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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제갈량)

제갈량의 융중대(隆中對)

by 중은우시 2007. 3. 11.

글: 오가상(吳稼祥)

 

여러해 전에, 필자는 책 한권을 쓴 적이 있다. 그 책의 첫머리에, 필자는 헤밍웨이의 "빙산창작이론"을 언급하고, 이로써 어떤 논저에 대한 해석을 시도한 적이 있다.

 

헤밍웨이은 자기의 생활경험에 근거하어 글을 쓸 때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항상 빙산의 원리로 글을 쓰려고 했다" "빙산은 바다에서 이동하는데 아주 장엄하고 대단하다. 왜냐하면 그는 겨우 1/8만 해수면위로 노출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고의로 만든 "빙산"이다. 많은 다른 "빙산"은 "자연적"인 것이다. 제갈량의 "융중대"는 바로 이런 자연스런 빙산이다. 제갈량이 유비에게 말하지 않은 것은 이미 말한 것보다 훨씬 많았다.

 

만일 이 "빙산"의 윗부분과 아랫부분에 대하여 전체적인 고찰과 분석을 한다면, 우리는 아마도 하나의 모략가감의 일반모델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왜냐하면 <<삼국연의>>의 융중대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융중대"의 version은 하나가 아니다. <<삼국지>>, <<자치통감>>과 <<삼국연의>>등 몇 개의 판본을 비교해보면, 융중대에 대한 기재가 조금씩은 다르다. 가장 통속적인 것으로 보면, <<삼국연의>>를 들 수 있다.

 

유비의 계속되는 요청하에 제갈량은 그의 문제에 회답할 것을 동의한다. 그래서 그에게 어떤 지향(志向)을 가지고 있는지 묻게 된다.

 

유비 : "한나라황실이 목숨이 경각에 달하고, 간신이 황명을 좌지우지하고 있는데, 비(유지)는 힘이 모자라, 대의를 천하에 펼치고 싶지만, 지식과 술책이 천박하고 짧으니, 지금까지 이룬 것이 하나도 없다. 선생께서 이 우매함을 깨우쳐주시고, 그 액운에서 구해주시면 실로 더할 수 없는 행운이겠습니다"

 

제갈량 : "동탁이 역적을 꾀한 이래로, 천하의 호걸이 들고 있어났습니다. 조조의 세력은 원소에 미치지 못했으나, 결국 원소를 꺽을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천시(天時)뿐아니라 인모(人謀)가 있었기때문입니다.  오늘날 조조가 이미 백만무리를 보유하고 있고, 천자를 끼고 제후를 호령하고 있으니, 그와는 싸울 수 없습니다. 손권은 강동에 웅거하며, 이미 삼대를 내려왔고, 나라가 험하고 백성들이 따르니 그와도 도울뿐 뺏기 힘듭니다. 형주는 북으로는 한수, 개수를 마주하고 이익이 남해에 미치고, 동으로는 오나라와 만나고, 서로는 파.촉과 통하니, 이 곳은 용무(用武)의 땅입니다. 그 주인이 지킬 수 없는 땅입니다. 하늘이 장군을 내리셨는데, 장군께서는 뜻이 있으신지요?" "익주는 험한 요새이고 옥토가 천리에 펼쳐 있으니 천부지국이어서 고조(유방)께서 황제의 대업을 이루었습니다. 지금 유장은 어둡고 약하나, 백성은 잘살고 나라는 부강합니다. 그러나 제대로 지키지 못하여, 지혜와 능력이 있는 자들은 뛰어난 군주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장군은 황실의 후손이며, 신의로 사해에 유명하며, 영웅을 거느리고 있으며, 현명한 자를 목마른자처럼 갈구하고 있습니다. 만일 형주, 익주를 차지한다면, 그 험준함을 가지고 서로는 융(戎)과 화합하고, 남으로는 이(彛), 월(越)을 다독거리고, 밖으로는 손권과 결맹하고, 안으로 정사를 돌봅니다; 그리고 천하에 변화가 있을 때 장군에게 명하여 형주의 병으로 완, 락을 차지하게 하고, 장군은 스스로 익주의 무리를 몰아 진천(秦川)으로 나가면 백성들은 어찌 장군을 맞이하지 않겠나이까. 이러하면 대업은 이룰 수 있고, 한황실도 다시 빛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량(亮)은 장군을 위하여 계책을 도모(謀)하는 자이니 장군께서만 도모할 수 있습니다."

 

말을 마치자, 동자에게 명하여 그림 한 축을 가져오게 하여, 중당에 걸어놓고 유비에게 가리키며 말하기를 "이곳이 서천 54주입니다. 장군이 패업을 이루려면, 북의 조조로 하여금 천시(天時)를 갖게 하고, 남의 손권으로 하여금 지리(地利)를 갖게 하며, 장군께서는 인화(人和)를 장악하십시오. 먼저 형주를 쳐서 집으로 만들고, 나중에 서천을 취하여 기업을 다지면, 정족지세를 만들 수 있으니, 나중에 중원을 도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 날 떠나기 전에 제갈량은 제갈균(諸葛均)에게 "나는 유황숙의 삼고의 은혜를 입어, 나가지 않을 수가 없구나. 너는 여기서 농사를 지어라, 절대 전답을 황폐하게 하지 말라. 내가 공을 이루는 날 여기로 돌아와서 은거하리라"

 

여기서 몇 가지 배경적인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제갈량은 경천위지의 재주, 치국안민의 술법, 극적제승의 법을 가지고 있는데 왜 깊이 숨어있으면서 드러내지 않은 것일까? 치세와 난세가 교체하는 시기에 군웅이 할거하는 시기에 공을 세우고 기업을 이루고자 하지 않고 진짜 임천지하(林泉之下)에서 늙어죽으려고 생각했단 말인가?

 

둘째, 제갈량은 왜 유비가 세번이나 찾아온 후에야 그와 만나주었을 까? 그리고 늦가을부터 초봄까지 수개월을 끌었을까?

 

셋째, 제갈량은 왜 조조에게 가지 않고, 손권에게 가지 않았을까(이 곳에는 그의 형인 제갈근이 있는데도 그를 끌어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유비에게 갔을까?

 

넷째, 떠나기 전에 왜 동생에게 이런 말을 했을까 "전답을 잘 돌봐라, 내가 공을 이루면 꼭돌아와서 이곳에 은거하겠다"

 

이 네가지 문제에 대답하기 위하여는 중국고대지식분자의 자모(自謀)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모략(謀略)은 그 모략을 만든 자와 그 모략을 쓰는 자가 다르냐의 여부에 따라 자모(自謀)와 타모(他謀)로 나누어볼 수 있다. 자기가 그 자신을 위하여 모략을 만드는 것은 "자모"이고, 자기가 낸 모략을 다른 사람에게 사용하게 하는 것이 "타모"이다. "타모"는 중국고대의 하나의 독립한 계층 즉 모사(謀士)라는 직업계층을 만들어냈다. 이들은 타모를 직업으로 삼아 생을 영위한 직업모사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융중대는 분명히 "타모"이다. 위의 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것은 제갈량이 장군을 위하여 계책을 도모(謀)하는 자이니 장군께서만 도모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만일 융중대를 그저 "타모"이기만 하고, 제갈량의 "자모"는 아니라고 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적지 않은 모사들은 "타모"에 능하지만, "자모"에는 능하지 못했다. 예를 들면, 조조의 유명한 모사인 순욱과 같은 경우가 그렇다. 조조를 위하여 계책을 잘 내놓았고, 아주 뛰어났지만, 자기자신의 좋은 결과를 위하여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제갈량이 하산을 늦추었던 이유, 조조나 손권에 가지 아니한 이유는 바로 그는 단순한 직업모사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여상(강태공)이나 관중과 같이 나라의 진정한 재상이 되고자 했다.

 

이것은 그의 "융중대"가 도달해야할 첫번째 목표였다. 즉, 자모의 목표였다.

 

두번째 목표는 바로 '촉국'을 품에 안고 천하를 쟁패하는 방략이었다. 삼국정립에서 한실부흥의 천하통일을 이루는 것이었다.

 

첫번째 목표는 쉽게 달성하였지만, 두번째 목표는 그의 일생을 투입하고서도 절반밖에 이루지 못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