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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청 후기)128

청나라말기 두 건의 "일어성참(一語成讖)" 글: 유계흥(劉繼興) 궤이한 역사는 항상 사람을 웃지도 울지도 못하게하는 점이 있다. 청나라말기에 발생한 2건의 '일어성참'의 이야기는 생각할수록 신기하다. 첫째 이야기는 서태후와 관련되고, 둘째 이야기는 부의와 관련있다. 서태후는 청나라말기 동치, 광서 두 황제의 재위기간동안.. 2013. 5. 18.
중국근대사상의 번역문제 글: 풍학영(馮學營) 초기 중국의 외국과의 교류를 보면 번역인재가 큰 문제였다. 예를 들어, 중국과 러시아의 <네르친스크조약>은 3개의 언어본으로 체결되었다: 만주어, 러시아어, 그리고 라틴어. 그리고 "라틴어가 우선한다." 대청국과 제정러시아가 조약을 체결하면서 모두 제3국언.. 2013. 4. 13.
청나라말기의 외교관련 에피소드 글: 노위병(路衛兵) 1. 단방(端方)의 기괴한 강연 광서32년(1906년) 칠월, 청나라조정은 예비입헌(預備立憲)의 조서를 내린다. 그리고 오대신(五大臣)을 외국에 파견하여 정치를 살펴보도록 했다. 단방, 대홍자(戴鴻慈)는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간다. 캘리포니아주의 캘리포니아대학에서는 .. 2012. 12. 22.
청나라말기의 백성들이 그다지 애국적이지 않은 이유는? 글: 양발불(梁發芾) 청나라말기(晩淸)의 소위 치욕은 오늘날의 애국인사들이 통탄해마지 않는 일이다. 사실상, 당시 청나라말기에 살아가던 백성들은 우리가 오늘날 생각하는 것처럼 굴욕적으로 여기지 않았다. 사실상 청나라말기는 중국역사상 가장 매력있는 시기중 하나이다. 청나.. 2012. 9. 21.
1910년 중국: 한 미국학자의 관찰 글: 김만루(金滿樓) 1910년, E. A. Ross라는 이름을 가진 미국의 사회학자가 중국으로 왔다. 그는 화남(華南)에서 화북(華北)까지 그리고 다시 서남(西南)까지 한바퀴를 돈 후에 "China in E. A. Ross's Eyes"라는 관찰집을 펴냈다. 당시 중국의 사회에 대한 상세하고 깊이있는 기록이다. 6개월간의 여.. 2012. 9. 21.
풍도해전(豊島海戰): 청일전쟁의 분수령 글: 하중원(何中原) 역사상 당나라의 백강구해전(白江口海戰), 쿠빌라이의 2차에 걸친 일본정벌 그리고 명나라때 7년에 걸친 항일원조(抗日援朝, 임진왜란, 정유재란)전쟁의 3번에 걸친 전쟁을 보면, 중일간에 누가 제해권(制海權)을 장악하느냐에 따라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였다. 우세.. 2012. 8. 15.
매국(賣國)과 보황(保皇) 글: 항려(伉儷) 양계초(梁啓超, 량치차오)는 미국 보스톤의 모습을 보고는 중국의 "오구통상(五口通商)"은 불행이었다고 탄식했다. 통상때문이 아니라, 통상에 부가된 매국조항때문이었다. 정상적인 국가무역이라면 '오구통상'은 당연한 것이고 매국이라 할 수가 없다. 패전국인 청나라는.. 2012. 3. 3.
누가 무술변법(戊戌變法) 실패의 원흉인가? 글: 장굉걸(張宏杰) 백년세월의 얇은 장막을 통해 무술변법의 전후를 살펴보면, 우리는 분명히 발견할 수 있다. 중국현대화전환이라는 이 중요한 발걸음은 실패로 끝날 운명은 아니었다는 것을. "변법"은 그 당시 '대세'였고, '여러 사람들이 바라는 바'였다. '변법'을 시작할 때, 형.. 2012. 1. 31.
청일전쟁의 패배는 당쟁때문이다 글: 정만군(程萬軍) 붕당지쟁(朋黨之爭)은 중국역사이래 계속 얘기되던 이슈이다. 동시에 세계역사상으로도 자주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청나라말기에 중국과 일본은 마찬가지로 붕당지쟁이 있었지만, 전혀 다른 결과를 나타냈다. 이것은 중국과 일본 양국이 하나는 흥성하고 하나는.. 2011. 7. 19.
청나라말기의 "입헌"과 "혁명" 글: 뇌이(雷頤) 청나라말기에 '입헌(立憲)'과 '혁명(革命)'의 시합에서 전자는 후자에 패배한다. 이는 아쉬운 일이다. 왜냐하면 그 후에 이어진 것이 재화가 끊이지 않는 사회의 대혼란이었기 때문이다. 소건(邵建)의 <혁명이 입헌을 억제하다>와 <입헌파의 민주노선도>는 글을 읽는 사람으로 하.. 2011. 6.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