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청 후기)

"무술변법(戊戌變法)"의 4가지 놀라운 진상

by 중은우시 2018. 2. 8.

글: 풍학영(馮學榮)


진상1: 서태후는 처음에 변법에 반대하지 않았다.


많은 역사드라마를 보면 서태후가 처음부터 끝까지 무술변법을 반대한 '완고한 보수파'로 그려진다. 기실 진실한 상황은 그렇지 않다.

사실상, 서태후는 처음에 광서제의 변법에 대하여 지지했다. 최소한 반대는 하지 않았다.

광서제는 변법초기에 <명정국시조(明定國是詔)>를 반포하면서 공개적으로 변법을 선언한다. 이는 서태후의 동의를 받은 것이다. 현존하는 청나라때의 내부자료에서는 아주 명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서태후는 초기에 변법에 대하여 광서제에게 큰 지지를 보냈다.

현존하는 청나라때의 비밀자료를 보면, 광서제는 변법기간동안 여러 주절, 비복등 중대문건을 기본적으로 모조리 서태후에게 한부씩 보냈다. 바꾸어 말하면, 서태후는 이 기간동안 비록 이화원에서 '양로'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녀가 변법의 크고 작은 모든 일을 기본적으로 손바닥보듯이 다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광서제가 유신운동을 한 기간은 103일이다. 3개월가량이다. 새로운 정책이 계속 내놓는데, 서태후의 지지와 묵인이 없다면 그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다.

진상2: 광서제는 외신(外臣)을 기용해서, 합방(合邦)을 논의했고, 이는 서태후의 마지노선을 건드렸다.


변법을 시작한 후, 강유위(康有爲), 담사동(譚嗣同)등의 유신파는 광서제에 건의한다. 일본의 전총리 이토 히로부미와 영국의 선교사 티모시 리차드(중국명 李提摩太)를 초청해서 대청제국의 국책고문으로 삼자고 한다.

이와 동시에, 이토 히로부키와 티모시 리차드는 유신파에 이런 건의를 한다. 중국, 영국, 미국, 일본의 4개국가를 하나로 합치는 것인데 이 제안을 "합방지의(合邦之議)"라고 불렀다. 이 제안은 6군자의 하나인 양심수(楊深秀)가 광서제에게 제출한 것으로, 구체적인 방법은 중국, 일본, 영국, 미국의 4개국가에서 100명의 능력있는 사람을 뽑아서 공동으로 4개국가의 세수, 군사, 외교등 국가대사를 장악하는 것이다. 대청제국은 당시에 약소국이어서 이 일이 이루어지면, 대청의 국정은 확실히 자주권을 잃게 될 위험이 있었다.

다만, 이 일은 논의단계였는데, 이때 노신중에 양숭이(楊崇伊)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정치적 후각이 예민했다. 그는 좀 이상하다고 여기고 서태후에게 달려가서 바로 고한다.

양숭이는 서태후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토 히로부키, 티모시 리처드는 일본인, 영국인이고, 우리와 같은 족속이 아니기 때문에 같은 마음일 수가 없다. 들리는 바로는 황상이 현재 소인(유신파)의 말을 듣고 이들 외국인들이 대청의 국책에 참여하도록 하여 세수, 외교, 군사를 모조리 외국인들이 장악하게 하겠다고 한다. 일단 이 일이 성사되면, 모두 일본인의 말을 듣거나, 영국인의 말을 들어야 한다. 이 국면은 아주 위험합니다. 노불야(老佛爺)께서는 앞으로 통제할 수 없어질 것이고 우리 대청은 정말 망하게 될 것입니다.

서태후도 영민하게 느꼈다. 일단 외국의 적대세력이 조정에 참여한다면, 대청의 정국은 반드시 통제권을 잃게 될 것이고, 자신의 권력도 외부세력에 침탈될 것이고, 하루도 편안히 있기 힘들 것이라고.

여기까지 생각하자, 서태후는 한시도 더 기다릴 수가 없었다. 즉시 사람을 데리고 이화원에서 자금성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광서제에게 변법을 중지하라고 명하고, 광서제를 연금시킨다. 그리고 강유위등 유신파인사들을 체포하라고 명한다.

이것이 기실 서태후가 변법을 중단시킨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다.


진상3: 강유위는 유언비어를 믿고, 서태후를 암살하려 했다.


유신파는 이 기간동안 한가지 유언비어를 들었다. 즉 추조(秋操, 열병식)때, 서태후와 영록(榮祿)이 광서제를 폐위시킬 것이라는 것이다. 당시 강유위 일파는 이 유언비어를 믿었고, 먼저 손을 써서 서태후를 죽여버리는 것이 낫다고 여겼다.

그리하여 강유위는 담사동을 보내어 원세개를 찾아가게 한다. 담사동의 계획은 원세개에게 병력을 출동시켜 이화원을 포위하게 하고, 그 후에 담사동이 호남의 호걸인 필영년(畢永年)등을 시켜 100여명을 이끌고 이화원으로 진입하여 직접 서태후를 죽여버리는 것이다

원세개는 담사동의 제안을 듣고 허여위사(虛與委蛇. 겉으로만 따르는 척하다)하여 실질적으로는 거절한다.

서태후는 나중에 영록을 통해서 이 음모를 듣고는 깜짝 놀라고, 그제서야 살인보복을 결정한다.

그래서 청나라조정은 급히 담사동, 강광인(康廣仁)등 6명을 체포하고 재판도 거치지 않은 채로 직접 처결한다. 역사상 무술육군자가 채시구(菜市口)에서 처형당한 사건의 진실한 연유는 원리 이러하다.

강유위와 양계초는 외국인(일본인, 영국인)의 보호하에 성공적으로 탈출한다.


진상4: 서태후의 변법중단이 먼저이고, 원세개의 밀고가 나중이다.


그리고 많은 역사영화, 드라마에서는 원세개가 서태후에게 밀고한 것이 직접적으로 무술변법의 실패를 가져왔다고 말한다. 기실 이것은 사실에 부합되지 않는다.

사실상 원세개는 담사동을 만난 후, 마음 속에 비밀로 간직했고, 계속 불안했다. 그는 계속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원세개는 북경으로 가서 광서제를 만난 후, 천진으로 되돌아온다. 그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는다. 그리하여 그는 결국 천진의 영록에게 달려가서 밀고하게 된다.

그러나, 원세개가 영록에게 밀고한 때는 서태후가 이미 이화원에서 자금성으로 가서 무술변법을 중단시킨 때였고, 이미 광서제를 연금한 때였다.

영록은 원세개의 보고를 받고는 북경으로 돌아가서, 서태후에게 보고한다. 서태후는 그 말을 듣자, 깜짝 놀라서 유신파의 체포범위를 확대하고, 대거 죽이게 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서태후가 변법을 중단시킨 것이 먼저이고, 원세개의 밀고가 나중이다. 원세개의 밀고행위는 무술변법의 실패와 인과관계가 없다. 다만 원세개가 밀고한 사건은 확실히 육군자의 죽음과 관계가 아주 밀접하다.

여러 청나라때의 자료는 보존되어 있고, 여러 역사학자들의 노력으로 무술변법의 진상은 천하에 밝혀지게 되었다. 사정은 상당히 복잡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흑백이 분명하지 않다. 광서제가 외신을 기용하고, 합방을 논의한 행위가 잘못된 것인지 아닌지는 더 살펴봐야 할 것이다. 강유위가 유언비어를 듣고, 서태후를 암살하려한 행위가 정당한지 아닌지도 더 검토해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