백수건달로 지내면서, 한 무리의 쓸데없는 자들과 어울려 놀았고, 제대로된 일은 전혀 하지 않았다. 하루는 현령이 집안에서 귀한 손님을 모셔서 연회를 베.. 2011. 2. 3.
전제군주제의 비극: 생존을 위한 오명 글: 왕립군(王立群) 현실생활에서 스스로 자신의 몸에 오물을 뒤집어쓰려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상 명성이 자자한 사람들 중에서 스스로 오명을 뒤집어쓴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잘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실제로 스스로 오명을 뒤집어쓰는 일에는 말못.. 2010. 9. 17.
깡패황제 유방(劉邦)의 7가지 깡패행위 글: 장강단적(長江短笛) 만일 누가 중국역사상 가장 대단한 황제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한고조 유방을 떠올릴 것이다. 이는 그가 미천한 출신이면서도 진나라의 폭정을 끝내고, 사해를 평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군사책략에서 그 자신보다 뛰어난 장량(張良), 치국안방에서 자기보.. 2007. 12. 30.
박태후(薄太后) : 유방의 총애를 받지 못하면서 아들을 황제로 만든 여인 글: 사걸붕(史杰鵬) 대왕(代王) 유항(劉恒)은 어떻게 황제자리에 안게 되었는가? 이것을 얘기하자면 그의 신세내력부터 얘기해야 한다. 유항의 모친은 성이 박(薄)씨이다. 역사에 이름은 남기지 않아서, 젊었을 때는 모두 박희(薄姬)라고 불렀고, 나이가 들어서는 박태후(薄太后)로 불리웠다. 그녀의 부.. 2007.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