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과 역사사건1357

발해(渤海)와 일본(日本)의 해상교류 글: 송정(宋靖) 발해국(698-926)은 '해동성국'으로 불리웠고, 나라는 200여년간 존속하면서, 동북아 여러 나라, 지역과 문화 및 경제교류를 진행했다. 발해국은 동북아에서 중요한 항구를 보유하고 있었고, 해상교통로를 통하여 발해국 남경(북한 함경남도 북청군의 청해토성(靑海土城))에서 출발하여 직접 신라로 가고, 다시 일본으로 갔다; 발해국 동경(지금의 길림성 훈춘시 팔련성. 일설에는 북한 부거리)에서 출발하여, 직접 일본으로 갔다. 대일항로는 비교적 안전했다. 발해국은 강역이 동해에 닿았고, 5개의 교통간선중 하나로서 일본도(日本道)는 발해의 제2대왕인 대무예(大武藝, 718-737)시기부터 개척되었다. 그때 일본은 신라와의 관계가 좋지 않아 일부러 발해와 '친인결원(親仁結援)'의 우호관계를 건립.. 2023. 5. 19.
왜 이전에는 장진호(長津湖)전투를 꺼내지 않았을까? 작자: 운(雲) 한국대통령 윤석열이 4월 27일 미국의회에서 연설하면서, 미국해병대가 1950년 장진호전투에서의 공헌을 찬양했다. 윤석열의 연설은 장진호전투를 다시 한번 조명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도 장진호전투에 관해서 몇가지를 얘기를 해보기로 한다. 첫째, 왜 이전에는 장진호전투를 꺼내지 않았을까? 10년전 대륙에서는 기본적으로 장진호전투를 꺼내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은 장진호전투를 몰랐다. 이건 무엇때문이었을까? 먼저 유백승(劉伯承) 원수가 장진호전투에 대하여 평가한 말을 들어보자: "하나의 병단(兵團, 3개軍)이 한개 사단을 포위해서, 거대한 댓가를 치른 후에도 적을 섬멸하지 못하고, 적을 궤멸시키지도 못했다. 적은 편제를 갖추어 전투에서 철수했고, 모든 장비와 부상병까지 데려갔다." 유백승 원수.. 2023. 5. 18.
주은래(周恩來)와 유소기(劉少奇)의 암중각축(暗中角逐) 글: 고문겸(高文謙) 1966년 8월 5일, 모택동은 에서 이상하리만치 격렬한 어조로 직접 이름을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유소기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반동의 부르조아계급입장에 서서, 부르조아계급독재를 실행하여, 프롤레타리아계급의 거대한 문화대혁명운동을 탄압하고, 시비를 전도하고, 흑백을 혼동하며, 혁명파를 토벌하고, 다른 의견을 억누르며 백색공포를 실행하며 스스로 득의하며 부르조아계급의 위풍을 키우고, 프롤레타리아계급의 뜻을 꺽었다. 어찌 그렇게 독하단 말인가?" 모택동은 글에서 1962년 조정시기의 소위 '우경'문제를 연결시켜, 기세등등하게 유소기와 최종대결을 벌이겠다는 자세를 취한다. 모택동의 이 글은 그후 전체회의에 인쇄되어 배부되어, 회의참석자들이 유소기를 공격하는 무기가 된다. 전체회의는 바로 .. 2023. 5. 18.
정화(鄭和)는 미주대륙을 발견했을까? 글: 범금민(范金民) 2002년 3월, 영국의 퇴역장교인 개빈 맨지스(Gavin Menzies)는 1421년 정화함대가 미주대륙을 발견했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이 견해가 나오자 석파천경(石破天驚, 천지가 찢어지는 듯한 굉읍에 사람들이 놀라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에 깜짝 놀라다라는 의미임)처럼 세계를 뒤흔들었다. 학계에서는 정화함대가 가장 멀리 어디까지 갔을까에 대하여 다시 한번 연구붐이 일어난다. 그해 10월, 맨지스는 미국에서 그의 저작 를 출판한다. 2003년 11월, 타이페이의 위안류(遠流)출판사업주식유한공사가 바오자칭(鮑家慶)이 번역한 중문본을 출판한다. 중문본의 겉표지에는 이런 광고문구가 붙어 있었다: "폭발적인 내용, 기존의 인식을 뒤집다. 역사를 고쳐쓸 수 있는 놀아운 작품 과거의 역사교과.. 2023. 5. 17.
"일기토": 전쟁에서 장수들간의 1대1 싸움이 실제로 존재했을까? 글: 역사학당군(歷史學堂君) 예전에 를 읽으면, 가장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 무장들간의 전투장면이다. "누가 감히 나와 삼백회합을 겨뤄보겠느나?"라는 말은 그때 입에 달고 다니던 말이다. 동시에 소설에서 장수들끼리의 일대일 싸움으로 승패를 결정짓던 방식은 필자의 고대전쟁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되어버렸다. 자라면서, 자연히 그게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장수의 용맹이 비록 쓸모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큰 작용을 하지는 못한다. 명장들 예를 들어 한신(韓信), 위청(衛靑), 곽거병(霍去病)같은 사람들은 개세적인 무공으로 유명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소설에 나오는 진을 친 다음 진앞에서 무장들이 싸우던 것이 완전히 허구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사기를 고무시키는 각도에서 보자면 그 역사적 원.. 2023. 5. 15.
<조씨고아(趙氏孤兒)>이야기에 대한 고증과 역사복원 글: 사량소(史良昭) 는 경극(京劇)에서는 라고 부른다(고아를 찾아서 고아를 구한다는 의미임). 이 명칭은 일목요연하다. 왜냐하면 이야기의 주인공은 강보에 쌓인 사내아이가 아니라, 조씨와 아무런 현련관계도 없지만, 전력을 다해서 '고아를 구해준' 정영(程嬰)과 공손저구(公孫杵臼)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자신의 인생신조를 지키기 위하여, 한 사람은 사생취의(捨生取義, 목숨을 버려 올바른 일을 행하다)하고 한명은 인욕부중(忍辱負重, 치욕을 참고 견디다)했다. 어려운 줄 알면서도 기꺼이 나아갔고, 의로운 일을 하기 위해 용감히 나섰으며, 죽음을 전혀 겁내지 않았고, 고난이 닥쳐도 포기하지 않았다. 인간의 본성중에서 집착 이외의 모든 약점을 버렸다고 할 수 있다. 현대인들은 그들의 행위에 대하여 결론을 내렸다.. 2023. 5.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