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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문혁전)72

중국의 국호(國號) 이등휘 : 1991년 6월 국민당혁명실천연구원의 발언 "모택동에게 가장 유감스러운 일은 국호를 고친 것이다. 만일 그들이 여전히 중화민국이라고 불렀다면, 우리는 아주 골치아팠을 것이다" 이오(李敖) : 2004년 10월 27일 봉황위성TV <<이오유화설(李敖有話說)>> 168집 1965년, 모택동주석은 프랑스 신.. 2006. 6. 2.
대약진(大躍進) 시대에 몇 명이 죽었는가? 역사상 1959-1962년을 "대약진"시대라고 부르고 있다. 이 3년의 "대약진"은 인류역사상 가장 심각한 재난을 가져왔고, 적어도 굶어죽은 사람이 4천여만명에 달하였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3년의 대재난을 "3년자연재해" 또는 "3년곤란시기"라고 부름으로써 책임을 "천재(天災)"로 돌리고 있다. 그러나, 사실.. 2006. 5. 31.
신중국의 최초의 수도 후보는 하얼빈이었다. 신중국 수도의 최초 후보지는 북경이 아니라, 흑룡강성의 하얼빈이었다고 한다. 모택동은 중국을 하나의 웅혼한 새와 같이 보았고, 흑룡강성은 마치 날개를 펼친 백조와 같았다. 하얼빈은 바로 이 백조의 목아래에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얼빈을 "백조의 목아래에 있는 진주"라고 부르는 것이다. 하.. 2006. 5. 6.
중국이 6.25참전으로 얻은 것과 잃은 것 6.25전쟁(중국에서는 항미원조전쟁)이 끝난지도 50여년이 흘렀다. 6.25전쟁에 대하여는 사람들마다 보는 바가 다르다. 극단적으로 긍정적으로 보는 자가 있는 가 하면 극단적으로 부정적으로 보는 자도 있다. 6.25전쟁이 쌍방에 미친 손실은 엄청났다. 중국측의 사망90여만, 북한측의 사망 52만, 유엔군의 .. 2006. 3. 9.
중국정부의 일본에 대한 전쟁배상 요구포기의 과정 (3) 1972년 2월 21일 오전 11시 27분, 미국대통령 닉슨이 은백색의 대통령전용기를 타고 태평양을 건나와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도인 북경공항에 내리는 그 순간 중.미.소의 삼국을 기점으로 한 국제전략의 새로운 국면이 시작되었다. 닉슨방중상황은 위성으로 세계각지에 방송되었다. 이번 행동은 1949년 10.. 2006. 2. 19.
중국정부의 일본에 대한 전쟁배상 요구포기의 과정 (2) 1950년 6월 25일, 한반도에서는 전쟁이 폭발하였다. 미소 양진영의 첫번째 무장충돌이었다. 미국과 중국의 개입으로 6.25는 단순한 내전에서 국제전쟁으로 변모한다. 미국은 이번 공산주의확장을 저지하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하여 일본을 반공의 선봉에 서도록 한다. 이를 위하여 미국은 하루빨리 .. 2006. 2. 19.
중국정부의 일본에 대한 전쟁배상 요구포기의 과정 (1) 국제관례에 따르면, 전쟁후에 체결하는 평화조약에는 모두 전쟁배상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패전국이 승전국에게 지급하는 배상금의 금액은 때때로 놀랄만한 숫자인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1894-1895년 청일전쟁종결후에 전승국인 일본은 시모노세키조약을 통하여 전쟁배상의 명목으로 패전국인 청.. 2006. 2. 19.
6.25때 김일성이 모택동에게 보낸 출병요청서신 미군이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한 후, 조선인민군의 주력은 38선이남에 단절되었고, 남쪽과 북쪽에서 협공을 받아, 피해가 막대하였다. 1950년 10월 1일에는 남한군이 38선을 넘어 북진을 시작했고, 유엔군도 38선을 넘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조선인민군의 힘으로는 이미 유엔군을 한반도에서 몰아내기 어.. 2006. 2. 8.
대만: 미려도사건(美麗島事件) 미려도사건은 까오슝사건이라고도 부른다. 대만의 국민당이외의 세력이 직접적으로 지도하여 국민당과 조직적으로 대항한 정치적 사건이었다. 1979년 9월 황신개(黃信介)를 발행인으로, 허신량(許信良)을 사장으로, 장준굉(張俊宏)을 총편집인으로 하는 정치적 간행물인 <<미려도>>가 타이페.. 2005. 12. 17.
중화인민공화국 10대원수의 사망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에 공을 세운 10대 원수의 사망을 순서대로 정리하였습니다. 1. 1963년 12월 16일 나영환(羅榮桓). 61세. 임종전에 나영환은 친척들에게 보통집으로 이주해서 살도록 요구했다. 1963년 12월 22일 북경노동인민문화궁에서 1만여명이 장례식에 참석했다. 국가주석인 유소기, 전인대상위.. 2005. 11.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