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유비220

유비는 왜 관우에게 작위를 주지 않았을까? 글: 생활문적(生活文摘) 고대의 제왕들은 인심을 얻고, 심복의 충성심을 얻어내고, 위엄을 보이고, 은총을 보여주기 위하여 왕왕 가관(加官), 진작(晋爵), 봉후(封侯)등등을 유효한 수단으로 자주 쓴다. <삼국지.촉지>를 뒤적여 보면 알 수 있다. 유비의 서촉에서도 적지 않은 사람들을 .. 2015. 2. 10.
무후사(武侯祠)는 왜 성도(成都)가 아닌 면현(勉縣)에 두었을까? 글: 호각조(胡覺照) 여기에서 먼저 설명할 일은 현재 성도의 무후사는 원래 소열묘(昭烈廟), 즉 유비에 제사지내는 묘였다. 단지 나중에 무후사로 바꾸었을 뿐이다. 서촉청권이 공식적으로 결정한 무후사는 바로 한중(漢中)이 면현(勉縣) 무후묘(武侯墓) 원소재지에 있었고, 그후에 묘와 .. 2015. 2. 10.
3건의 사례로 본 제갈량의 "법치" 글: 호각조(胡覺照) 제갈량의 치국에 대하여 자고이래로 평가가 아주 높다. 진수는 <삼국지.제갈량전>에서 이렇게 썼다: "개성심(開城心), 포공도(布公道), 충성을 다하고 이로운 일을 한 자는 원수라도 반드시 상을 내렸고; 법을 어기도 태만히 한 자는 친하더라도 반드시 벌을 주었다.. 2015. 2. 10.
손권이 유비에게 "차형주(借荊州)"해준 것은 부득이한 조치였다. 글: 양민복(楊民僕) 역사상 유비는 '차형주'하였고, 한번 빌린 후에 돌려주지 않은 철두철미한 '무뢰한'이라는 견해가 있다. 손권은 부인도 주고 병사도 잃었으며, 호의를 베풀었지만 보답은 받지 못하였다고 하여 사람의 동정을 받는다. 다만 문제는 손권과 같이 총명하기 그지없는 사람.. 2015. 2. 10.
삼국시대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10대 영웅 글: 복녕객(福寧客) "곤곤장강동서수(滾滾長江東逝水), 랑화도진영웅(浪花淘盡英雄)" 그렇다면, 삼국의 국세에 영향을 가장 크게 준 10대인물은 누구일까? 가헌(稼軒, 신기질)은 "생자당여손중모(生子當如孫仲謀)......천하영웅적수(天下英雄敵手) - 조류(曹劉)"라는 말을 했다. 이 세 사람이.. 2015. 1. 21.
용봉정상(龍鳳呈祥) 글: 중천비홍(中天飛鴻) 전해지는 바로는 자희릉(慈禧陵)의 월대망주(月臺望柱)에 한쌍한쌍의 '봉인룡(鳳引龍)'의 도안을 조각했다. 전체 조란(雕欄)에 모두 240마리의 봉(鳳)과 308마리의 용(龍)을 조각했다. 이같은 우의를 지닌 조각은 세상에 보기 드물고 감히 일절(一絶)이라 할 만하다. .. 2015. 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