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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220

유비(刘备)의 부인은 10명이 넘었을 것이다. 글: 역사대작회 ​ 유비에게는 감부인(甘夫人), 미부인(糜夫人), 손부인(孙夫人)과 오황후(吴皇后) 네명의 부인이 있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료의 기재를 보면, 유비의 부인은 이 네명만이 아니다. 칭제이후에 몇명의 비빈을 들였는지에 대하여는 정사에서 아무런 글도 남기지 않아 통계를 내기 어렵지만, 여기에서는 유비가 칭제이전에 몇명의 부인을 거느렸는지를 알아보자. 네 명은 훨씬 넘고,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열명은 넘을 것같다. 아래에서 차례로 살펴보겠다. ​ : "선주(先主, 유비를 가리킴)의 감황후. 패(沛)의 사람이다. 선주가 예주(豫州)에 있을 때, 소패(小沛)에 살았는데, 그때 첩으로 거두었다. 선주는 적실(嫡室)이 여러번 죽어서, 그녀가 항상 집안일을 관장했다(常摄内事)" ​ : "여포.. 2024. 4. 12.
중국몽(中国梦)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글: 여천 ​ 중국정권의 설계는 모두 천년대계이다. 비록 황제, 태감의 치국으로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그들은 항상 헛점을 메우려고 노력한다. 2천년동안, 관방과 민간은 한 가지에 대하여 컨센서스를 얻어냈다: ​ 명군을 현신이 보좌하는 것이 이 사회의 가장 좋은 정치모델이다: 신하는 대지대충하고 국궁진췌하며, 황제는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하고, 현명한 선비를 예로 대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세상은 태평무사하게 된다. ​ 바로 이천년의 중국몽이다! ​ 삼고초려는 바로 명군현신, 중국신화의 대표적인 이야기이다. ​ "선제께서는 신이 비천하다고 여기지 않고, 자신의 몸을 낮추어, 세번이나 신을 초가집으로 찾아오셨다!" 이 얼마나 긍정적인 에너지인가. ​ 성도의 무후사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군신이 합사된 사묘이다... 2023. 12. 26.
적벽대전: 조조가 패배한 원인은 화공이 아니다? 글: 역사학당군(歷史學堂君) 역사상 적벽대전은 한말 삼분천하의 정치국면을 결정한 중대사건이다. 의 가공을 거쳐, 특히 설전군유(舌戰群儒), 초선차전(草船借箭), 차동풍(借東風), 장간도서(蔣幹盜書), 주유타황개(周遊打黃蓋), 화소적벽(火燒赤壁)등의 이야기로손류연합군이 적벽에서 조조의 군대를 대파한 민간기억을 채워놓았다. 그렇다면, 위, 촉, 오 삼국정립 국면을 확립시킨 적벽대전에서 결정적인 승패의 원인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그중 결정적인 작용을 한 요소는 무엇이었을까? 바꾸어 말하자면, 정말 손류연합군이 동풍을 빌어, 조조의 전선을 태워버렸기 때문에 조조의 군대가 패배하게 된 것일까?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패배한 원인에 대하여, 최근 들어, 여러 연구자들이 삼국연의의 사고범위를 넘어, 역사로 되돌아가 더.. 2023. 8. 14.
"관도대전(官渡大戰)"에 대한 의문점 글: 이경서(李慶西) 에는 관도대전을 쓰면서, 관우(關羽)가 조조(曹操)의 백마(白馬)에서의 포위당한 상황을 풀어준 것부터 시작한다. 그 일은 제25회 후반부에 쓰여 있다. 원소(袁紹)는 대장 안량(顔良)을 보내 여양(黎陽)에서 황하를 건너게 했고, 안량은 황하남안의 백마에서 유연(劉延)을 증원하러 가던 조조의 군대와 부닥친다. 안량은 송헌(宋憲), 위속(魏續) 두 장수를 연이어 참하고, 무예가 뛰어난 서황(徐晃)마저 물리친다. 그리하여 조조군영의 여러 장수들은 전율하게 된다. 이때 정욱(程昱)이 나서서 추천하여 관우가 출전한다. 책에서는 이렇게 적고 있다: "조조가 산 아래 안량이 배치한 진세를 가리키며, 기치가 선명하고 칼과 창이 빽빽하게 배치되어 있으며, 엄정하고 위엄이 있어, 관우에게 말하기를, .. 2023. 6. 18.
조자룡의 장판파(長板坡)전투 전설들..... 글: 기사석금(記史惜今) 수백년동안, 삼국이야기는 역사에서 소설, 다시 민간이야기를 거치면서 변화해왔다. 당양(當陽)은 일찌기 삼국시대의 고전장(古戰場)으로서, 자연히 여러 민간이야기로 전해내려오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들은 정사(正史), 연의(演義, 소설)의 내용에 국한되지 않고, 현지 민중들의 상상력까지 보태지면서, 현지의 산 하나 물 하나, 풀 하나 나무 하나, 민속풍정까지 모두 신화같은 전설적인 색채를 띄게 되었으며, 그것들은 모두 그 파란만장한 역사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처럼 고토(故土)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여러 이야기는 모두 해당 지방의 특색을 띄게 되었고, 많은 에피소드와 인물이미지는 적지 않게 바뀌게 되었다. 정사기록인 의 이와 관련된 부분은 짧은 몇 마디에 불과하다: "그리고 선.. 2023. 4. 5.
유비치촉계시록(劉備治蜀啓示錄) 글: 현야(玄野) 유비(劉備)의 촉한(蜀漢)은 삼국난세에서 마지막으로 정족(鼎足)을 이룬 일족(一足)이다. 북으로 한중(漢中)을 취하고, 여러번 북벌(北伐)하였으며, 중국역대정통사회에서는 도통(道統)으로 인정받고 있으니 실로 기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유비가 한나라 황실종친이라는 것이 핵심이라고 여기겠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 그의 신분은 비교적 덜 중요한 원인이고, 진정한 원인은 마땅히 유비가 인재를 아끼고, 인재를 보살피고, 인재를 잘 기용했다는데 있다고 해야할 것이다. 당연히 조조(曹操)와 손권(孫權)도 마찬가지이다. 그럴 능력이 없었던 원술(袁術), 여포(呂布)같은 자들은 금방 사라졌다. 그리고 그 방면의 능력이 약간 부족했던 원소(袁紹)도 결국 신속히 패망하는 최후를 피할.. 2023. 3.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