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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모택동)

모택동의 고대제왕에 대한 평가

by 중은우시 2008. 11. 27.

글: 상진(尙振)

 

1. 상(商)나라 주왕(紂王) 제신(帝辛) - "아주 능력이 있다. 문무에 모두 능한 사람이다"

 

1958년 11월 스탈린의 <<소련사회주의경제문제>>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중에 상품생산을 이야기 하면서 모택동은 이렇게 말했다: 상나라가 왜 상나라인가? 왜냐하면 상품생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궈모뤄(郭沫若)이 고증해낸 것이다. 주왕, 진시황, 조조를 나쁜 사람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사실 주왕은 아주 능력이 있는 사람이고, 문무에 모두 능한 사람이다. 그는 동남을 경영했고, 동이와 중원을 통일시킨 사람이다 역사상 공로가 있다. 주왕은 서주의 이(夷)를 정벌했고, 승리했다. 다만 손실이 너무 커서 소화시킬 수가 없었다. 주무왕이 그 헛점을 틈타 진공하였도, 포로들이 대거 반란을 일으켰다. 결과적으로 상나라가 망한 것이다. 역사서에서는 주무왕이 주왕을 토벌할 때 '혈류표저(血流漂杵)"라고 했는데, 이것은 과장된 것이다. 맹자는 이런 말을 믿지 않았다: "책을 다 믿느니 책이 없는게 낫다."

 

1959년 2월 25일, 제남에서 개최된 좌담회에서 모택동은 다시 "용산문화는 아주 유명하다. 상나라 주왕은 아주 재주있는 사람이다. 주무왕은 그를 아주 나쁘게 말했다. 그의 포로정책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래서 나중에 실패한 것이다."

 

2. 진시황(秦始皇): 처음으로 중국을 통일시킨 사람

 

(1) 진시황은 후금박고(厚今薄古)의 전문가이다.

 

(2) 한번은 그가 장사쇠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공산당이 진시황같다고 말하는데, 틀렸다. 진시황보다 100배가 넘는다.

 

(3) 공자와 맹자는 유심주의이다. 순자는 유물주의이다. 즉 유가의 좌파이다. 공자는 노예주귀족을 대표한다. 순자는 지주계급을 대표한다. 중국역사상 진정으로 일한 사람은 진시황이다. 공자는 그저 말만 했다. 수천년동안 형식적으로는 공자이지만, 실제로는 진시황에 따라 일을 처리했다. 진시황은 이사를 기용했는데, 이사는 법가이고, 순자의 제자이다.

 

(4) 공자는 좋은 점들이 있다. 그러나 아주 좋은 것은 아니다. 우리는 공정하게 말해야 한다. 진시황은 공자보다 훨씬 위대하다. 공자는 공리공담만 했다. 진시황은 처음으로 중국을 통일시킨 사람이다. 정치적으로 중국을 통일시켰을 뿐아니라, 중국의 문자, 각종제도, 예를 들어 도량형을 통일시켰다. 어떤 제도는 나중에 계속 연용되었다. 중국과거의 봉건군주들 중에서 그를 뛰어넘는 자가 없다. 그러나 수천년간 욕만 얻어먹었다.

 

(5) 진시황을 너무 욕하지 말라. 분서갱유한 일은 생각해봐야 한다. 조룡의 혼은 죽어도 진나라는 남아있다. 공자의 학문은 명성이 높지만, 실제로는 찌꺼기이다. 백대를 모두 진나라의 정치와 법을 행했다. <<십비>>는 좋은 글이 아니다. 당인의 <<봉건론>>을 숙독하고 자후를 따르지 말고 문왕으로 돌아가라. 역대정치가들은 성취를 거둔 자가 있다. 봉건시대 전기에는 모두 법가였다. 이들은 법치를 주장했다. 법을 어기면 죽인다. 후금박고를 주장했다. 유가는 입만 열면 인의도덕을 주장했고, 한무리의 도적들이다. 모두 후고박금(厚古薄今)을 주장했다.

 

(6) 진시황은 중국봉건사회의 제일 유명한 황제이다. 나도 진시황이다. 임표는 나를 진시황이라고 욕했다. 중국에는 역대로 양파가 있다. 한파는 진시황이 좋다는 사람이고, 다른 한 파는 진시황이 나쁘다는 사람이다. 나는 진시황에 찬성하지, 공자에 찬성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진시황은 중국을 처음으로 통일했고, 문자를 통일했고, 넓은 도로를 건설했다. 나라안의 나라를 만들지 않고, 중앙집권을 실시했다. 중앙정부에서 사람을 각 지방으로 보내고 몇년에 한번씩 바꾸었다. 세습제도를 계속 쓰지도 않았다.

 

3.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 무식한 사람중에 인물이 나온다

 

(1) 유방이 항우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유방은 귀족출신의 항우와는 달리, 비교적 사회생활을 잘 알고, 인민의 심리를 잘 알았기 때문이다.

 

(2) 1964년 1월 7일의 담화에서 그는 이런 명제를 제기했다: "무식한 사람중에 인물이 나온다" 자고이래로, 일잘하는 황제는 대부분 무지렁이 출신이다. 한나라의 유방은 봉건황제중 가장 대단한 사람중 하나이다. 유경이 그에게 낙양을 수도로 정하지 말고, 장안을 수도로 하라고 권하자, 그는 즉시 장안으로 갔다. 홍구를 경계로 하여 항우가 병사를 이끌고 동쪽으로 퇴각할 때, 그도 장안으로 가서 쉬려고 하였다. 장량이 무슨 조약이냐, 진격해야 한다고 말하자, 그는 즉시 장량의 말을 들어, 동쪽으로 진격했다. 한신이 가짜제왕에 봉해달라고 하자, 유방은 안된다고 말했다. 장량이 옆에서 그의 발을 툭 치자, 그는 즉시 말투를 바꾸어서 이렇게 말했다. "내릴려면 진짜 제왕으로 해야지 왜 가짜 제왕이냐.....남북조의 송, 제, 양, 진, 오대의 양, 당, 진, 한, 주에 많은 무지렁이들이 있다. 글을 하는 사람중에 좋은 사람도 있다. 예를 들면, 이세민이다.

 

4. 초패왕(楚覇王) 항우(項羽): 의견을 듣지 않아서 패했다.

 

1964년의 담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항우는 세 가지 잘못을 저질렀다. 예를 들어 홍문연에서 범증의 말을 듣지 않아 유방이 도망치게 놔두었다; 홍구협정을 그는 진짜로 믿었다; 서주에 수도를 정했다. 당시에는 팽성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5. 한원제(漢元帝) 유석(劉奭): 유학치국의 쇠국군주

 

1957년 4월 모택동은 인민일보 책임자 및 관련경영진과 담화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역사상 무슨 '문경지치'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실제로 문제, 경제는 그저 수성을 한 사람이다. 유지하기는 했지만, 무능한 자들이다. 원제때부터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원제는 "견제문의, 우유부단"했다. 그는 부친인 선제가 '형벌을 너무 심하게 한다'고 생각했고 유생을 기용하자고 했다. 선제는 화가나서 말했다. "한나라는 나름대로 제도가 있다. 원래 패왕의 도로 잡것들을 몰아내야 한다. 어찌 순수히 덕화를 통해서 주나라의 정치를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우리 집안을 어지럽히는 것은 태자이다"라고 말했다. 나중에 애제에 이르러 더욱 부패했다. 서한은 고, 문, 경, 무, 소등을 읽으면 재미있다. 동한은 모두 재미없다. 단지 광무가 읽을만하다.

 

6. 위무제(魏武帝) 조조(曹操): 이 사안은 뒤집힐 수 있다. 그의 대자보를 붙여서는 안된다.

 

7. 남조 송명제(宋明帝) 유욱(劉彧): 등극한 것은 기이하다고 할 수 있다.

 

8. 남조 양무제(梁武帝) 소연(蕭衍): 시운이 올 때는 천지가 힘을 합했는데, 시운이 가니 영웅도 자유스럽지 못하다.

 

(1) 소연은 섭생을 잘했고, 식사에 양을 지나치게 하지 않았다. 중년이후에는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혜로움에서 날로 멀어지고, 소인들이 날로 늘어나고, 현명한 신하는 점점 멀러졌다. 그리하여 멸망에 이르렀으니 적절하지 않다.

 

(2) 한 쪽의 말만 듣다가는 간사한 자가 나오고, 혼자서 맡아서 하면 어지럽게 된다. 양무제가 그랬다.

 

9. 수문제(隋文帝) 양견(楊堅): 그의 방식에는 대란의 불씨가 숨어있었다.

 

10. 당태종(唐太宗) 이세민(李世民): 자고이래로 가장 전투를 잘한 사람이다.

 

(1) 자고이래로 군사를 다루는데 이세민을 따라갈 자가 없다. 그 다음은 주원장이다.

 

(2) 이각은 뛰어난 자이고, 이치는 멍청한 자이다. 아들을 아는데 부친만한 사람이 없다. 그런데 마지막에 장손무기의 말을 듣다니, 일생을 총명하게 살았는데, 일시는 멍청하게 살았다고 할 수 있다.

 

11. 후량태조(後梁太祖) 주온(朱溫): 주온은 사방으로 전투를 했다. 조조와 비슷하나, 조조보다 더욱 교활하다.

 

12. 후당장종(後唐庄宗) 이존훈(李存勛): 아들을 낳으려면 이아자(李亞子)같은 아들을 낳아야 한다.

 

13. 송태종(宋太宗) 조광의(趙光義): 이 자는 병법을 모른다.

 

14. 남조 진후주, 남당 이후주: 지식분자형의 황제는 싹이 노랗다.

 

(1) 1957년 4월 19일 인민일보사 책임자들과의 담화에서 모택동은 말한다. : 남당의 이후주는 비록 재주도 많고 예술도 뛰어나지만 정치를 장악하지 못해서 결국 나라를 망하게 하였다

 

(2) 1964년 3월 24일, 모택동은 담화를 통하여: 무식한 사람을 무시하지 말라. 지식인이 비교적 싹이 가장 노란 사람이다. 역사적으로 황제가 된 사람들 중에서 지식인이 많았다. 그러나 싹은 노랬다. 수양제는 글도 쓰고 시사도 하는 사람이다. 진후주, 이후주는 모두 시와 부를 잘하는 사람이다. 송휘종은 시만 쓸 줄 아는 것이 아니라 그림까지 잘 그린다. 일부 무식한 인물들이 큰 일을 해냈다. 징기스칸, 유방, 주원장이 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