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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중국의 군사

홍군(紅軍), 팔로군(八路軍), 신사군(新四軍), 해방군(解放軍)의 구별

by 중은우시 2025. 1. 7.

글: 봉황산거사(鳳凰山居士)

역사문헌을 살펴보면, 자주 홍군, 팔로군, 신사군, 해방군같은 단어를 보게 된다. 그렇다면 그것은 각각 무엇을 가리키는가?

홍군(紅軍)

중국토지혁명전쟁시기, 중국공산당이 영도하는 인민군대가 "홍군"이다.

1927년, 황안현(지금의 호북성 홍안현)농민정부의 대문 양측에 걸린 대련에 '홍군'이라는 두 글자가 나타난 것이 중국역사상 최초로 '홍군'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이다. 이는 중국공산당이 영도하는 혁명무장을 가리킨다.

1928년 5월 25일, 중국공산당중앙위원회는 전국각지의 공농혁명군을 정식으로 "홍군"으로 명명한다.

1930년이후, 다시 "중국공농홍군(中國工農紅軍)"으로 개칭한다.

그후, "중국공농홍군"은 계속 발전하고 확대되어 전후로 제1방면군(이전의 중앙홍군), 제4방면군, 제2방면군과 서북홍군등의 홍군부대를 결성한다.

팔로군(八路軍)과 신사군(新四軍)

1937년, 항일전쟁이 전면적으로 발발하면서, 국민당과 공산당은 남방각성의 홍군유격대를 하나의 군으로 결성하여 항일유격전쟁을 전개하기로 합의한다.

1937년 8월 25일, 중공군사위중앙은 명령을 내려, 중국공농홍군 제1, 제2, 제4방면군과 서북홍군등 부대를 "국민혁명군제팔로군(國民革命軍第八路軍)"으로 개편하고, 간칭하여 "팔로군"이라 한다.

1937년 9월 11일, "팔로군"은 "국민혁명군제18집단군(國民革命軍第十八集團軍)"으로 개칭되지만, "팔로군"이라는 칭호는 병사들과 일반백성들 사이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1937년 10월 12일, 강서, 복건, 절강, 광동, 호남, 호북, 하남, 안휘등 8개성 13개지구에서 투쟁을 견지하던 홍군과 유격대는 "국민혁명군육군신편제사군(國民革命軍新編第四軍)"으로 개편된다. 간칭으로 "신사군"이라 한다.

항전이 끝난 후, 신사군의 번호는 계속하여 1947년 1월 30일까지 사용된다.

해방군(解放軍)

1945년 8월 15일, 팔로군 산동군구사령원 겸 정치위원 나영환(羅榮桓)등이 제안하어 부대번호를 "인민해방군"으로 개칭한다.

1945년 8월 26일 <중공중앙의 국민당과평화담판을 진행하는 는것에 관한 통지>에서 다시 한번 정식으로 "해방군"이라는 단어가 나타난다.

1946년, 해방전쟁이 발발하고, 해방구의 각부대는 팔로군, 신사군, 동북민주연군(東北民主聯軍)등이 차례로 "인민해방군"으로 개칭하여, 5대야전군으로 편성된다.

1948년 11월 1일, 군사위중앙은 <전국조직 및 부대번호를 통일하는데 관한 규정>을 만들어, 단(團)이상의 부대는 모두 "중국인민해방군"이라는 용어를 앞에 붙이게 했다.

이때부터 "중국인민해방군"이라는 명칭은 지금까지 계속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