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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송휘종)

송휘종(宋徽宗)은 금나라에 잡혀간 후 어디에서 살았을까?

by 중은우시 2022. 5. 12.

글: 역사대작전(歷史大作戰)

 

중국역사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 "정강지변(靖康之變)"을 알고 있다. 금나라가 송휘종, 송흠종(宋欽宗)을 끌고가서 가두었던 사건이다. 그렇다면, 송휘종은 어디로 끌려가서 살았던 것일까?

 

송휘종이 만일 황제에 오르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아주 우수한 예술가가 되었을 것이다. 금기서화에 모두 능했다. 특히 서예가 뛰어나 수금체(瘦金體)를 남겼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 그러나, 그는 황제로서는 좋은 황제가 아니었다.

수금체

그의 일생은 둘로 나눌 수 있다. 전반기에는 아주 성실했고, 수완도 있었다. 예를 들어, 양산박의 농민반란을 처리하면서 정치적 지혜를 발휘한다. 그는 초안(招安) 정책을 써서, 송강등이 조정을 위해 일하도록 함으로써 농민반란군을 와해시킨다. 다만, 송휘종의 정치생애의 후반기는 결단력이 결핍되어 있다. 주로 연금항료(聯金抗遼) 방면에서 그러하다.

 

우리는 모두 기하학을 배웠고, 삼각형이 가장 안정적이라고 알고 있다. 다만, 요나라의 쇠락, 금나라의 굴기에 송휘종은 한가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다. 금나라의 제안을 받아들여, 연맹을 맺고, 안팎에서 요나라를 협공한다. 결국 송과 금은 확실히 요나라를 소멸시킨다. 그러나 정치균형은 무너졌고, 결국은 송금대치를 초래하게 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송나라가 금나라와 연합하여 요나라를 치지 않았다면, 아마도 북송은 그렇게 일찌감치 멸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북송이 금나라와 연맹하여 요나라를 멸망시킨 후, 처음 몇년간은 쌍방간의 관계가 괜찮은 편이었다. 그러나, 금나라는 상승기로 계속 송나라의 비옥한 토지를 노리고 있었으며 결국 평화합의를 깨고 북송을 공격한다. 쌍방은 몇년간 싸우다가 결국 1126년, 금나라의 완안종망(完顔宗望), 완안종한(完顔宗翰)등이 송나라의 도성을 함락시키고, 송휘종, 송흠종 두 황제를 포로로 잡고, 황후, 황자, 친왕, 황손, 부마, 공주, 비빈, 종실, 교방악공, 기예공장, 대신, 백성등 10여만명을 북으로 끌고 간다.

 

동북에 사는 사람은 동북이 추운 줄 모른다. 그러나 외지인이 동북에 와서 살게 되면 분명 이곳의 생활조건이 힘들다고 느낄 것이다. 황궁안에서 생활했던 송휘종, 송흠종은 이미 편안한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고, 이렇게 추운 날씨는 익숙하지 않았다. 그외에 그들을 수행한 사람들도 도중에 얼어죽고, 굶어죽고, 병들어 죽었다. 어떤 사람은 금나라 여진 귀족의 처첩이 되었다. 그렇다면 금나라사람들은 송휘종, 송흠종을 어디에서 살게 하였을까?

 

우리는 금나라가 송휘종, 송흠종을 끌고간 노선도를 보기로 하자.

 

금나라는 북송의 수도 개봉을 함락시킨 후, 두 황제를 북으로 압송한다.

 

제1차: 연경(燕京). 연경은 지금의 북경성이다. 개봉에서 금나라의 수도 하르빈의 아성구(阿城區)까지 가려면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곳이다. 그래서 제1차로 갇혀있게 된 곳은 북경이었다.

 

제2차: 중경(中京). 금나라의 중경은 지금의 내몽골 영성현(寧城縣)이다. 그때는 교통이 오늘날과 달랐다. 북경, 심양, 장춘을 거쳐 하르빈으로 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때는 중경이 번화한 도시였다. 그래서 연경에서 중경을 거치는 것이 관로였다. 그래서 제2차로 압송되어 간 곳은 중경이었다.

 

제3차: 상경(上京). 금나라의 상경은 지금의 흑룡강성 하르빈시 아성구이다. 이곳에서 두 황제는 갖은 능욕을 당한다. 상복을 입고 금태조 완안아골타의 묘를 배알하기도 한다. 그 뜻은 금나라황제가 금태조에게 포로를 바치는 것이다. 그후 송휘종은 금나라황제에 의해 혼덕공(昏德公)이라는 모멸적인 봉호를 받는다.

 

제4차: 한주(韓州). 금나라의 한주는 지금의 요녕성 창도현(昌圖縣)이다. 송휘종은 혼덕공에 봉해진 후, 금나라황제는 이들 두 황제를 자신의 곁에 두고 싶지 않아서, 요녕성 창도현으로 보내어 가두어둔다.

 

제5차: 오국성(五國城). 마지막으로 금나라황제는 그래도 이들을 자신의 곁에 두는 것이 안전하겠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두 황제를 오국성으로 데려와 가둔다. 오국성은 지금의 흑룡강성 의란현(依蘭縣)이다. 

 

갖은 모욕을 당한 후, 두 황제는 북방에서 모두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