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청 후기)138 북경대학(北京大學) 개교식에서의 광서제(光緖帝)의 강화(講話) 글: 왕남방(王南方) 광서제의 북경대학에서의 강화를 읽은 다음에 이전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받았다. 봉건황제이면서 전혀 팔고(八股)의 기운은 없다. 오늘날 상류사회의 진부한 분위기도 전혀 느낄 수가 없다. 어떤 관료의 보고서에서 나오는 그런 상투적인 말, 헛된 말, 거짓된 말도 없.. 2018. 5. 11. "무술변법(戊戌變法)"의 4가지 놀라운 진상 글: 풍학영(馮學榮) 진상1: 서태후는 처음에 변법에 반대하지 않았다. 많은 역사드라마를 보면 서태후가 처음부터 끝까지 무술변법을 반대한 '완고한 보수파'로 그려진다. 기실 진실한 상황은 그렇지 않다. 사실상, 서태후는 처음에 광서제의 변법에 대하여 지지했다. 최소한 반대는 하지 .. 2018. 2. 8. 서양인이 본 청나라 여인 글: 이효교(李曉巧) 중국고대사회에 여자들은 "부도(婦道)"를 엄격히 지켜야 했다. 특히 명청시대의 봉건예교(封建禮敎)는 부녀들을 더더욱 속박했었다. 청나라 중기이후,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중국으로 오는 외국인들이 점점 늘어났고, 그들은 복잡한 눈으로 이 오래된 신비한 나라.. 2018. 1. 4. 동치황후(同治皇后)의 죽음 글: 등해춘(鄧海春) 운명이 비참했던 청나라 황후를 들자면 아마도 사람들은 마지막 황후 완용(婉容)을 떠올릴 것이다. 완용은 확실히 운명이 비참했고, 시신이 어디에묻혔는지도 찾을 수가 없어서 마지막 국구(國舅)인 곽포라 윤기(郭布羅 潤麒)의 동의를 받아 2006년 "초혼"의 방식으로 .. 2017. 12. 21. 청(淸), 일(日)의 두 고찰단이 서방에서 서로 다른 성과를 거둔 이유는? 글: 정만군(程萬軍) 1869년, 청나라정부는 만주족 지강(志剛, 기명해관도)과 한족 손가곡(孫家谷, 예부낭중)을 핵심으로 하는 "방서단(訪西團)"을 파견한다. 사절단의 단장은 큰 돈을 들여 모셔온 외국인이다. 미국인 포안신(浦安臣, Anson Burlingame,1820年11月14日-1870年2月23日)이다. 사절단은.. 2017. 8. 6. 숙순(肅順): 빈사상태의 청왕조를 살려냈지만, 청왕조에 의하여 잔혹하게 처형되다 글: 아방단대장금(我方團隊張嶔) 1840년이후의 청나라말기역사는 쳐다보면 항상 울분이 인다. 특히 그중 함풍연간을 보면 더욱 울분이 일어 피를 토할 지경이다. 남쪽의 태평군(太平軍), 중원의 염군(捻軍), 그리고 조직적으로 밀고 들어오는 영불연합군, 매년 이렇게 고난을 겪고 있었.. 2017. 7. 13. 이전 1 ··· 7 8 9 10 11 12 13 ··· 2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