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모택동)80 맹금운(孟錦雲): 모택동의 마지막 순간을 지킨 여인 글: CC 만일 1976년 9월 13일의 각 신문을 찾아본다면, 모택동의 영구를 지킨 사람의 명단이 줄줄이 나열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중 마지막에 쓰여진 낯선 이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맹금운. 바로 이 보통여자 맹금운이 일대의 개국원수를 밤낮으로 곁에서 모시면서, 모택동의 팔십여년의 비.. 2009. 6. 10. 모택동은 소년때 노동을 좋아했을까? 글: 오비(吳非) [주: 이 수필은 개략 1999년에 썼고, 3년전에 수정을 했다. 그러나 어느 신문잡지에도 발표할 수 없었다. 연초에 남방의 어느 잡지가 이미 싣기로 하고, 편집인이 제목을 "모택동은 소년때 논밭노동을 좋아했을까"로 두 글자를 추가시켰다. 고심의 흔적이 엿보인다. 그래도 최종심의를 통.. 2008. 12. 31. 모택동의 고대제왕에 대한 평가 글: 상진(尙振) 1. 상(商)나라 주왕(紂王) 제신(帝辛) - "아주 능력이 있다. 문무에 모두 능한 사람이다" 1958년 11월 스탈린의 <<소련사회주의경제문제>>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중에 상품생산을 이야기 하면서 모택동은 이렇게 말했다: 상나라가 왜 상나라인가? 왜냐하면 상품생산이 있었기 때문이.. 2008. 11. 27. 모택동과 생활비서(生活秘書) 글: 서승빈(徐勝斌) 모택동은 입만 열면 말했다: "우리의 책임은 인민에게 부담한다" 사실 그의 여인에 대한 태도만을 보더라도 확실히 알 수 있다. 그가 진정으로 인민에 대하여 책임을 부담했는지를. 1. 여인은 그저 모택동의 욕망배출도구였다. 애정은 충성(忠誠)을 기초로 한다. 모택동은 그의 여인.. 2008. 11. 18. 모택동은 하루에 돈을 얼마나 썼는가? 작자: 미상 중국사람이라면 누구나 모주석이 담배를 즐겨피웠다고 알고 있다. 70년대초에는 시가도 피웠다. 차를 마시는 것도 모주석의 또 다른 취미였다. 그렇다면, 모주석은 하루에 생활비로 얼마나 소비했을까? 모주석은 60년대초에 급여를 3급으로 내려서 매월 404.8위안을 받은 후, 1976년 서거할 때.. 2008. 11. 14. 모택동이 유소기를 버리고 임표를 택한 이유는? 글: 김산(金汕) 모택동과 유소기의 관계는 친밀한 전우로서 문혁전에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전해왔다. 다만, 1966년 제8기 11중전회에서 이런 혈우성풍(血雨腥風) 속에 맺어진 혁명의 정이 철저히 파괴되었다. 1966년 8월 18일, 모택동은 천안문에서 홍위병을 접견했는데, 전세계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은 .. 2008. 10. 10. 이전 1 ··· 5 6 7 8 9 10 11 ··· 1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