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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879

중국의 "남해주권(南海主權)"에 대한 국제법적 분석 글: 조굉위(趙宏偉) 2010년이래, 미국은 중국의 남해주권에 대하여 도발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외교와 군사적으로 미국의 도발에 굳건하게 대응하고 있다. 중국의 주류의견은 주로 고유영토라고 말하거나 역사영토라고 말하는 것에 그친다. 그러나, 근대이래, 영토, 해역주권은 관련국제법규에 근거하여 주장해야 한다. 1. 청-프랑스의 청프전쟁이후, 1887년 6월 26일 중국과 프랑스령인도차이나는 남해해상의 국경선에 관하여 를 체결하였다. 이에 따르면, "광동계무는 양국 감계대신(勘界, 국경조사대신)이 국경선이외 망가(芒街)이동 및 동북일대의 모든 미정인 곳은 모두 중국관할로 국경선을 결정했다. 해중각도(海中各島)에 대하여는 양국 감계대신이 홍선을 그어 남으로 이어서 긋는다. 이 선은 차고사(茶古社) 동쪽 산을 .. 2023. 5. 3.
"탈중국화"가 가장 철저한 4개 국가는...? 글: 지호(知乎) 근대는 서방의 침입으로, 중화문화가 쇠퇴의 길을 걸었다. 사방의 주변국가들도 점점 탈중국화를 시작하게 된다. 그렇다면, "탈중국화"가 비교적 엄중하게 진행되고 있는 나라들은 어디일까? 사실상 이들 국가에는 한국, 몽골, 베트남, 싱가포르가 포함된다. 이들 국거에서는 거의 중화문화와 관련된 요소를 볼 수 없게 되었고, 한 나라는 완전히 서구화되었다. 그들은 어떤 나라들일까? 1. 한국: 불교에서 기독교로 이 나라는 현재 중국과 여러가지를 다투고 있다. 예를 들어 무슨 명절, 문화, 유명인사등등. 그러나, 한국은 이전에 거의 중국을 그대로 따라했었다. 당시에는 연호조차도 숭정제의 연호를 그대로 썼으니, 한국의 한화(漢化)정도가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이전에 중국의 한자.. 2023. 5. 2.
미중관계의 기원과 영향 (2) 글: 모해건(茅海建) 3. 유미학동(留美學童)과 배화법안(排華法案) 1844년 미중간에 이 체결될 때, 중국의 인구는 이미 4억에 이르렀고, 해외상업활동과 이민이 일찌감치 시작되었다. 그러나 주로 동남아였다. 미국상선은 서해안에서 중국으로 오는데 항해시간이 50여일이 걸렸다. 두 나라국민은 서로를 잘 알지 못했다. 십년후인 1854년, 용굉(容閎)이 미국예일대학을 졸업하고 학사학위(B.A.)를 받는다. 용굉은 마카오와 홍콩에서 서양식교육을 받았고, 미국에서 7년간 공부했다. 최초로 미국대학을 졸업한 이 중국인이 귀국했을 때, 그의 미국에서 배운 지식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하여 내심 고독을 느낀다. 그는 여러가지 성공적이지 못한 직업을 전전한 후에, 청나라를 도와 미국에서 물품을 수입.. 2023. 5. 2.
미중관계의 기원과 영향 (1) 글: 모해건(茅海建) 1. 초기 미중민간관계 미중양국의 민간교류는 아주 멀리 거슬러 올라간다. 최초는 광주(廣州)의 무역이다. 1784년 8월, 미국상선 Empress China호가 중국의 광주에 도착한다. 그 항해노선은 뉴욕을 출발지와 도착지로 하며 15개월의 기간이 소요되었다. 1790년부터,미국상선은 미주의 서북해안에서 광주로 항해하여, 당시 미중무역에 근본적인 변화를 발생히킨다. 미국은 이때 처음의 13개주에서 태평양까지 서부영토를 개척했고, 이는 미중무역을 크게 촉진시키게 된다. 중국은 미국에서 화기삼(花旗蔘), 모피, 단향목(檀香木), 납(鉛), 면화(棉花)와 직물등의 물품을 수입했고, 미국은 중국으로 부터 차, 비단, 자기등의 물품을 수입했다. 19세기에 이르러, 미국상인들도 터키아편을 밀수.. 2023. 5. 1.
수단에서의 교민철수로 본 중국군대의 실력은...? 글: 심주(沈舟) 아프리카의 수단에서 4월 15일 내부군사충돌이 발생했고, 각국은 속속 교민을 철수시키고 있다. 4월 29일, 신화사는 보도를 통해, 중국군대는 중국공민의 수단철수임무를 마쳤다고 했다. 당매체는 다시 한번 찬가를 부르며 시진핑이 명령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각국군대가 교민철수행동에 참여한 것과 비교하면, 중국군대가 채택한 것은 가장 곡절많은 철수노선이었다. 이는 중국군대의 능력차이를 보여준다. 미국이나 서방국가에 필적할 수 없고, 심지어 일반적인 국가들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수의 중국공민은 가장 곡절많은 노선으로 철수했다. 수단은 중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철수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중국공군이 운송기를 출동시켜, 신속하게 수단의 수도 카르툼공항에 착륙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 2023. 4. 30.
중국해군의 약점 글: 정효농(程曉農) 비록 중국은 군사력에 모든 힘을 쏟아붓고, 매년 군사비를 늘여가고 있으며, 해군함대는 신속히 확장되고있지만, 중국해군의 수량과 톤수로 그 실력을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을까? 성숙한 해군을 보유한 대국에 있어서, 대형군함의 다과는 확실히 해상군사력을 형량하는 기본적인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형편없는 해군에 있어서는 전혀 그렇게 볼 수가 없다. 필자는 1월 23일 에서 중국해군주력전함의 삼무(三無, 무경험, 무자료, 무전문인력)를 지적한 바 있다. 오늘 추가로 중국해군순련의 형식화와 '쇼'화현상을 소개해보기로 한다. 1. 왜 미국은 중국이 타이완을 공격할 군사력이 부족하다고 여기는 것일까? 중국이 만일 현재 대만을 공격하려면, 해낼 능력이 있을까? 중국에서는 해군의 군함수량과.. 2023. 4. 29.
인도가 중국을 대체하여 "세계공장"이 될 것인가? 글: 산교룡(山蛟龍) 중국인은 인도를 아주 무시한다. 그리하여 인도인들에게 인종차별적인 별명으로 "아차(阿差)" 혹은 "아X(阿X)"라고 붙여주었다. 확실히 인도의 경제는 상당히 장기간동안 발달하지 못했다. 발달하지 못했을 뿐아니라 심지어 아주 낙후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부득이 인도인은 확실히 중국인들만큼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겠다(어느정도 부분을 가지고 전체를 판단하는 측면이 있어 객관적이지 않기는 하지만). 그러나, 인도인은 아주 총명하다. 총명함에 있어서 인도인은 중국인들에 전혀 못지 않다. 이건 증명도 필요없다. 인도인은 세계의 많은 대기업에서 CEO가 되었고, 영국에서 수상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증거이다. 이 점에 있어서, 중국의 대륙인들은 아주 뒤떨어진다. 현재 중국대륙인중 세.. 2023. 4. 20.
중국의 환도(環島)군사훈련에서 드러난 문제점은...? 글: 심주(沈舟) 2023년 8월 10일, 중국은 환도(環島)군사훈련이 종료되었다고 선언했다. 2022년 8월과 비교하면 두 가지 변화가 있었다. 첫째는 산둥호(山東號) 항공모함이 원거리항해훈련을 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미사일발사를 취소했다는 것이다. 중국의 이번에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정치적 영향이 너무나 나빠질 것을 우려하였을 수도 있고, 또한 산둥호항모와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 만일 중국의 다시 한번 대만동부의 미사일시험발사구역을 획정한다면, 아마도 이 구역에 위치하고 있던 산둥호 혹은 다른 중국의 전함을 실수로 맞출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중국의 로켓군은 곤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사일 발사하든 말든 중국해군은 어쨌든 곤란하다. 산둥호 항공모함이 중국의.. 2023. 4. 11.
대륙은 16분내에 대만을 점령할 수 있을까? 글: 마비명(馬悲鳴) 당신, 도대체 무슨 뜻이냐? 누가 16분내에 대만을 점령해야한다고 말했는가? 사람들은 단지 8시간내 혹은 2주내에 점령하는지를 얘기했지, 한번도 16분을 얘기한 적은 없지 않은가? 당신의 16분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이란 말인가? 어디서 왔느냐고? 옛날 유대인들이 독립건국을 선언한 후 겨우 16분만에 미국의 트루먼정부는 이스라엘을 승인했다. 그건 이스라엘이고, 대만이 아니지 않느냐? 어떻게 그게 비교가 되느냐? 어떻게 비교가 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우선 이 이야기부터 시작하기로 하자. 이라크 인민의 위대한 지도자인 사담 후세인. 후세인은 쿠웨이트가 자고이래로 이라크 영토라고 주장했다. 사실도 그러하다. 쿠웨이트는 원래 이라크의 하나의 성이었다. 대만이 대청국의 하나의 성이었던.. 2023. 4. 8.
홍얼다이(紅二代)의 시각: 누가 시진핑의 후계자가 되어야 할 것인가? 글: 하청련(何淸漣) 최근, 국내 웨이신에 류야저우(劉亞洲)가 무기징역형을 받았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다. 이는 2021년 12월 유야저우가 체포되었다는 소문에 뒤이은 것이다. 구경꾼의 입장에서 필자는 당연히 장후(江胡, 장쩌민, 후진타오)시기를 홍얼다이(紅二代)들은 집사모델(管家模式)이라고 여겼고, 후진타오의 두번째 임기에 이르러, 홍얼다이들은 슬슬 몸을 풀면서 집사모델에서 이제는 후계자모델로 바뀌어야 한다고 여기게 되었다. 시진핑은 당연히 홍색후계자이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후진타오시대에 거의 조야에서 모두 찬양받던 느슨한 시기를 맞아, 특히 류야저우는 후원(胡溫, 후진타오, 원자바오)시대 10년중 거의 중공당내 미래의 정치스타로서 떠오르고 있었다. 이 역사적 사실을 되돌아보면, 권력의 본질을 이.. 202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