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지원군 전쟁포로의 2/3가 타이완으로 가다....
글: 조대부(趙大夫)통계에 따르면, 지원군전쟁포로중 6,673명이 대륙으로 돌아가고, 14,334명이 타이완으로 갔으며, 그외에 12명은 인도로 갔다.이들 전쟁포로들이 대륙으로 돌아온 후 여러가지 불공정대우를 받다가 나중에 명예회복된 것과 관련한 자료는 비교적 많으니 여기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겠다. 그렇다면, 타이완으로 간 이들 14,000여명은 어떻게 지냈을까?1. 대만으로 가는 과정 1954년 1월 20일, 새벽 9시, 14,00여명의 전쟁포로는 청천백일기(靑天白日旗)를 휘날리며, "대만으로 돌아간다"는 구호를 외치며, 한국의 판문점부근의 유엔군전쟁포로수용소를 떠난다. 손중산, 장개석의 대형사진을 든 대만대표단이 이들을 맞이하러 왔고, 전쟁포로들을 열렬히 환영했다.적지 않은 전쟁포로들은 속속 ..
2024. 11. 15.
<유지단(劉志丹)>: 소설 한권으로 6만명이 연루되는 사건이 되다.
글: 왕우군(王友群) 1954년, 중공중앙선전부는 공인출판사(工人出版社)에 '중공열사' 유지단에 관한 책을 출판할 것을 요청했고, 공인출판사는 유지단의 제수(弟嫂)인 이건동(李建彤, 리젠통)에게 집필을 부탁한다. 1962년 여름, 6차례나 원고를 수정한 소설 이 , , 에 연재되기 시작했다. 얼마 후, 옛날 유지단과 충돌이 발생한 바 있는 윈난성위 제1서기 염홍언(閻紅彦, 얜홍얜)이 이의를 제기하여 연재가 중단된다. 염홍언은 반대의견을 중공중앙에 제출한다. 염홍언에 따르면, 소설 에 나오는 긍정적인 이미지의 인물은 고강(高崗, 가오강)을 모델로 한 것이며, 이 소설은 "고강"의 명예회복을 위해 쓴 것이라는 것이다. 고강은 섬북근거지의 창건자중 한명이다. 1940년대 연안정풍때 염홍언은 중공고위층에 고강의..
2023. 2. 28.
소련군은 중국동북에서 얼마나 많은 재산을 약탈했는가?
글: 아승설역사(阿勝說歷史) 통계에 따르면, 일본군의 주력인 관동군은 24개사단외에 11개 여단 약 70만명의 군대였다. 그리고 만주국군대가 약 20만명이 있었다. 그외에 한국, 사할린섬남부, 쿠릴열도에 주둔하는 제17방면군, 제5방면군이 있었다. 극동지방의 일본군의 병력은 백만에 달했다. 제2차세계대전 후기, 장기간의 협상후, 1945년 8월 8일, 소련이 마침내 출병하여, 동북으로 진입한다. 이는 일본군에 대한 최후의 일격이었다. 이 각도에서 보자면, 어느 정도 진보적인 의미가 있다. 다만 사실상, 소련군이 동북에서 대거 재물을 약탈한 행위도 그냥 넘길 수 없는 일이다. 모두 알고 있다시피, 중국의 동북지구는 일본이 여러해동안 경영하면서, 이미 일본의 해외에서 가장 중요한 공업기지가 된다. 일본이 투..
2022. 9. 21.