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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356

왕동흥(汪東興) : 모택동 말년의 4 총신(寵臣) 왕동흥은 모택동의 곁에서 30년간 경위(警衛)로 지낸 유일한 인물이다. 기등규(紀登奎)는 모택동의 옛친구의 신분으로 외부에 알려져 있다. 오덕(吳德)은 동필무가 죽은 후에 전국인민대표대회의 실질적인 주재자가 되었고, 주덕이 죽은 후에는 중공전국인민대표대회당조 서기가 되어 인대를 3년간 장.. 2006. 12. 18.
모안영(毛岸英)의 묘가 북한에 남아있게된 경위 [모택동과 모안영] 1954년 12월 24일밤. 중남해, 영복당은 불이 켜져 있었다. 건륭황제가 쓴 '영복당(永福堂)'이라는 편액이 있는 북경의 사합원은 5간이 북쪽으로 일자로 배열되어 있는데, 가운데 1간은 식당이고, 동측의 두간은 팽덕회의 거주지였고, 서측의 2간은 사무실이었다. 동상방(東廂房)은 군사.. 2006. 11. 18.
"장정(長征)"이라는 용어는 누가 처음 사용했는가? 작자: 고칙서(顧則徐) 2006년 10월 19일 작 ==================== 장정 70주년을 맞이하여 미디어에서는 이를 기념하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그러나, "장정"이라는 단어를 처음 쓴 사람이 모택동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오류이다. 예를 들어, 2006년 10월 18일 전제된 "홍군간부의 부패토로, 최초의 장정일기는 공개.. 2006. 10. 21.
장선운(蔣先雲) : 장개석과 모택동이 가장 총애했던 제자 장선운을 얘기하자면, 어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인중용봉으로 뛰어난 경우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황포삼걸"의 첫째로 꼽히는 장선운이 바로 그런 인물이다. 당시의 동창들의 회고에 의하면, 장선운은 항성과 같이 그가 어느 곳에 있던 그의 빛은 줄어들지 않았으며, 선천적인 지도자감이.. 2006. 10. 21.
중국공산당 제9차대회에서의 주은래의 발언 1969년 4월 14일 동지여러분: 나는 우리의 위대한 영수 모주석이 개막식에서 한 아주 중요한 말씀을 완전히 옹호합니다. 나는 임표 부주석이 당중앙을 대표하여 한 정치보고를 완전히 옹호합니다. 나는 모주석의 무산계급 건당노선의 지도하의 신 당장(黨章, 공산당정관)의 탄생을 열렬히 축하합니다. .. 2006. 9. 19.
모신우(毛新宇, 모택동의 손자)의 거짓말 작자: 주건국(朱健國), 2006년 9월 9일 심천 '早叫廬' ============================================== 어떤 사람은 올해가 "문혁발동40주년"과 "문혁종결30주년"이라고 한다. 그러나, 문혁은 아직도 중국에서는 금기이다. 그러나 어떤 매체들은 교묘하게 '문혁'과 관련된 사건들을 얘기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문혁'을 .. 2006. 9. 19.
솔직담백한 성격의 임표 모택동이 한국전쟁에 파병할 것인지를 논의하기 위하여 회의를 소집하였을 때, 반대하는 목소리가 컸다. 반대하는 주요한 인물은 임표였는데, 임표의 주장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이제 막 해방되었고, 중국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 수백평방킬로미터의 땅을 위하여 손을 내밀 필요는 없다. 둘째, 아직.. 2006. 9. 15.
전용기 스튜어디스의 눈에 비친 모택동 나는 곽계경(郭桂卿)이라고 한다. 전용기에서 20여년을 일했으며, 신중국 제1차 전용기서비스요원이었다. 말이 제1차이지, 사실은 두 사람이었다. 나를 빼고, 또 한명 왕숙방(王淑芳)이라는 동지가 있었고, 우리 두 사람은 "공중소저(스튜어디스)"의 선례를 만들었다. 그 때 전용기의 임무는 매우 많았다.. 2006. 7. 20.
양개혜는 모택동이 죽였는가? (1) 작자 : 유서림 ========================================= "나는 마누라가 죽었고, 너는 남편이 죽었다. 내 마누라와 네 남편이 하늘로 가볍게 떠서 올라가네. 술집 웨이터인 오강에게 묻는다. 뭐 맛있는거 있어? 그러자 오강은 계화주를 내어 놓는다" 이게, 어느 홀아비가 과부를 희롱하는 글인가? 아니다. 아니다. .. 2006. 6. 2.
모택동의 비서들 모택동의 몇몇 주요한 비서는 모두 그가 발견하거나 뽑은 사람들이다. 모택동의 비서를 뽑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학문"이 있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호교목(胡喬木)의 선발은 모택동이 호교목이 <<중국청년>>잡지에 발표한 54운동20주년기념글을 보고서 "교목은 인재다"라고 하며, 직접 이름.. 2006. 5.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