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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1357

1271년의 천주(泉州): 한 이탈리아상인의 견문록 글: Jacob D'Ancona (아래 글은 그가 1271년 남송의 천주를 방문하고 쓴 의 내용임) 하나님의 보우하에 우리는 중국(Sinim)의 영토에 이르러, 자동성(刺桐城)에 도착했다. 이 지역은 현지사람들은 "천주(泉州)"라고 불렀고, 남다른 도시였다. 아주 큰 규모의 무역이 이루어지며, 만자국(蠻子國, 즉 남송을 가리킴)의 주요무역도시중 하나였다. 나는 나의 하인들과 배에 후추, 알로에, 단향목(檀香木), 장뇌(樟腦), 정선한 향수, 진귀한 옥석주보, 대추야자(海棗), 옷감등의 화물을 가득 싣고와서 상륙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해는 양(羊)의 해였다. 왜냐하면 만자인(蠻子人, 남송인)들이 그렇게 불렀기 때문이다. 그들은 연도에 대하여 동물의 명칭을 부여해서 불렀다. 용의 해, 소의 해, 뱀의.. 2023. 6. 12.
서하(西夏)의 자칭국명 "방니정(邦泥定)" 및 "백상국(白上國)"은 어떤 의미였을까? 글: 오천지(吳天墀) 서하정권의 건립자인 척발원호(拓拔元昊)는 일찌기 북송에 보낸 국서에서 스스로 자신의 나라를 "방니정(邦泥定)"이라 칭한 바 있다. 그 내용은 권485 에 나온다. 그리고 서하는 스스로 "백상국(白上國)"이라 칭했고, 실물증거도 있다. 예를 들면, 감숙성 무위현문화관에 보존된 에는 음각으로 한문을 새겼는데, 첫행의 표제가 "백상호국사양주감응탑지비문(白上護國寺感應塔之碑文)"이라고 되어 있다든지, 1975년 9월 영하박물관은 은천시 서하란산 동록의 서하제릉구에서 2호릉(하인종의 능)의 동서비정(碑亭)을 정리했는데, 이미 부서진 서하문(西夏文) 전체비액(篆體碑額)의 위에 서하문전체와 병합해서 번역된 한문(漢文)은 바로 "대백상국호성성덕지의황제수릉지문(大白上國護城聖德至懿皇帝壽陵誌文)"이라는 .. 2023. 6. 8.
진(秦)나라의 조상은 동이족(東夷族)인가? 글: 장회통(張懷通), 권필성(權弼成) 진나라 조상의 기원을 탐색하게 된 계기 진인(秦人)의 기원(起源)에 관한 기록이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은 이다. 에는 주효왕(周孝王)의 말이 기록되어 있는데, "짐은 그들에게 영토를 내주어 부용국으로 삼고 진(秦)의 땅에 살게하여 영씨(嬴氏)의 제사를 잇게 한다. 그리하여 '진영(秦嬴)'이라 한다." 이는 늦어도 서주시기에, 혈연관계와 지연단위를 핵심요소로 하는 '영진(嬴秦)'이 이미 형성되어 있었다는 것이고, 이들이 우리가 통상적으로 말하는 '진인(秦人)'이다. 진나라 초기역사연대는 서주에서 춘추초기까지이다. 즉 기원전677년 진덕공(秦德公)이 옹(雍)에 거하기 이전이다. 사학계에서 진나라초기역사에 대한 연구는 주로 문헌자료상 진선공(秦先公)의 소재지역, 이주등 활.. 2023. 5. 25.
황하(黃河) vs 이수(伊水): 대우치수(大禹治水)는 어느 강일까? 글: 지도제(地道帝) 비록 이미 4천여년이 흘렀지만, 고대 중화대지의 대홍수는 지금까지도 후손들 사이에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대대손손 구술로 이어져 내려오면서 신화가 되었다. 황당무계한 신화적인 요소를 배제하면, 우(禹)가 홍수를 다스리는 과정에서 "공주(共主)"의 지위를 확립하게 된 것은 다툼없는 사실이다. 비록 하(夏)왕조의 창시자가 우인지 계(啓)인지에 대하여는 지금까지도 논쟁이 남아 있지만, 요순우(堯舜禹)가 번갈아가면서 우두머리가 되었던 선양제(禪讓制)에서 부사자계(父死子繼)의 방식으로 바뀐 것은 우와 계 부자사이에서 이루어졌다. 우의 권위는 치수에서 왔는데, 다만 그가 도대체 어느 강을 다스렸던가? 어떤 방식으로 다스렸던가? 이에 대하여는 지금까지도 정설이 없다. 우가 치.. 2023. 5. 24.
열국(夨國): 서북에 존재했던 수수께끼의 국가 글: 소연부독서(召燕不讀書) "보천지하(普天之下), 막비왕토(莫非王土), 솔토지빈(率土之濱), 막비왕신(莫非王臣)"(하늘 아래 왕의 땅이 아닌 것이 없고, 땅 위에 왕의 신하가 아닌 자가 없다). 이는 역사학자들이 서주(西周)시대를 개괄한 말 중에서 가장 적절한 말이다. 그 의미는 주왕조의 통치범위내에 모든 사람은 주나라천자에게 고개를 숙이고 칭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이치대로라면 일반적으로 다른 어느 사람도 '왕'이라고 스스로를 칭할 수 없다. 그러나, 실제 그랬을까? 섬서성(陝西省) 농현(隴縣)에는 서주의 도성에서 100킬로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열왕(夨王)"이라는 명문(銘文)이 새겨진 동기(銅器)가 나왔다. 이는 사람들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그럼 서주시기에 감히 '왕'을 칭할 담량을 .. 2023. 5. 22.
대청의 흠차대신(欽差大臣)이 어린 버트란드 러셀(Bertrand Russell)을 만나다. 글: 왕정(王丁) 1877년 초여름의 어느 일요일 오후, 청나라의 주영공사관(駐英公使館)의 일행 4명이 러셀 공작의 집을 방문한다. 나중에 이 방문에 참가했던 사람중 3명이 기록을 남기는데, 각각 정부(正副) 흠차대신인 곽숭도(郭嵩燾),유석홍(劉錫鴻)과 통역관 장덕이(張德彛)이다. 어린 러셀이라 함은 바로 나중에 대철학가로 1950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영국인 버트런드 러셀(1872-1970)이다. 그는 일찌기 2차례에 걸쳐 영국수상을 맡은 John Russell 공작의 둘째손자이다. 중문으로 번역된 외국사람의 이름이 기이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어린 버트런드 러셀을 만난 내용을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것같다. 그래서, 이 글을 통하여 그 이야기를 알리고 근대대외교류과정에서 러셀과 중국의 인연에 대하여 하나의.. 2023. 5.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