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흠종 24

북송(北宋)이 개봉(开封)을 도읍으로 정한 것이 실수였을까?

글: 고과노인(孤寡老人)​북송의 국도는 개봉이다. 이곳은 북방으로는 강적이 버티고 있다. 황하(黄河)라는 천험(天险) 외에는 더 이상 수도를 방어하는데 험준한 지형이나 지물이 없다. 나중에 금나라 군대가 밀고 들어오자 추풍낙엽처럼 무너져서 북송이 멸망하게 된다. ​그래서, 북송이 개봉을 도읍으로 삼고, 다른 곳으로 천도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지금까지 계속 잘못이라고 인식되어왔다.​송태조(宋太祖) 조광윤(赵匡胤)은 한번 장안(长安)이나 낙양(洛阳)으로 천도할 것을 제의한 바 있었다. 그러나 송태종(宋太宗) 조광의(赵光义)가 반대했고, 그후 몇달이 지나지 않아 조광조는 사망한다.​기실, 천도가 곤란하다는 정치적 요소를 제외하고, 북송이 천도하지 않은 것은 그 나름대로의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개봉은 연운십..

송휘종(宋徽宗)은 금나라에 잡혀간 후 어디에서 살았을까?

글: 역사대작전(歷史大作戰) 중국역사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 "정강지변(靖康之變)"을 알고 있다. 금나라가 송휘종, 송흠종(宋欽宗)을 끌고가서 가두었던 사건이다. 그렇다면, 송휘종은 어디로 끌려가서 살았던 것일까? 송휘종이 만일 황제에 오르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아주 우수한 예술가가 되었을 것이다. 금기서화에 모두 능했다. 특히 서예가 뛰어나 수금체(瘦金體)를 남겼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 그러나, 그는 황제로서는 좋은 황제가 아니었다. 그의 일생은 둘로 나눌 수 있다. 전반기에는 아주 성실했고, 수완도 있었다. 예를 들어, 양산박의 농민반란을 처리하면서 정치적 지혜를 발휘한다. 그는 초안(招安) 정책을 써서, 송강등이 조정을 위해 일하도록 함으로써 농민반란군을 와해시킨다. 다만, 송휘종의 ..

북송(北宋)의 멸망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외교적 실수를 범했는가?

글: 도진생(陶晋生) 북송의 멸망에 관하여 역대이래로 반성하는 글이 아주 많았다. 본문에서는 주로 북송이 요,금관계를 처리할 때의 여러가지 실수를 정리하는데 집중할 것이다. 1. 연금멸요(聯金滅遼)의 성공은 아주 요행이었다. 송휘종 정화원년(1111년) 구월, 정윤중(鄭允中), 환관 동관(童貫)이 요나라에 사신으로 간다. 연(燕)의 땅에 사는 마식(馬植)이라는 사람이 동관을 만나, 요나라는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여진과 연합하면, 연의 땅을 취할 수 있다고 말한다. 동관은 그의 의견을 아주 높이 평가했다. 정화5년(1115년) 마식은 요나라에서 송나라로 넘어오고 이름을 이양사(李良嗣)로 바꾸고, '연금멸요'의 계책을 올린다. 송휘종은 그를 접견한 후 이양사에게 조(趙)씨성을 하사한다. 당시의 ..

조옥반(趙玉盤): 송휘종 장녀의 비참한 일생

글: 왕덕항(王德恒) 송휘종의 장녀로서 그녀도 화를 피할 수 없었다. 그녀의 일생은 너무나 비참했다. 북송원부3년(1100) 정월, 송철종 조후(趙煦)가 붕어한다. 후사를 남기지 않았다. 향태후(向太后)의 극력지지로 당시의 단왕(端王), 사공(司空), 소덕창덕군절도사(昭德彰德軍節度使)이었던 송휘종이 즉위한다. 송휘종이 등극한 후, 향태후가 군국대권을 장악한다. 그리고 자신의 곁에 있던 궁녀인 정씨(鄭氏)를 송휘종에게 보낸다. 정씨는 송휘종이 즉위하기 전에도 자주 향태후의 명을 받아 그를 모신 바 있다. 지금은 정식으로 송휘종의 완의(婉儀)가 되었다. 그 해애 딸 조옥반을 낳는다. 그녀는 송휘종의 장녀이다. 북송 건중정국원년(1101) 정월, 향태후가 사망한다. 송휘종이 친정을 시작한다. 조옥반은 덕경공주..

남송은 왜 남경(南京)이 아닌 항주(杭州)를 수도로 정했을까?

글: 흥체경(興替鏡) 남경과 항주에 관하여 누가 동남지구의 제1도시인지 문제는 여러차례의 논쟁이 있어왔다. 남경과 항주는 각각의 장점이 있다. 다만 총체적으로 보자면 남경의 역사감이 항주보다는 확실히 높다. 그래서 역대의 남방정권은 기본적으로 모두 남경을 수도로 삼아서 북방..

송고종 조구(趙構)가 즉위할 때 다른 종실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글: 만풍모우(晩風暮雨) 정강2년(1127년), 송휘종,송흠종 두 황제가 금나라에 포로로 끌려가며, 북송이 멸망한다. 역사에서 "정강지변"이라고 부르는 사건이다. 송휘종의 적자중에서 유일하게 북으로 끌려가지 않은 강왕(康王) 조구가 황위에 오르는 것은 민심에 맞고, 명정언순(名正言順)..

대초황제(大楚皇帝) 장방창(張邦昌): 실제는 매국노가 아니라 소심한 인물일 뿐...

글: 취역사(趣歷史) 고대통속소설 <설악전전(說岳全傳)> 이나 평서 <악비전(岳飛傳)>을 들은 사람이면 분명히 장방창이라는 인물에 대하여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설악전전>에 근거하여 출판된 <장방창매국(張邦昌賣國)>이라는 연환화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설악전전..

송고종(宋高宗)과 악비(岳飛): 송나라 두 효자의 엇갈린 운명

글: 천지사화(天地史話) 송나라(960-1279)는 300여년간 존속했다. 국내의 과학기술문화가 번성했지만, 대외적으로 강적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북방에는 요, 금, 몽골과 같은 강력한 적수들이 존재했고, 겉으로 보기에 약소해 보이는 서하(西夏)도 서역으로 이르는 길을 막고 있었다. 백년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